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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코선생 Aug 24. 2019

루이스 캐럴은 소아성애자였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말더듬이 엄친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판하기 무섭게 영국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초판본은 며칠 만에 품절이 났음은 물론 몇 년간 쉼 없이 찍어내야 할 만큼 영국을 넘어 전 유럽과 미 대륙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어린이들에겐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살롱을 찾는 신사들의 손에도 들려있을 만큼 애어른 할 것 없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이러한 엘리스 신드롬은 빅토리아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읽고 크게 흥미를 느꼈던 여왕은 신하들을 시켜 캐럴이 쓴 책을 모두 가져오라고 명했다고 하는데요,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을 기대했던 여왕은 그가 쓴 책들을 보곤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가져온 책은 <평면 기하학 입문서>와 <평면 삼각법의 공식들> 그리고 <유클리드의 초기 저서 두 권에 관한 해석> 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로 남겨두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캐럴의 직업은 수학교수였습니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지 칼리지에서 종교학과 수학을 전공한 그는 모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죠.      


영국 채셔지방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입니다. 루이스 캐럴은 그가 남긴 앨리스 한편으로 대체할 수 작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었지만, 젊은 시절 그가 보여준 여러 재능은 엄친아 딱 그것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엄친아가 어땠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엄친아의 첫 번째 관문. 성적이겠죠? 캐럴은 학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동문이 되기 위해 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캠브릿지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하긴 했으나, 수학 우수자로 옥스퍼드에 입학하여 대부분의 학기를 장학금으로 다녔습니다. 그가 졸업할 당시 시험에서 1등이었고,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아 단과대학교 학생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구원이 되면서 강의를 요청받기 시작했고, 각종 수학 입문서를 지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학자이자 문학가였고, 또한 종교학자였습니다.   

두 번째 재능은 글쓰기입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어린 시절 형제들과 함께 가족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성인이 되면서 각종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언어유희나 난센스를 활용한 풍자를 좋아했는데, 런던의 주간지인 ‘코믹 타임스’에 기고했던 글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연구하는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재능은 사진술입니다. 삼촌에게서 배운 사진술은 그의 부업이면서 전시회를 열정도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인물사진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찍은 인물 사진은 지금도 사진역사책에 소개될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죠. 또한 과학자들의 인물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 창조론과 진화론이 팽팽하게 맞셨던 그 무렵 과학자들의 얼굴을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영역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만큼 천부적인 기질을 발휘했던 캐럴은 연극과 오페라에도 관심과 지식이 풍부했습니다. 덕분에 여러 유명 배우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회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예술가들 특히, 라파엘전파 작과 들과 친분이 높았다고 하네요. 실제 본인의 그림실력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초고에는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엄친아였던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말 더듬이였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코커스 경기를 진행하는 도도새는 자신을 표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는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도 도도도 도지슨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신 스스로를 도도새라고 칭하곤 했답니다. 옥스퍼트 시절에 성적도 우수했고, 책도 여러 편 냈지만, 말더듬이 때문에 정작 학생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또 배우려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1명을 데리고 수업한 적도 있다고 하니, 말더듬이는 교수의 길을 희망하던 그에게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연극배우가 되는 꿈도 말더듬이 때문에 포기하게 되죠. 또한 어릴 적 백일해를 심하게 앓다가 오른쪽 귀로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게다가 지독한 안면인식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날 함께 식사했던 사람조차 다음날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하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가 힘들었고, 사교모임에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구석자리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앨리스는 실제 인물이다     


옥스퍼드에서 초급강사직을 맡을 무렵 헨리 리델이라는 사람이 크라이스트처지칼리지에 학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캐럴은 리델의 가족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집 세 딸(로리나, 앨리스, 에디스)과 노는 걸 좋아했죠. 앞서 이야기했듯, 그는 말더듬이 때문인지 어른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했습니다. 대신 어린이 그것도 소녀들이랑 어울리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리델 학장의 세 딸들은 그가 지어낸 엉뚱한 이야기나 놀이에도 적극적으로 잘 따라주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어린아이와 대화할 때는 말도 더듬거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하루는 세 딸과 함께 템즈강에 뱃놀이를 하러 갔습니다. 캐럴은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요량으로 보트 위에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한편 지어냈습니다. 둘째 딸인 앨리스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땅속 깊은 곳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면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최초의 액션 판타지 이야기는 이렇듯 즉흥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소녀들은 환호했습니다. 캐럴에게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출판하고 싶어 하는 출판사가 나타났고, 존 테니얼이라는 멋진 삽화작가가 동참하면서 이 멋진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리델가의 딸들, 맨 왼쪽이 앨리스


     


루이스 캐럴은 소아성애자였을까?     


학자들 사이에서 루이스 캐럴이 소아성애자였다는 주장이 일었습니다. 오직 소녀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소녀들에게만 사진기를 들이댔으며, 그중 누드촬영이 빈번했다는 그의 전력을 볼 때 로리타 콤플렉스가 확실하다고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나아가 그가 앨리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의 부모에게 청혼을 했고, 그 때문에 가족과 단절됐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앨리스 리델

하필이면 평생을 꼬박꼬박 써왔던 그의 일기장에 그 무렵 페이지가 찢겨 있다는 점과 얼마 못가 부모들이 캐럴과의 만남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청혼설에 무게를 실어주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소녀들과 함께 할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거나, 부모처럼 소녀들의 생활용품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까지 했으니 호사가들로부터 오해받을 소지는 차고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반대쪽 학자들은 억 측 이이라며 맞섰습니다. 캐럴은 평생을 충직한 성직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부모의 허락 없이 누드를 촬영한 적이 없으며, 아이가 불편해하면 그 즉시 촬영을 접었다고 합니다. 세 딸들을 비롯해 그와 어울렸던 소녀들은 훗날 캐럴이 단 한 번도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야릇한 짓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소녀 누드가 그리 레어 한 아이템도 아니었습니다.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소녀 누드가 등장했고, 낭만주의 한복판에 살았던 유럽 사람들은 이를 예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유언에 따라 그가 보관했던 누드사진 모두 불태워지거나 부모에게 전달했다는데, 소녀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한 노력 역시 그의 높은 도덕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100년을 훌쩍 넘겨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정설 없는 떡밥으로 남아있습니다. 제 사견을 더하자면, 어린 소녀들을 좋아하고 함께 노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 건 맞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정도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자동차가 하늘로 날 수 있다면 막히는 일 없이 시원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텐데.

손을 뻗어 거울의 반대편을 갈 수 있다면 이상한 나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저 다람쥐를 쫒아 가면 집체만 한 큰 도토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여러분도 한때는 상상력이 풍부했던 아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많던 상상의 세계는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차가 하늘로 날아다니려면 큰 날개와 제트엔진이 필요하고, 다람쥐를 쫒아 가봐야 숨만 찰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턱밑의 수염과 상상력을 맞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세 편에 걸쳐 빅토리아 시대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보았습니다.


앨리스와 함께 떠나는 환상의 여행, 즐거우셨나요?     

앨리스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원더랜드가 사라져 버렸듯, 

상상을 멈추는 순간 꿈꾸었던 모든 꿈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잊지 마세요. 

꿈꾸는 동안 원더랜드는 영원히 여러분의 곁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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