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의 파이트 클럽
과시용 데이터를 저장하는 삶의 피곤함
에픽테토스는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통제 밖에 있는 일에 애를 쓰다가는 인생이 망가진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명대사처럼, 우리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모으느라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아무도 읽지 않을 과시용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내 삶의 한정된 램 용량과 하드디스크를 탕진하는 꼴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나를 연기하는 일은 그 어떤 서버 유지비보다 값비싼 청구서를 우리 영혼에 내민다.
[감각 사진]
결혼을 코앞에 두고 동생 영준이 찍어주는 웨딩 촬영을 위해,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빳빳한 턱시도를 챙겨 입었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숨통을 옥죄는 나비넥타이의 거친 질감이 목젖을 압박하고, 억지로 등허리를 곧게 펴게 만드는 조끼의 팽팽한 장력 탓에 갈비뼈 사이로 얕은숨이 비집고 나온다.
매일 편하게 걸치던 헐렁한 맨투맨 티셔츠의 자유로움이 간절해지며, 남들에게 멋진 신랑으로 보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이 거추장스러운 의복의 무게감이 척추를 타고 뻐근하게 짓누르는 그 답답하고 뜨거운 온도 말이다.
노이즈 캔슬링과 내면의 평정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불편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평소와 다르게 말하며 스스로 멋지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라면 참으로 슬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영역 안에서 묵묵히 철학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라고 충고했다.
귀에 덮은 보스 헤드폰의 노이즈 캔슬링 스위치를 켜듯, 세상의 시끄러운 평가와 인정 욕구를 단호하게 차단해야 한다.
타인을 위해 나를 잃어버리는 짓을 멈출 때, 비로소 철학이 가져다주는 깊은 평정과 고요함이 우리 내면의 주파수를 맑게 채워줄 것이다.
진짜 나를 위한 맞춤형 알고리즘
세상이 정해놓은 멋짐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내 마음의 통제권을 길거리의 낯선 이에게 넘겨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과시를 위한 영수증은 과감히 찢어버리고, 타인의 인정이라는 불필요한 쿠키 데이터를 삭제하자.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턱시도를 벗어 던지고, 가장 나답고 편안한 호흡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수천 년 전 스토아 철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트 있고 실용적인 라이프스타일 매뉴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