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가장 두꺼운 철학책을 읽는 법
머릿속의 철학과 일상의 철학
철학자라고 하면 흔히 깊은 산속이나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서재에 틀어박혀 우주의 진리를 고민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에픽테토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제자들에게 인간처럼 먹고 마시며, 옷을 입고 결혼을 하라고 가르쳤다.
심지어 고집불통인 이웃과 동료를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철학은 책갈피 속에 박제된 활자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일상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일갈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데이터는 죽은 정보에 불과하다.
그 데이터가 나의 구체적인 삶이라는 맥락과 결합하여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지혜가 된다.
[감각사진]
결혼식을 앞두고 예비 신부 보보와 함께 식장에 들어갈 때 입을 예복의 원단을 고르던 순간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눈으로 색상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양복점 직원이 건네주는 여러 장의 직물을 손끝으로 번갈아 더듬어볼 때 미세하게 달라지는 두께와 마찰력의 차이가 선명하게 전해진다.
까슬까슬하고 빳빳한 이탈리아산 원단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영국산 원단의 질감을 비교하며 곁에 선 보보와 나지막하게 의견을 나눈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내 팔짱을 통해 전해지고, 원단을 문지르는 손끝에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갈 수많은 날들의 무게감이 기분 좋은 묵직함으로 얹혀 있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한 벌의 단단한 옷으로 구체화되는 그 따스하고도 생생한 온도 말이다.
플루타르코스의 깨달음과 텍스트의 생명력
플루타르코스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없이 읽었어도, 결국 자신이 직접 겪어낸 개인적인 사건과 경험을 통해서만 그 단어들의 진짜 의미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랑과 인내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연인과 미래를 계획하고 때로는 피곤함에 지쳐 서로를 묵묵히 인내하는 과정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없다.
안내견 탱고와 함께 복잡한 거리를 걸어보지 않고서는 장애와 포용이라는 학술적 용어가 일상에서 얼마나 뼈아프고 서늘한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자잘한 일상과 부대낌이 결국 빈약한 텍스트에 붉은 피를 돌게 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삶이라는 가장 두꺼운 철학책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철학의 연속이다.
누구에게 투표할지 고민할 때,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심지어 앞을 가로막는 무례한 사람을 꾹 참고 지나갈 때조차 우리는 치열하게 철학을 하고 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얄팍하지만 온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철학은 단단하다.
에픽테토스가 요구했던 것처럼 오늘도 나는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미래를 준비하며 나만의 철학책을 한 장씩 묵묵하게 채워간다.
굳이 거창한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내 삶이라는 가장 훌륭하고 두꺼운 텍스트가 매일 내 손끝에 펼쳐져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배움의 터전이 또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