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얼어붙은 짐승의 피처럼 차갑고 무의미하다. 사람들은 순백의 눈이 모든 더러운 것을 덮어준다고 믿지만 나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묻히고 오직 가장 지독한 탐욕의 냄새만이 얼음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시각이 완벽하게 차단된 어둠 속에서 나는 헛된 도덕을 쫓는 고결한 탐정이 아니다. 나는 썩은 고기를 물어뜯는 악당들의 식탁 아래에서 가장 기름진 뼈다귀를 가로채는 눈먼 사냥개다. 내 이름은 엘리야. 보이지 않는 대신 디지털 공감각이라는 나만의 예리한 무기로 세상의 이면을 낱낱이 해부하는 자다. 내 발치에는 이 위험한 사냥의 완벽한 공범이자 가장 충직한 안내견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탱고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눈밭을 딛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깊은 산속에 고립된 최고급 통나무 산장이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이 산장의 외벽을 때리며 짐승의 울음소리를 냈다. 나를 이 혹한의 지옥으로 데려온 자는 거대 건설사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해결사 최 실장이었다. 그는 건설사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늙은 재무 이사가 수백억 원어치의 금괴를 빼돌려 이 산장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최 실장의 임무는 배신자를 처단하고 금괴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 험준한 산길에 눈먼 사설탐정을 굳이 대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법정에 섰을 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가장 무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시각장애인 탐정은 그들의 더러운 연극을 완성하기 위한 완벽한 장기 말에 불과했다.
산장의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최 실장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권총의 손잡이로 유리창을 깨부수고 문을 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의 예민한 후각은 벽난로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장작 냄새가 아니라 아주 매캐하고 역겨운 유독 가스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동물의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악취와 화학 섬유가 녹아내리는 냄새였다. 산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침실 쪽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침실의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최 실장이 묵직한 어깨로 문을 거칠게 부수고 들어가는 파열음이 산장을 울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던 뜨거운 열기와 짙은 매연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나의 얼굴을 덮쳤다. 나는 기침을 참으며 탱고의 하네스를 바짝 당겨 쥐었다. 불길은 산소 부족으로 이미 사그라든 상태였지만 방 안은 온통 잿더미와 짙은 연기로 가득했다. 나의 디지털 공감각은 방 안의 온도 분포와 메아리의 변형을 통해 공간의 참혹한 형태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있는 철제 침대 위에는 새카맣게 타버린 시신 한 구가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최 실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무 이사가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금괴가 들어있는 가방과 함께 분신자살을 했다고 소리쳤다. 그는 배신자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끔찍한 선택을 했다며 분노를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끝에 매달린 미세한 파동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환희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나는 장갑을 벗고 지팡이를 짚으며 시신이 있는 침대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발바닥에 밟히는 잿더미의 서늘한 촉감과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의 입자들을 하나씩 분해하기 시작했다. 밀실에서의 분신자살이라는 최 실장의 주장은 너무나도 조잡하고 얄팍한 거짓말이었다. 시신의 주변에서는 인화성 물질인 휘발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것은 아주 기묘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만약 스스로 불을 질렀다면 온몸에 휘발유를 부었을 테니 바닥 전체에서 균일한 냄새가 나야 했다. 하지만 냄새는 시신의 상반신 쪽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시신의 타다 남은 손목 부분을 지팡이 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시신의 뼈와 근육이 불에 타 수축된 형태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 흔적이 아니라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불태워진 수동적인 경직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의 후각을 자극한 것은 시신의 목 주변에서 희미하게 배어 나오는 치명적인 독약의 냄새였다. 아몬드 향을 내는 시안화칼륨의 잔향이 불에 탄 살점의 악취 아래에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재무 이사는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독살당한 뒤 시신이 훼손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밀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침실의 문쪽으로 걸음을 옮겨 부서진 도어록의 잔해를 더듬었다. 안에서 걸어 잠그는 이중 잠금장치였지만 바닥에 아주 얇고 탄력 있는 낚싯줄의 파편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지팡이 끝에 걸렸다. 범인은 밖으로 나가면서 문틈 사이로 낚싯줄을 연결해 안쪽의 잠금쇠를 당겨 밀실을 조작한 것이다. 그리고 낚싯줄을 끊어버려 완벽한 자살의 무대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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