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을 만지는 천사들의 착각

by 김경훈

기꺼이 악당이 되려는 사람은 없다.


길을 걷다 보면 나의 안내견 탱고에게 허락 없이 손을 뻗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의 표정에는 악의가 전혀 없다.

오히려 세상을 구원할 듯한 자애로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심지어 나쁜 짓을 할 때조차 그것이 옳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탱고를 쓰다듬는 사람 역시 자신은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얄팍한 기준에 취해 있을 뿐이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타인의 잘못을 볼 때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 보라고 조언했다.

그들이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끓어오르던 분노는 한풀 꺾인다.



[감각사진]

평온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팽팽한 하네스의 손잡이가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손길에 의해 덜컹거리며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감각을 떠올려 본다.

리듬을 잃고 우뚝 멈춰 선 안내견의 당황한 콧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예고 없이 침범한 낯선 타인의 체온이 서늘했던 공기를 답답하게 데운다.

반사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하며 어깨 근육이 딱딱하게 뭉치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한숨을 꾹 삼키느라 목구멍 안쪽이 턱턱 막혀오는 그 불쾌하고 뜨거운 온도 말이다.



링컨의 일침, 그리고 올바른 판단의 중요성.


상대방의 무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잘못을 그냥 넘어가 주라는 뜻은 아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선악을 아예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했다.

무조건적인 용인은 비뚤어진 시각을 방치하는 직무 유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군 병사들이 스스로의 의무를 다했다고 합리화했을 때, 링컨은 그들의 이해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명확히 지적하며 올바른 의무를 밀어붙이자고 연설했다.

정보학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 서비스 제공자가 시각장애인용 대체 텍스트를 누락해 놓고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할 때, 우리는 그들의 기술적 한계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명백한 정보 차별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악의 없는 무지라고 해서 그 결과까지 무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는 빼고 팩트만 남기는 지혜.


살아가면서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착한 바보들을 만난다.

그들은 선의로 포장된 무례함을 저지르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화를 가라앉히는 차분한 이성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날카로운 잣대이다.

탱고를 만지려는 손길에 소리를 지르는 대신, 안내견을 만지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건조하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만이 꽉 막힌 세상의 장벽을 조금씩 부수고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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