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코선생 Apr 04. 2021

헨젤과 그레텔

본격 범죄액션 드라마! 누구의 형량이 가장 높을까?

우리말로 하면 ‘철수와 영희’ 정도 될까요? 

평범한 제목과 달리 이야기는 아동유기와 살인 그리고 마녀사냥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모험동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불의에 맞서 싸우거나 재치 있는 전략으로 악당들을 골탕 먹는 이야기는 없죠. 

고생 끝에 정의가 승리한다는 클리셰 따윈 깡그리 무시한 채 오직 탐욕과 폭력으로 스토리를 매우고 있을 뿐입니다.      


볼수록 잔인하고, 책을 덮은 뒤에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 동화. 잔혹동화의 큰삼촌들인 그림형제 조차도 도저히 애들에게 읽어줄 자신이 없다며 수정에 수정을 가했다는 문제작 ‘헨젤과 그레텔’ 만나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즈의 설계자 프랭크바움, 원더랜드의 아버지 루이스캐럴, 인어공주가 되고팠던 안데르센 등 1800년 대 말 낭만주의가 낳은 천재동화작가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번 회부터 창작동화가 아닌 구전으로 이어져오던 전례동화를 만나볼까 볼까합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라푼젤 등 디즈니공장에서 신분세탁을 당한 공주시리즈부터, 장화신은 고양이, 빨간망토, 잠자는 숲속의 미녀, 브레맨음악대와 같이 친근한 제목과 달리 원작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동화들에 대해 매스를 대볼까 하는데요,      

첫 번째 손님 ‘헨젤과 그래텔’부터 만나보겠습니다.       

   

가난한 나무꾼부부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식들을 숲에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처음 아이들을 버리러 갔을 때, 이를 알아챈 헨젤이 조약돌을 하나씩 떨어뜨려 그것을 추적해 다시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버려졌을 땐 미쳐 조약돌을 준비하지 못했죠. 급한 대로 가지고 있던 빵부스러기로 왔던 길을 표시해두었는데 그만 새들이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꼼짝없이 깊은 숲속에 갇혀버린 남매는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 어둡고 음침한 숲속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고파 지쳐 쓰러지기 직전 남매는 숲 한 가운데서 과자로 만들어진 신기한 집을 발견합니다. ‘저게 뭐지?’하는 호기심도 잠깐, 너무나 배가 고팠던 오누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집에 달라붙어 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노파가 덜컥 문을 열고 나와 집안에 더 맛있는 것이 많다며 아이들을 초대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돌변한 노파는 헨젤은 철창에 가두고, 그레텔은 하녀로 만들었습니다. 노파는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였습니다. 마녀는 철창 안에 헨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매일 팔뚝을 만져보면 살이 얼마나 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때마나 헨젤은 자신의 팔 대신 뼈다귀를 내밀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마녀는 살이 불지 않는 오빠대신 동생을 먼저 잡아먹기로 하고 그레텔에게 화덕에 불을 붙이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아챈 그레텔은 꾀를 내어 화덕에 문제가 있다며 노파를 유인한 뒤, 화덕 밖에서 문을 잠궈버렸습니다. 오빠는 풀려났고, 마녀는 자신의 화덕에서 불에 타 죽어버렸습니다.

남매는 마녀의 집에서 보물을 들고 나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큰 강을 만났을 땐 오리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자신들을 숲에 버리자고 꼬드기던 계모는 이미 죽었으며, 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한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누구형량이 가장 높을까?     

아동유기, 감금, 폭행, 식인, 절도, 사기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10장 남짓한 짧은 스토리 안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범죄가 등장합니다. 부모는 가난을 핑계로 깊은 숲속에 아이들을 유기하고, 숲속에 사는 노파는 과자와 사탕으로 아이들을 꼬드긴 뒤 잡아먹으려 하죠.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진짜 무서운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남매입니다. 노파의 계략을 눈치 챈 남매는 꾀를 내어 노파를 화덕에 밀어 넣는데 성공합니다. 노파를 감금했으니 그 길로 도망쳐도 될 것을 마치 분노의 복수라도 하듯 화덕에 불을 놓아 화형식을 거행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화형식을 치루는 동안 집을 뒤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꼼꼼히 챙기고 난 뒤에서야 과자집을 나섭니다. 남매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을 버리자고 선동하던 계모는 어쩐 일인지 죽임을 당한 뒤였고, 소름끼치게도 세 식구는 이 모든 사건을 묻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노파에게 훔쳐온 보물을 밑천으로 말이죠.      

이 살벌한 가족은 서로에게 흉기를 드는 일없이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여러분이 보시기엔 누구의 형량이 가장 높아 보입니까?

아이들을 꼬여 인육을 맛보려다 미수에 그친 마녀입니까? 아니면 살인과 절도 그리고 아동유기를 자행하고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던 헨젤과 그레텔 가족입니까?  


                       

누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까?     

