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욕실에서는 재난 영화가 개봉한다.
주연: 물을 극도로 혐오하는 덩치 큰 털 뭉치.
조연: 그를 씻겨야만 하는 시각장애인.
제목은 <탱고와의 전쟁: 샴푸의 습격>이다.
이 소란스러운 전쟁은 그러나 단순한 위생 관리를 넘어 여러 학문적 통찰을 제공하는 훌륭한 ‘사유 실험’의 장이 된다.
제1교시: 윤리학.
타인의 돌봄에 익숙한 입장에서, 다른 생명체를 온전히 책임지고 돌보는 이 역할의 전환은 특별하다.
이것은 추상적인 감사를 구체적인 책임으로 옮기는 ‘돌봄 윤리(Ethics of Care)’의 가장 순수한 실천이다.
탱고의 밥그릇을 채우고 그의 몸을 씻기는 행위를 통해, 받기만 하던 존재에서 베푸는 존재로 잠시나마 거듭나는 것이다.
제2교시: 사회학.
이 관계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닌 완벽한 ‘공생 관계(Symbiotic Relationship)’이다.
탱고는 안전한 보행이라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나는 식사와 목욕이라는 복지를 제공한다.
젖은 몸을 말리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탱고를 보고 있자면, 이 불평등(?) 계약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 같아 뜨끔할 때가 있다.
제3교시: 심리학.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거대한 개를 씻기고 말리는 복잡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할 수 있다’는 감각, 즉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는 타인에게 의존하며 생길 수 있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심리적 백신이다.
결국 탱고를 씻기는 일은 녀석의 털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어내는 과정이다.
돌봄이란 결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며,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역할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진리.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경험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가 더 단단해진다는 역설.
이 모든 심오한 깨달음을, 오늘의 이 털 많고 물기 가득한 스승은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목욕 전쟁이 끝나고, 뽀송뽀송해진 탱고를 보며 숭고한 깨달음에 잠겨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녀석은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비에 젖은 발로 온 집안에 흙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거실 바닥에 펼쳐진 아방가르드한 그의 작품 세계.
그렇다.
돌봄의 윤리는 때로, 걸레질이라는 이름의 고된 육체노동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나의 스승님은 깨달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숙제도 남겨주셨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