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많은 사람에게 대청소는 단순히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일상적인 집안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맹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대청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공간의 질서를 다시 구축하는 일이며, 내일의 나를 위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신성한 의식이다.
나의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몸의 감각과 기억, 소리와 촉각을 통해 구성된다.
그러기에 이 세계를 유지하는 일은 나의 안전, 나의 일상, 나의 자율성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작업이다.
청소의 시작은 동선을 되새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의 열두 걸음, 책상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 책장의 위치, 현관에서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향하는 움직임까지 모든 길은 반복과 기억 속에 새겨진 나만의 길이다.
청소기의 움직임, 걸레질의 동작조차도 이 동선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길의 예측 가능성은 나의 생명선이며, 그 안에서만 나는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더러움이 아니다.
예고 없이 출현한 낯선 장애물이다.
거실 한복판에 놓인 박스 하나, 무심코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 하나가 나에게는 거대한 침입자처럼 느껴진다.
한 치 오차 없이 기억했던 동선에서 이탈하는 순간, 머릿속의 공간지도는 암전된다.
그 짧은 혼란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나의 세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그 물체는 나를 다치게 하기 전에 이미 내 질서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은 청소와 정리를 자주 혼용하지만, 나에게 이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청소는 손끝으로 먼지를 지우며 내 공간과의 유대를 확인하는 따뜻한 작업이다.
가구의 결을 따라 닦아내며 나는 내 방의 윤곽을 다시 그린다.
하지만 정리는 다르다.
정리는 ‘사물의 위치’가 곧 ‘사물의 존재’를 의미하는 나의 세계에서, 예고 없이 자리를 바꾸는 행위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호의에서 비롯된 정리도, 나에게는 사물의 실종을 의미한다.
위치를 잃은 물건은 투명해지고, 나는 그것의 부재를 손끝에서 느끼며 어둠 속을 더듬는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청소는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정리는 반드시 내가 하겠다고.
대청소의 마지막 단계는 ‘복원’이다.
모든 사물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이 과정은 나의 세계를 재정비하는 완결의 순간이다.
노트북은 책상 위 서랍 사이 중심선에, 탱고의 하네스와 견줄은 현관문 왼편 두 번째와 세 번째 걸이에, 텀블러는 식탁 앞줄 오른쪽 구석에 자리한다.
모든 것이 자신만의 좌표를 되찾는 이 순간, 나의 세계는 고요한 완결성을 획득한다.
그 안에서 나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예측하지 않아도 된다.
그 안에서 나는 온전하게 자유롭다.
나에게 청소란 단순히 공간을 깨끗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혼돈을 정돈으로,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행위다.
그 속에서 나는 비가시적 존재로서의 나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더 뚜렷하게 존재할 수 있다.
이 고요하고 단단한 세계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나답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