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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숲과 정보 접근성의 진리

by 김경훈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존재자’에만 몰두해 왔다고 비판했다.

즉 철학은 사과, 의자, 인간과 같은 개별적인 존재자들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그 존재자들이 존재자일 수 있게 하는 근원적 ‘있음’ 곧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질문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 잊힌 질문을 복원하기 위해 철학을 ‘존재와 시간’이라는 이름의 깊고도 난해한 숲 속으로 이끈다.


이 철학의 숲을 오늘날 접근성을 고민하는 한 시각장애인의 일상 속으로 옮겨보자.

그는 웹서핑을 하다가 하나의 이미지를 만난다.

그러나 스크린리더는 단지 ‘이미지’ 혹은 ‘그래픽 1234’라는 무의미한 언어만을 들려줄 뿐이다.

이 순간 이미지라는 존재자는 분명히 자리에 있지만, 그의 의식 속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폐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가 대체 텍스트를 활성화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스크린리더는 말한다.

햇살 속에서 잠든 뚱뚱한 분홍색 안내견 탱고.

이 짧은 문장이 들리는 순간 그 이미지 속의 존재자가 마침내 그의 의식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닫혀 있던 세계가 열리고 은폐된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드러남의 순간을 ‘알레테이아’ 곧 ‘진리’라고 불렀다.

진리란 존재자가 존재자이게 되는 방식이 드러나는 일이며, 그 과정이 바로 존재의 공간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로 인간을 지목하며 그를 ‘현존재’라 불렀다.

그의 철학에서 현존재는 존재자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은폐된 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존재이다.

위의 이야기 속에서 이미지의 의미를 알고자 하고 그것의 부재를 문제 삼는 시각장애인 사용자는 바로 그 현존재이다.

이미지 자체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질문하는 존재만이 그것의 의미를 끌어내고 진리의 공간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성을 연구하는 일은 단순히 데이터를 설계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의 세계 속에서 은폐된 존재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철학적 작업이다.

‘정보 격차’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불균형이며 드러남의 부재다.

접근성 연구란 모든 존재자가 모든 현존재에게 알레테이아의 방식으로 열릴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잘 설계된 웹사이트는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자가 은폐되지 않고 드러날 수 있도록 개간된 공간이며, 충실한 대체 텍스트는 그 드러남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빛이다.

정보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밝은 이정표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어렵고 때로는 낯설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정보 접근성과 같은 구체적 기술 문제를 ‘존재’와 ‘진리’라는 근원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모든 정보는 존재자이며, 그 존재자는 자신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은 그 드러남을 만날 권리를 가진다.

접근성이란 결국 존재와 존재자가 서로 마주치는 진리의 장을 열기 위한 철학적 실천이다.


이것이야말로 하이데거의 숲 속을 탐험하며 우리가 발견한 정보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이정표이다.

기술 너머에서 진리를 묻는 자, 존재의 드러남을 돕는 자.

그가 바로 오늘날 접근성을 실천하는 철학자이며,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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