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의 모든 도덕과 가치를 의심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 철학자이다.
그에게 붙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은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가치를 두드려보고 그 진실성과 건강함을 시험하는 철학적 장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당시 서구 사회를 병들게 한 도덕의 정체를 ‘노예 도덕’이라 불렀다.
겸손과 순종 그리고 동정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 가치 체계는 약자가 강자에게 품은 원한에서 비롯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도덕이었다.
이 니체의 통찰은 오늘날 정보 기술과 접근성의 현실에도 뼈아픈 시사점을 던진다.
한 기술 회사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고 사용자 간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한 사용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희를 위해 이런 것까지 만들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어떤 기능이든 주시는 대로 감사히 쓰겠습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온순하지만, 실상은 세상이 장애인에게 기대하는 수동성과 겸손을 그대로 반영한 전형적인 노예 도덕의 발현이다.
하지만 또 다른 사용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서비스는 접근성의 기본 원칙을 위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혜가 아닌 동등한 사용 권리를 요구합니다. 이 문제가 수정되지 않는다면 이 서비스는 실패할 것입니다.
이 말은 니체가 말한 ‘주인 도덕’의 전형적인 언어다.
남이 정해준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기준을 세우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관철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추구한 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니체는 이러한 병든 도덕과 세계에 대한 처방으로 ‘영원회귀’라는 극단적 사유 실험을 제시한다.
지금 이 삶의 모든 순간을, 좋든 싫든 똑같이 무한히 반복해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개념은 시각장애인에게 더욱 냉혹하게 다가온다.
매일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문턱, 불친절한 시스템, 무심한 배제와 편견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니체는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의 의지를 시험한다.
어차피 반복될 고통이라면 그것을 원한과 체념으로 감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 순간을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하며, 그 순간 자체를 긍정할 것인가
그는 후자를 택한 존재를 ‘초인’이라 부른다.
초인은 영원히 반복해도 좋을 만큼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긍정하는 사람이다.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는 일은 어쩌면 이 니체의 철학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세상이 동정이나 시혜로 던져주는 서비스를 감사히 받으며 만족하는 것은 노예 도덕의 연장이다.
진정한 접근성은 기술 구조의 본질을 다시 설계하고, 기존의 기준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정보 장벽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 벽을 부수고 그 자리에 더 나은 것을 세우는 태도야말로 주인 도덕의 실천이며 초인의 자세이다.
오늘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정보의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다.
그들이 니체의 망치를 손에 쥐고 있다면, 그 망치는 단지 깨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와 가능성을 두드려보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창조의 도구일 것이다.
영원히 반복해도 좋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순간의 투쟁.
그것이 바로 정보 접근성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는 니체 철학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