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을 넘기는 손가락
왕국 수도의 가장 거대한 마법 상단, 틱톡 상회에는 매일 밤 늦게까지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상회의 주인이자 수석 연금술사인 저크는 마법사들이 수십 년에 걸쳐 두꺼운 마도서를 읽고 지식을 쌓는 전통적인 방식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길고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찰나의 순간에 가장 강렬한 쾌락을 쑤셔 넣을 수 있다면, 그 마법이야말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저크는 환영 마법과 기억 조작 마법을 결합한 기괴한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무한의 짧은 환영 스크롤이었다. 이 스크롤은 아주 작은 양피지 조각에 불과했지만, 마력을 주입하고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가볍게 쓸어 올리면 허공에 생생한 입체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이 지속되는 시간은 단 십오 초.
내용은 몹시 자극적이고 원초적이었다. 누군가 계단에서 우스꽝스럽게 굴러떨어지는 장면,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기괴한 춤을 추는 장면,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하는 저주 마법을 자신에게 거는 장난, 혹은 엄청나게 매운 불지옥 고추를 한 번에 삼키고 괴로워하는 기사의 모습 등이었다.
십오 초가 지나면 환영은 사라진다. 하지만 손가락을 다시 한 번 위로 쓸어 올리면, 곧바로 전혀 다른, 새롭고 자극적인 십오 초짜리 환영이 나타났다. 끝이 없었다.
처음 이 스크롤이 수도의 광장에 무료로 뿌려졌을 때, 사람들은 그저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이 스크롤에는 치명적인 마법이 숨겨져 있었다. 십오 초마다 시각과 청각을 강타하는 강렬한 자극은 사람들의 뇌 속에 쾌락의 호르몬을 폭발적으로 분비시켰다. 한 번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어떤 자극적인 영상이 나올지 궁금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수도의 거리는 기괴한 풍경으로 물들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서서, 혹은 침대에 누워서 얼굴에 푸른빛을 반사하며 멍한 눈으로 손가락만 위로 쓸어 올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스크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웃음소리, 기괴한 비트의 음악 소리, 찢어지는 비명소리들이 십오 초 단위로 뚝뚝 끊기며 겹쳐 들렸다. 그것은 마치 수만 마리의 벌레가 귓가에서 날개짓을 하는 듯한 불쾌한 소음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소음이라 여기지 않았다.
지성의 무덤, 왕립 아카데미
숏폼 스크롤의 유행이 반년을 넘어가자, 왕국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붕괴한 곳은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왕립 마법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의 대도서관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으나, 이제 그곳에서 나는 냄새는 오직 묵은 먼지와 곰팡이 냄새뿐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생들은 책상에 엎드려 스크롤만 넘기고 있었다.
노마법사 알베르트 교수는 화염 폭발 마법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복잡한 마나 연산 공식을 적어 내려갔다.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만이 강의실을 채웠다. 그가 삼십 분에 걸친 열정적인 설명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강의실에 있는 백 명의 학생 중 그를 쳐다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책상 아래로 손을 숨기고 무한의 스크롤을 위로 쓸어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유리구슬처럼 탁하게 풀려 있었다.
알베르트 교수는 분노로 몸을 떨며 교탁을 내리쳤다.
이보게들. 자네들은 마법사가 되려는 건가 아니면 손가락 근육만 발달한 바보가 되려는 건가. 당장 그 흉물스러운 스크롤을 집어넣지 못할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수석 졸업 후보생이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 밑에는 며칠 밤을 새운 듯 시커먼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학생은 초점 없는 눈으로 칠판을 보더니 혀를 찼다.
교수님. 너무 깁니다. 지루해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알베르트 교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길다니. 화염 마법의 기초를 다지려면 이 정도 공식은 기본으로 외워야 하네. 예전에는 이틀 밤낮을 새워가며 외우던 것들이야.
학생이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러니까요.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삼십 분이나 듣고 있습니까. 핵심만 요약해서 세 줄로 줄여주시든가 아니면 십오 초 안에 시각적으로 빵 터지게 보여주시든가 하세요. 저런 텍스트 덩어리는 제 뇌가 인식을 거부합니다.
강의실 곳곳에서 학생들의 동조하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세 줄 요약 해주세요. 결론이 뭡니까. 지루해요. 도파민이 안 나와요.
알베르트 교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마법은 깊은 사유와 오랜 시간의 집중력이 필요한 학문이다. 마나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한 시간, 두 시간 동안 머릿속에 복잡한 기하학적 도형을 그리고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젊은 마법사들의 뇌는 십오 초 이상의 자극이 없으면 아무런 정보도 처리하지 못하는 망가진 젤리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일상
비단 마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왕국 전체가 깊은 생각과 인내심을 잃어버렸다.
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은 검을 두드리다가도 십오 초마다 망치를 내려놓고 스크롤을 확인했다. 철은 식어버렸고 만들어진 검은 무뎌서 나무토막조차 베지 못했다. 요리사들은 수프를 끓이다가 솥단지가 까맣게 타들어 가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도, 눈앞의 환영에서 눈을 떼지 못해 주방을 통째로 태워 먹기 일쑤였다.
기사단 역시 엉망이었다. 검술 훈련을 하려면 상대의 동작을 끈기 있게 관찰하고 수를 읽어야 했지만, 기사들은 조금만 대치가 길어지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기를 던져버렸다. 한판 붙자. 아니, 됐다. 너무 길어. 그냥 내가 진 걸로 해. 그들은 승부의 명예보다 당장 침대에 누워 스크롤을 넘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들의 언어 능력은 처참하게 퇴화했다. 긴 문장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 날씨가 몹시 쌀쌀하니 두꺼운 외투를 입는 것이 좋겠소. 바람에서 북쪽 얼음산의 눈 냄새가 섞여 나는구려.
이런 낭만적인 인사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짐승처럼 단어 몇 개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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