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으로써 완성되는 지적 풍요
채우는 자유와 비우는 자유
풍요로움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거나,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전자를 부추긴다.
더 넓은 아파트를 사고 더 비싼 차를 굴려야 자유로워진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욕망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제거할 때에야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일갈했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는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내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려는 무모한 정보 저장 강박이고, 후자는 나에게 꼭 필요한 메타데이터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는 우아한 정보 미니멀리즘이다.
[감각사진]
며칠 동안 양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백팩의 내용물을 책상 위에 모두 쏟아냈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어깨뼈를 파고들던 가방 끈의 둔탁한 압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굽어 있던 척추가 위로 시원하게 펴진다.
언젠가 읽겠지 하며 욕심껏 쑤셔 넣었던 무거운 전공 서적과 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이 빠져나간 텅 빈 가방을 손끝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본다.
공기만 남은 헐렁하고 보드라운 가방의 얄팍한 부피감이 손바닥에 기분 좋게 감기고, 목덜미를 짓누르던 묵직한 피로감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그 홀가분하고도 청량한 온도 말이다.
클라우드 용량을 늘리는 대신 욕망의 캐시 삭제하기
우리는 무언가를 더 갖기 위해 애를 태우고 분투한다.
프리미엄 요금제를 결제하여 클라우드 저장 용량을 늘리고, 남들이 다 보는 유행하는 숏폼 영상들을 강박적으로 훑어보며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 든다.
하지만 그렇게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발버둥 칠수록 우리는 시간과 자본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에픽테토스의 조언처럼 가장 손쉽고 빠른 해결책은 외부의 자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의 가치에 집중하고 그것에서 깊은 만족을 얻는다면, 우리는 무한한 정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대신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미 가진 것들의 목록 작성하기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조차도 하루 이십사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 앞에서는 굴복해야 한다.
그러니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며 결핍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둘 때다.
나의 능력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한 헛된 욕망의 스위치를 끄고, 지금 내 곁을 지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반려견 그리고 오늘 하루 무사히 연구를 마칠 수 있었던 소박한 일상에 감사해 보자.
풍요와 자유는 바깥에서 힘들게 쟁취해 오는 전리품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불필요한 욕망을 비워낸 그 텅 빈 공간에 조용히 차오르는 맑은 공기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