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님께서 시켜주신 만두

솔직하게 냠냠냠

by 조훈희

"우리 회사가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 솔직하고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게"


대표님께서 운을 떼셨고, 우리들은 긴장했다. 윗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하라며 똑같은 직급의 과장들만 모두 모아놓고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서로 누가 먼저 이야기를 할까 눈치를 보자 대표님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회사의 허리라고 생각하네. 허리가 없으면 지탱이 안 되지. 그래서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야 그렇게 소중한 여러분들의 솔직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으니 내 왼쪽부터 순서대로 모두 이야기해보게나. 허허허"

나는 대표님 오른쪽 부근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생각할 시간도 벌고, 벤치마킹 사례도 늘어남에 안도하고 있었다.


'허리라서 중요하면 머리나 팔다리는 별로 안 중요한가?'

혼자 생각하면서 키득 거리는 사이에 첫 도전자가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도 탄력근무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희 과장 직급은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육아에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출근 전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도 힘이 듭니다. “

긴 이야기를 경청하신 대표님께서는 본인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회사와 유사한 업종과 유사한 인원의 회사 중 탄력 근무제를 하는 회사와 탄력 근무제로 인한 결과와 장단점을 분석해서 나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게. 다음"


두 번째 도전자가 나타났다.

"주니어 직급들을 위한 공통의 매뉴얼이 정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원, 대리 직급의 이직이 잦은 상황에서 과장 이상의 직급이 실무도 진행하면서 신사업에 대해서 검토하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옳지! 나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네! 아주 말 잘했네. 오늘부터 하 과장이 대표로 주니어들을 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서 보고해 주게나. 다음"


세 번째 도전자부터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조금이라도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입을 열면 백배는 더 불편해지는 상황이 생기고 있었다. 그런 대화들이 주로 오갔고, 모든 과장들은 선물로 업무 보따리를 한 움큼씩 받았다

이윽고 내 앞 도전자의 순서가 왔다.

"저는 회사에 성과 보상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도전자는 머리가 좋았다. 그리고 날카로웠다.

`일반 업무직이 보상시스템을 조사하긴 힘들겠지`라고 생각하며 대표님의 달변을 기대하고 있었다.


"장 과장은 그럼 상사의 평가에 불만이 있었나 보군. 어디 보자 당신 본부장이 최 전무 쪽 맞지?"

`이런 전개는 상당히 위험한데?`

더욱 문제는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지 않고, 대표님의 질문이 더 많아졌다는 것에 있었다. 멀리서 보면 팝콘을 먹으면서 볼 수 있을 정도의 희극이었지만, 다음 순서로 가장 가까이 있는 나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대표님의 공격과 신상 털기에 장 과장은 울먹이는 단계까지 갔고, 대표님은 더욱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다음 조 과장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 저는..."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일도 떨어지지 않는 아무 말이라도 해야 했다. 불만이 없다고 하면 내 앞사람들이 모두 죄인이 될 테고, 불만이 있다고 하면 대역죄인이 돼서 능지처참을 당할 것 같았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저저 저는 회사 주변의 식당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그그 그리고 저녁식대도 8천 원인데 이러면 카카 카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만 먹고, 마마마마 만두를 시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세상 세상 최고 병맛인 건의사항이었다. 직장생활 10년이 넘은 과장이나 된 놈이 대표님께 한다는 말이 만두나 먹게 해달라고 건의하다니. 말을 끝낸 나는 이미 쥐구멍을 찾고 있었지만 수많은 고양이들의 눈빛만 보일 뿐이었다.


"앞으로 조 과장은 만두 실컷 시켜 드세요오. 다음"

대표님은 한심하단 듯이 대답하셨고, 시켜드세'요'의 '요'는 꼬리가 길고 베베 꼬아졌다. 대화가 끝나고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사람들은 날 비웃었다.


"과장이나 돼서 대표님께 한다는 말이 만두가 뭐냐. 내가 다 쪽팔린다."

몇 달이 지났고 모두의 건의사항은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사장의 낙서들처럼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예상했던 대로 가장 긴 대화를 했던 성과에 불만이 많았던 장 과장은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난 이제 칼국수 집에서 만두를 편하게 실컷 시켜 먹는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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