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감시자

배고픈 철학자의 이성 가출 사건

by 김경훈

누가 나의 이성을 감시하는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는 누가 감시자를 감시할 것인가라는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명상록에서 당신을 지배하는 이성은 어떻게 관리되는가 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인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내린 고상한 결정들이 진짜 내 이성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다른 힘에 조종당한 결과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이 이성의 작동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마스터키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그저 연기이거나 껍데기일 뿐이다.



[감각 사진]

마감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논문 작업에 몰두하다가 끼니를 놓쳤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고요하던 뱃속에서 미세한 경련과 함께 꼬르륵거리는 마찰음이 울리고, 꼿꼿했던 척추의 힘이 스르르 풀리며 턱관절 주변의 근육이 미세하게 굳어진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끝의 감각은 둔해지고, 오직 길 건너편 식당에서 풍겨오는 매콤하고 기름진 찌개 냄새만이 콧속의 점막을 맹렬하게 타격한다.

우아한 학술적 사유로 가득 차 있던 뇌의 램 용량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리고, 당장 무언가를 씹어 삼키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혈관을 타고 뜨겁게 솟구치는 그 아찔하고도 치명적인 온도 말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어리석은 결정


우리는 스스로 엄청난 인내심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과학은 참으로 잔인하게도 인간이 공복 상태일 때 얼마나 어리석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증명해 냈다.

점심을 굶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구실 동료의 가벼운 농담에 욱하거나 안내견 탱고의 작은 움직임에도 여유를 잃는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갈고닦은 철학이 내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아무리 최신 버전의 철학 소프트웨어를 깔아두었어도, 체력과 감정이라는 하드웨어의 배터리가 방전되면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이치와 같다.



내면의 서버 점검하기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은밀한 힘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성이 완벽한 재판관이라는 착각을 버리고, 그 재판관 역시 수면 부족이나 배고픔 혹은 편견이라는 뇌물에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철학을 굴러가게 하는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통제하는 것이 먼저다.

훌륭한 학자가 되기 전에 일단 제때 밥을 먹고 잠을 푹 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나의 이성이 자꾸만 엇나간다면 고전을 뒤적이기 전에 일단 냉장고 문부터 열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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