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
해커의 컴퓨터에 또 다른 해커가 침입을 시도합니다. 해커는 다짜고짜 흰 토끼를 따라가라고 메시지를 전하죠.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또 다른 사람들이 찾아왔고, 일행 중에 흰 토끼 문신을 한 여자를 발견하곤 남자는 그들을 따라나섭니다. 흰 토끼를 따라간 클럽에서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한 트리니티를 만나고, 이러저러한 사건을 거치고 난 뒤, 이 알 수 없는 조직의 수장인 모피어스를 찾아가게 됩니다. 모피어스는 네오를 보자마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지?’하며 묻습니다. 그리곤 두 종류의 알약을 건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죠. ‘파란 약을 먹으면 잠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빨간 약을 먹으면 원더랜드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될 것이다.’ 네오의 선택은 빨간 약이었습니다. 잠시 후 네오는 정말 믿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욕실에서 한 여인이 깨어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는 정신줄을 놓은 채 집안을 서성입니다. 그때, 특수부대 요원들이 집을 급습하고, 자신 역시 그들과 한 팀이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낯선 이들과 함께 지하세계로 향합니다. 여자는 지하세상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원더 한 세상과 만나게 됩니다. 주인공 일행을 가로막은 홀로그램 프로그램의 이름은 레드퀸(거울나라 앨리스에 나오는 여왕)이며, 주인공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앨리스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모든 시리즈는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끝을 맺습니다. 흡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시리즈처럼 말이죠.
언니가 학교를 간 사이 꼬마 메이는 도토리를 줍다가 우연히 토끼 비슷하게 생긴 흰 생명체를 발견하곤 호기심에 그 들을 따라갑니다. 넝쿨 숲을 지나 큰 나무 사이에 난 굴로 떨어진 메이는 그곳에서 도토리나무의 요정 토토로를 만나게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험난한 모험은 없지만, 고양이 버스의 얼굴만큼은 체셔 고양이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작가들과 감독들이 앨리스와 원더랜드의 신비한 세상을 작품에 녹여내려 노력해왔습니다. 그중 앨리스를 가장 많이 사랑한 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그룹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닐까 싶네요.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마녀 배달부 키키’ 등 많은 작품이 소녀의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소녀가 주인공이고, 문이나 굴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또 몸과 정신에 변화를 겪으며, 모험을 통해 성장해나간다는 설정의 모든 애니메이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어느 정도 빚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브리 작품들 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아카데미의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필두로 전 세계의 영화제를 휩쓸었던 지브리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플롯을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이야기를 세세하게 살펴보기는 힘들 것 같고요, 간략하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공통 분자만 확인해보겠습니다.
1. 일상에 지루해하던 소녀 혼자 떠나는 환상의 여행기
2. 일상의 관문을 통과하며 새로운 세상과 교우
3. 신체에 변화를 겪게 됨
4. 처음 보는 생명체들과 만남
5. 다른 이름으로 불림
6. 울보에서 스스로 극복하고 쟁취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
7. 여왕과 한판 승부를 벌이며 현실 세상으로 돌아감.
추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조력자인 듯 조력자 아닌 친구가 생김.
문학, 철학,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사랑받아온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특히나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물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아왔습니다. 앨리스가 경험한 환상의 세상을 직접 목도하고 싶은 열망 때문일까요? 월트 디즈니의 장편만화 이후,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수백 편의 작품이 영화나 TV시리즈로 만들어졌고, 블록버스터급 판타지가 난무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어디선가 앨리스와 관련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미 문화권에서는 앨리스는 ‘성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인용되는 고전작품이며, 후대의 문학, 과학, 미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명한 고전에는 명성에 걸맞은 서브컬처들이 줄기를 뻗기 마련입니다. 피터팬이나 오즈의 마법사,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인어공주 등 걸작들은 모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 문화의 싹을 틔워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작품과 비교 안 될 정도로 과학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동화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 엘리스입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노벨상을 거머쥔 바 있는 프란시스 크릭 Francis Crick은 자신이 집필한 책 <놀라운 가설 The Astonishing Hypothesis>에서 체셔 고양이 실험을 통해 뇌 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55년 영국의 외과의사 토드 J.Todd가 자신의 논문에서 편두통과 간질환자 등에서 보이는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앨리스 증후군 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동화 속에서 앨리스가 커지고 작아지는 이야기에서 착안된 이 병명은 물체가 실제보다 작아 보이거나 커 보이거나 혹은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을 말합니다.
앨리스를 인용한 이론 중 가장 유명한 건 ‘붉은 여왕 가설’입니다. 적자생존의 자연환경 하에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생명체가 결국 멸종한다는 이 가설은 ‘거울 나라 앨리스’에서 내가 움직이면 세상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두 세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붉은 여왕의 말에 착안하여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지금까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심어준 다양한 서브컬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수술실 문을 닫을까 합니다.
다음 시간엔 엘리스의 아버지이자, 동화계의 떡장수라고 불리는
‘루이스 캐럴’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