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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정보의 감옥을 넘어서

by 김경훈

문헌정보학을 전공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고요한 도서관, 오래된 책, 그리고 대출 도장을 찍는 사서를 떠올린다.

그 이미지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책과 사서, 서가와 정적은 이 학문이 품고 있는 본래의 풍경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헌정보학의 무게중심은 더 이상 ‘문헌’이라는 유형의 그릇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정보’라는 무형의 내용물로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이동했다.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그쳤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문헌정보학자는 정보 자체의 흐름과 구조를 설계하고, 그 접근성과 형평성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시각장애인 연구자에게 이 전환은 단순한 학문적 흐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종이책은 아름답고 고귀한 문화 자산이지만, 동시에 시각장애인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지식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텍스트가 점자나 음성으로 변환되지 않는 한, 그것은 오직 손에만 존재하고 머리에는 닿지 않는 벽이다.

그러나 ‘정보’는 그릇으로부터 해방된 존재다.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정보는 음성으로, 촉각으로, 진동으로 무한한 형태로 변형되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 접근 가능한 실체로 전환된다.

매체 독립성을 획득한 정보는 곧 해방된 지식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문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보가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담기면서, 다른 종류의 비대칭이 생겨났다.

화면에만 의존하는 키오스크, 이미지 파일로만 구성된 공공사이트, 대체텍스트 없는 SNS 콘텐츠 등은 시각장애인을 또다시 정보의 밖으로 밀어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정보소외의 형태도 정교해지고 은밀해진다.

시각장애인 연구자로서 이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이러니하고 때때로 씁쓸한 일이다.

연구 대상이자 연구자가 되는 경험은, 사회가 만들어낸 정보의 문턱이 얼마나 무심하게 높은지를 매일 체감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문헌정보학은 단순한 기술 응용이나 현상 분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학문이 추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보 생태계를 설계하는 데 있다.

누군가의 정보 검색 패턴을 분석해 그 사람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탐색 경로를 제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시각적으로 표현된 그래프와 도표를 촉각이나 음성으로 번역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정보를 손과 귀로 그려주는 도구를 개발하는 일.

그 모든 연구는 결국 정보라는 거대한 벽에 틈을 내고,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광장을 만들어가는 시도다.


오늘날의 문헌정보학자는 더 이상 책의 수호자나 지식의 관리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는 기술자이자, 정보의 숲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항해사이며, 정보 장벽의 감시자이자 허무는 사람이다.

먼지 낀 책을 닦는 대신, 투명하지 않은 웹사이트의 구조를 분석하고, 닫힌 데이터의 문을 여는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문헌정보학이 부여받은 가장 현대적이고도 절실한 사명이다.

정보에 닿을 수 없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보가 모두에게 ‘있되 보이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 학문이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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