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다

샌델의 기여적 정의

by 김경훈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은 그날따라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사는 책상 위에 수십 개의 주사위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육면체, 십이면체, 이십면체… 각기 다른 모양의 주사위들이 위태로운 탑을 이루고 있었다.


“박사님.”

리디아가 벤치에 앉아 컵라면(물론 홀로그램이었다)을 후루룩거리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확률 통계학 공부라도 하시게요?”


“아니, 리디아. 이건 ‘바벨탑’일세.”

박사가 조심스럽게 마지막 주사위를 올리며 말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그 오만한 탑 말이야. 하지만 보게, 이 탑은 내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바닥의 기울기 같은 ‘우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 내 실력이 아니란 말이지.”


와르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사위 탑이 무너져 내렸다.


“거봐요. 그냥 똥손이신 겁니다.”

리디아가 국물을 마시며 시크하게 대꾸했다.


그때, 낡은 황동 방울이 거칠게 울렸다.

'딸랑! 딸랑!'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남자가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그의 이름은 사울(Saul). 네오-예루살렘의 ‘제1구역’ 관리자이자, 엔클레이브 시민 등급 ‘레벨 9(최상위)’을 보유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는 황금빛이 감도는 완벽한 핏(Fit)의 슈트를 입고 있었고, 그의 턱선과 어깨 라인은 마치 수학적으로 계산된 듯 완벽했다. 그의 아바타에서는 ‘성공’, ‘노력’, ‘자수성가’의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완벽한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3

“이건 부당합니다! 말도 안 되는 오류입니다!”

사울이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쳤다.



1장: 99점의 비극


사울은 박사의 책상을 내리쳤다. 무너진 주사위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제 점수가 99점이라니요! 저는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습니다. 제 업무 처리 효율은 99.9%였고, 지난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시스템 최적화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 아침, 제 등급이 ‘레벨 8’로 강등되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억울함에 떨리고 있었다.

엔클레이브에서 ‘등급’은 곧 존재 가치였다. 레벨 9는 시스템의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솔로몬 박사는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를 하나씩 주우며 물었다.

“그래서? 강등 사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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