‘잭과 콩나무’와 함께 ‘헨젤과 그레텔’은 교훈 없는 동화의 대표주자로 분류됩니다. 창작동화와 달리 전래동화에는 교훈 없는 스토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전래동화는 대체로 부모의 입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각색되고 자연스레 교육적인 메시지가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헨젤과 그레텔은 교훈은 고사하고 등장인물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범죄를 자행하고 있지요. 아이들을 숲에 버리자고 꼬드긴 사람이 계모라고 되어있지만, 그림형제가 처음 스토리를 채집할 때는 무려 친엄마였습니다. 동화집 제목이 ‘아이들과 가정을 위한 이야기’인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4번째 판본부터 슬쩍 계모로 바꿔놓은 것이죠. 아동유기, 폭력과 절도, 심지어 살인까지 매 장면마다 이어지는 섬뜩한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정말 아이들에게 들려주라고 만든 이야기인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 이야기가 유독 전래동화답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의 도착지가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최종 수신자는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을 유기하는 못된 부모들입니다. 동화를 채집할 당시 19세기 중엽 유럽에선 기근이 올 때마다 실제로 숲속에 많은 아이들이 버려졌고, 숲을 헤매다 들짐승들을 만나 죽임을 당하거나 불한당무리들에게 흡수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봅니다. 숲에 버려두었던 아이들이 다시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자 부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다시 아이들을 숲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은 이에 굴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기위해 필사의 투쟁을 벌입니다. 이 이야기를 버리려는 자와 버림받는 자의 사투라고 본다면 승자는 버림받는 자, 바로 아이들입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아이들은 자신들의 지략으로 무시무시한 마녀를 무찌르고 전리품까지 두둑이 챙겨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버리려는 자는 절반만이 살아남아 아이들, 아니 어쩌면 챙겨온 재물을 반겨줍니다.          


동화책 코너를 붙들고 있는 

과자로 만든 집     

앞서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들 보다 부모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그림형제를 만나 한 편의 동화로 세탁되어 200년 넘어 지금까지도 아동서적코너에서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동화로 변신시켜주었을까요? 앞 뒤 이야기를 잘라내고 마녀에게 잡혔다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만 보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짜릿한 모험동화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식인, 절도, 살인 등 모험동화라 하기엔 과자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도 공포스럽습니다. 이 이야기를 동화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단서는 뜻밖에도 ‘과자로 만들어 진 집’입니다. 아이들은 교훈을 얻기 위해 동화책을 찾지 않습니다. 신비한 세계, 집과 학교에는 없는 세상을 만나기 위해 동화책을 펼쳐들죠. 신비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원더랜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네버랜드’ 신비스러우면서도 재미가 넘치는 ‘초콜릿공장’이 아이들에게 환호를 받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순수한 열망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헨젤과 그레텔’ 스토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과자로 만든 집’을 꼽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뜯어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어도 내일까지 계속 거기에 있을 것 같은 ‘과자로 만들어 진 집’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폭발시키기에 더 할 나위 없는 소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에이~ 설마 그것 때문에 동화가 되었겠어?’ 하시는 분들께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긴 중절모를 쓴 공장 주인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2005년 팀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죠디뎁이 맡았던 그 역할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찰리인 줄 안는데, 그의 이름은 윌리윙카입니다. 찰리는 황금티켓의 마지막 주인공인 가난한 집 소년의 이름이죠. 영화를 본 사람들조차 기억을 못해 고개를 갸우뚱 하곤 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판타스틱한 이야기를 즐기는데 주인공의 이름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옆집에 있을지 모를

헨젤과 그레텔      

너무나 슬픈 사실은, 아동학대와 유기는 비단 200년 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훈육이라는 탈을 쓴 채 수많은 가정폭력이 행해지고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학대받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의 비통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부모의 학대와 감금을 참다못해 지붕을 타고 옆집 창문을 넘어 탈출한 아이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옆집으로 들어간 아이는 식탁위에 있던 사발면 두 개를 먹어치운 뒤 부모의 폭력을 피해 며칠 동안 뒷산에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수백 년 전, 마녀의 집에 붙어 과자를 갈아먹던 헨젤과 그레텔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부디 이 슬픈 이야기는 수백 년 전 북유럽의 깊은 숲속에 남겨두고, 21세기에는 헨젤과 그레텔의 참담한 소식이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은 동화의 고전인 그림형제의 동화집에 실린 '헨젤과 그레텔'을 만나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잔혹한 스토리 탓인지 신데렐라나 이상한나라의 엘리스처럼 다양한 서브컬쳐로 확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스크린에선 지금까지도 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음산한 분위기 때문일까요? 마녀사냥이나 아동학대와 같은 편한 마음으로 보기 힘든 스릴러물이 대부분입니다. 이 번 편에선 중세에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이어져온 마녀사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마녀이야기는 앞으로도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아 다음으로 살짝 미뤄 두겠습니다. 언젠가 삘 받으면, 아니 소재가 바닥나면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와 중세시대 자행된 마녀사냥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눈의 여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