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분노의 외주화를 멈추는 법

에픽테토스의 멘탈 관리 알고리즘

by 김경훈

내 마음의 서버 관리자 권한 되찾기


에픽테토스는 시작에 앞서 두 가지 규칙을 기억하라고 했다.

쾌락과 불쾌는 외부가 아니라 내 이성적 선택에서 오며, 사건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반응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십 세기의 수도사 앤서니 드 멜로 역시 내 분노의 원인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뼈를 때렸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내 마음의 서버 관리자 권한을 너무 쉽게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넘겨버리고 산다.

무례한 사람이나 엉망으로 설계된 웹사이트에 분노와 짜증을 쉴 새 없이 외주 주면서 스스로 멘탈 서버의 트래픽을 폭주시켜 다운되게 만드는 꼴이다.



[감각사진]

길을 걷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흰 지팡이가 툭 걸려 우뚝 멈춰 섰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손목을 타고 찌릿하게 올라오는 둔탁한 충격에 순간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지고 얕은 짜증이 훅 달아오른다.

하지만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지팡이를 쥔 손아귀의 힘을 가볍게 푼다.

지팡이 끝으로 장애물의 형태를 천천히 부드럽게 더듬어 파악하는 순간, 혈관을 타고 오르던 뜨거운 불쾌감은 차갑고 차분한 이성의 온도로 스르르 가라앉는다.

막힌 길이라는 외부의 사건을 당장 치워버릴 수는 없지만, 돌아가는 길을 탐색하는 내 손끝의 여유만큼은 완벽하게 내 소유임을 확인하는 그 짜릿하고 묵직한 온도 말이다.



저것은 나쁜 것이라는 착각


우리는 세상의 모든 버그와 오류를 수정할 수 없다.

스크린리더가 이미지의 대체 텍스트를 읽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누군가 편견 어린 말을 던질 때, 그 사건 자체를 원천 차단할 방법은 없다.

저것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은 사실 내 내부의 기대에서 비롯된다.

세상이 완벽하게 합리적일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았기에 실망과 분노도 큰 법이다.

관점을 바꾸면 사건을 거부할지 웃어넘길지 결정하는 통제권이 비로소 내게 들어온다.

외부의 자극이라는 입력값이 들어올 때 분노를 출력할지 평정심을 출력할지 결정하는 최종 알고리즘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감정의 운전대는 남에게 주지 마라


어떤 사람도 내 마음을 지배할 수 없고, 나 역시 타인과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선택을 할 뿐이다.

이 변치 않는 지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하게 검증된 정보 보안 매뉴얼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다면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내 마음의 보안 방화벽이 너무 헐거웠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내 감정의 운전대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맡기기엔 너무 비싸고 소중한 물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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