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머리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나이스 투 밋츄?

by 조훈희

"하이. 나이스 투 밋츄"


나는 조커 마냥 한컷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건넸고,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바이어는 나를 보자 몹시 당황했다.


"Hoony? Really?"

바이어는 악수를 하면서 내 이름이 Hoony가 맞는지 거듭 물어보았다. 노오란 금발 머리에 기름칠을 해서 한껏 뒤로 넘기고, 영화에 나올 법한 멋들어진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던 바이어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했다.

"Oh. God..."


바이어가 나를 보고 경악한 이유는 그동안 이메일로 업무를 하면서 초면인 것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내 영어 이름에 있었다. 그동안 바이어는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Hoony라는 내 이름이 Cute하다며, 마치 Honey와 비슷해서 좋다고 했었다. 그 외국인 상상 속의 Hoony는 분명 K-pop에 나오는 여자 아이돌 가수 정도였을 텐데 직접 한국까지 날아와서 만난 실제의 Hoony는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고, 수염이 덕지덕지 난 검은 머리에 배 나온 아저씨였다니...... 이역만리 타지에서 이름만 보고 좋다고 날아온 노랑머리 외국인이 실망할 법도 했다.


그의 실망은 둘째 문제고 나는 당장 걱정이 하나 가득이었다. 영어를 잘 못해서 지금까지 통화보다는 이메일로 업무를 했는데 직접 날아올 줄이야.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를 날아온 노랑머리 외국인을 보자마자 내 멘탈은 거짓말처럼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로 날아가 버렸다. 회의실을 잡아서 말없이 그를 끌어다 앉혔고, 물과 간식거리를 챙겨주고, 화장실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최대한 말을 걸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트북 와이파이를 잡아주고, 업무용 핸드폰도 받아다 주었다.


'제발 나한테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아라'

떨리는 등 뒤로 그의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블라블라 쏼라쏼라 어쩌고저쩌고 어절씨구"

다행히 그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물어봤고, 그때마다 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웃는 표정으로 밝게 대답했다.


"노 프라블럼"

이걸 물어봐도 “노 프라블럼” 저걸 물어봐도 “노 프라블럼”

내 마음속의 문제는 커져만 가는데 외국인이 느낄 나란 인간은 전혀 아무 문제없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금액이 들어가는 협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영어 숫자로 천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만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바로 생각이 잘 안 났다. 결국 난 "웨이러 미닛"을 외치고 계산기를 들고 왔다. 그러고는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유명 관광지를 보고, 가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짝퉁 시장에서 로렉스 손목시계를 파는 사람처럼 계산기에 숫자를 두들기고, 그의 눈앞에 보여주며 외쳤다.

"오케이?"


외국인은 신나게 웃더니 계산기를 받아 들고, 자신이 원하는 숫자를 'Dadadada' 치고 보여줬다. 그리고는 또 뭐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했다. 이때 당황하지 않고, 나 역시 다시 계산기로 숫자를 쳐서 보여준다.

"노노. 디스. 씨. 오케이?"

"블라블라 쏼라쏼라"

그렇게 서로 몇 번씩 계산기를 주고받았더니 외국인이 점점 더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오케이! 라스트 디스카운트!"

하면서 난 계산기를 마지막으로 들어 올렸고, 협상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노란 머리의 외국인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웃으며 말했다.

"Bye~ No Problem guy."


회사에서 말도 못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호랑이한테 물려간다고 생각하고, 정신만 차리면 된다. 내가 스스로 걱정해서 정신 줄을 놓는 순간 내가 부족한 몇 가지의 실력이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난감한 상황에 닥치게 된다면 본인만 알 수 있는 말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보다 근거가 남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서면으로 대화를 하고, 여러 주위 사람들을 참조로 넣고 계속 확인을 시켜서, 전 세계의 시름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도 내가 영어를 프로페셔널하게 하지 못함을 충분이 인식하고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내 영어실력보다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반대로 자신감을 가져도 될 일이다.

쉽게 설명하면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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