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팝니다

중고마켓의 사이코메트리

by 김경훈

찌꺼기의 감각


스마트폰에서 당근 하는 경쾌한 알람음이 울렸다. 그 가볍고 발랄한 세 글자의 소리는 주인공 피의 직업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였다. 피의 반지하 방은 언제나 서늘했고, 공기 중에는 헌 옷 수거함에서 날 법한 묵은 먼지 냄새와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묘하게 섞여 떠다녔다. 피의 앞에는 방금 직거래로 사 온 중고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서리가 닳은 가죽 지갑, 유행이 지난 손목시계, 그리고 누군가 쓰다 버린 뭉툭한 열쇠고리.


피의 초능력은 이 물건들만큼이나 초라하고 우울했다. 그는 손끝으로 사물을 만지면 그 물건이 겪은 가장 슬프고 비참한 기억을 읽어낼 수 있었다. 행복한 기억이나 영광스러운 순간은 결코 재생되지 않았다. 오직 눈물, 한숨, 절망, 찌질한 후회만이 피의 점막을 타고 뇌리에 꽂혔다. 그것은 마치 남의 토사물을 맨손으로 치우는 것 같은 끔찍한 감각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가죽 지갑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가죽의 촉감이 손끝에 닿자마자, 찌릿하는 정전기와 함께 낯선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텅 빈 지갑을 열어보며 한숨을 쉬는 가장의 거친 숨소리, 공과금 고지서를 구겨 쥐던 손아귀의 떨림, 그리고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피의 콧속을 찔렀다. 피는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끼며 손을 뗐다. 우욱. 그는 마른기침을 뱉어냈다.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이것이 그의 생계 수단이었다. 피는 노트북을 열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기계식 키보드의 건조한 마찰음이 방 안을 채웠다.


그는 방금 본 환영을 바탕으로 중고마켓 앱에 판매 글을 작성했다. 한 가장의 눈물과 땀이 배어있는 그러나 끝내 지켜내지 못한 자존심이 담긴 빈티지 가죽 지갑. 피가 묘사하는 감각적인 문장들은 사람들의 감성을 기묘하게 자극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라 부르며, 그가 올리는 물건들을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갔다. 슬픔은 기가 막힌 마케팅 수단이었다.



남겨진 향기와 위스키 잔


다음 날 오후, 피는 지하철역 앞 번화가에서 새로운 물건을 매입했다. 이번에는 제법 묵직한 물건들이었다. 하나는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빈티지 향수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투명하고 무거운 크리스털 위스키 잔이었다. 향수병에서는 여전히 묵직한 우디 향과 샌달우드의 잔향이 옅게 배어 나왔다.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는 한때 누군가의 은밀한 체취였을 것이다.


피는 먼저 향수병을 쥐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의 감각. 순간, 피의 귓가에 차가운 빗소리가 쏴아아 하고 쏟아졌다. 질척이는 진흙탕을 밟는 구두 소리,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 향수병의 주인이었던 남자가 비 오는 골목길에서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났고, 남자는 오열했다. 그때 남자의 품속에서 굴러떨어진 것이 바로 이 향수병이었다. 차가운 빗물과 뜨거운 눈물, 그리고 값비싼 향수 냄새가 시궁창 냄새와 뒤엉켜 피의 후각을 폭격했다.


피는 미간을 찌푸리며 향수병을 내려놓았다. 지독한 미련의 냄새였다. 그는 곧바로 다음 물건, 크리스털 위스키 잔으로 손을 옮겼다. 묵직한 잔의 바닥에 손가락이 닿았다. 챙, 챙. 얼음이 크리스털 벽에 부딪히는 맑고 영롱한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은 결코 영롱하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한 중년 남자가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급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실 돈조차 없어, 싸구려 플라스틱 통에 든 소주를 이 크리스털 잔에 콸콸 쏟아붓고 있었다. 꿀꺽꿀꺽. 독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억눌린 흐느낌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잔 테두리를 악물던 남자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딱, 딱 울렸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패배자가 부르는 가장 처절한 장송곡이었다.


피는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남의 불행을 훔쳐보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피로를 동반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비 오는 날의 비참한 이별을 목격한 샌달우드 향수병, 그리고 파산한 사업가의 쓴 소주를 담아내야 했던 비운의 크리스털 잔. 판매 글을 올린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이 징징 울렸다. 구매 희망자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타인의 절망이 묻은 물건을 기꺼이 돈을 주고 사려 했다. 그들은 비극적인 서사를 안주 삼아 자신의 안전한 현실을 위로받고 싶어 했다.



가장 차가운 쇳덩어리


며칠 후, 피는 거래를 위해 낡은 전당포를 찾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피의 시선을 끈 것은 구석에 처박힌 낡고 묵직한 놋쇠 만년필이었다. 금속 표면은 곳곳에 칠이 벗겨져 있었고, 손가락이 닿는 그립 부분은 누군가의 땀에 의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피는 자신도 모르게 만년필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차가운 놋쇠에 닿는 순간 엄청난 파도가 그를 덮쳤다. 그것은 여태껏 경험했던 이별의 슬픔이나 파산의 절망과는 결이 달랐다. 사각, 사각. 거친 종이 위를 긁고 지나가는 펜촉의 마찰음이 들렸다. 이어서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는 파열음이 피의 고막을 때렸다.


만년필의 기억 속에서 주인은 책상 앞에 앉아 밤을 새우고 있었다. 잉크 냄새와 눅눅한 먼지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혹은 가족에게 남길 마지막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심하게 떨리는 손은 마음을 제대로 활자로 옮기지 못했다. 글씨는 엉망으로 번졌고, 차마 적어 내리지 못한 진심들이 펜촉 끝에서 잉크와 함께 뭉개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새벽의 허공을 향해 애꿎은 만년필만 꾹꾹 눌러대던 그 참담한 무력감과 지독한 고립감. 피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듯한 끔찍한 압박감에 사로잡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피는 만년필에서 손을 뗐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팔아치웠던 감정들은 차라리 가벼운 투정에 불과했다. 이 쇳덩어리에 스며든 감정은 자신의 마음을 바깥세상으로 단 한 줄도 꺼내놓지 못한 채 철저히 갇혀버린 인간의 지독한 고독 그 자체였다. 피는 처음으로 이 물건을 도저히 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화려한 문장으로도 이 무거운 침묵의 무게를 가볍게 포장할 수 없었다. 이 슬픔은 가십거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침묵의 결말


피는 만년필을 자신의 좁은 방 한구석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판매 앱의 알람이 수없이 울렸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다. 진동 소리마저 오늘따라 누군가의 비명처럼 들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매연 섞인 도시의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저 아래 도로에서는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었고,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피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타인의 슬픔을 만지고, 그것을 활자로 가공해 돈을 벌었던 손. 어쩌면 가장 슬프고 비참한 사물은 이 방에 굴러다니는 남의 중고품들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엔터테인먼트로 팔아먹으며 연명하고 있는 피의 타락한 뇌세포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그는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경첩이 맞물리며 탁 하는 소리가 방 안을 건조하게 울렸다. 더 이상 남의 불행을 훔쳐보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그는 방금 내려놓은 놋쇠 만년필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어떤 기억도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차가운 금속의 촉감 자체를, 누군가의 고독을 지탱했던 그 단단한 질감을 온전히 느껴볼 뿐이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그의 방만큼은 완벽하고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기만의 교차로와 헤르메스의 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