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레비아단과 빅테크의 알고리즘 뱀

by 김경훈

가짜 괴물을 만들어 바다를 지배한 사람들


가나안과 페니키아의 전설에는 레비아단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등장한다.

길이가 삼십 미터가 넘는 악어나 고래의 모습을 한 이 괴물은 살가죽이 너무 두꺼워 작살이 뚫지 못하고 아가리로는 불을 뿜는다.

욥기에서는 이 괴물이 바다를 가마솥처럼 끓게 만든다고 묘사한다.

대양의 원초적 파괴력을 상징하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 앞에서는 영웅들도 넋을 잃는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어쩌면 레비아단은 페니키아 사람들이 바다에 대한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지어낸 가짜 뉴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다.

괴물에 대한 공포심을 퍼뜨려 경쟁자들의 뱃길을 막으려 했던 고대의 고도화된 정보 조작인 셈이다.



[감각사진]

순조롭게 읽혀 내려가던 스크린리더의 음성이 갑자기 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코드를 와다다 쏟아낼 때의 막막한 감각을 떠올려 본다.

정돈된 텍스트의 바다를 항해하던 귓가에 일순간 쇳소리가 섞인 기계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고막을 어지럽게 때린다.

정보의 맥락은 완전히 끊어지고 시야를 대신하던 청각은 거대한 미로 속에 갇힌 듯 방향을 잃는다.

도무지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하고 차가운 디지털 장벽 앞에서 척추를 타고 오르는 막연한 두려움과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지는 그 차갑고도 당혹스러운 온도 말이다.



현대판 레비아단과 정보의 비대칭


페니키아인들이 레비아단을 앞세워 바다를 독점했듯 현대의 빅테크 기업들과 권력자들은 복잡한 알고리즘과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라는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고 거대해서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는 공포와 무력감을 교묘하게 조장한다.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정보 접근성을 차단하는 웹사이트나 복잡한 보안 프로그램은 작살로도 뚫을 수 없는 레비아단의 두꺼운 비늘과 같다.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접근의 뱃길을 막아버리는 현대판 해상 통제이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기술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스스로 정보의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공포라는 환상을 꿰뚫는 작살


태양을 삼켜 일식을 만든다는 뱀 로탄의 전설처럼 거대한 기술 자본은 우리의 이성을 삼켜버리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결국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허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괴물 앞에서도 우리는 기꺼이 낚싯대를 던져야 한다.

두꺼운 비늘을 뚫는 무기는 맹목적인 공포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고 당당히 접근 권리를 요구하는 정보 리터러시이다.

지어낸 괴물에게 겁을 먹고 항해를 포기하기에는 우리가 개척해야 할 지식의 바다가 너무도 넓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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