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코끼리를 탈출시키는 법

by 김경훈

불길 속에서 거대한 코끼리가 죽었다.

녀석을 붙잡은 건 쇠사슬이 아니었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는 낡아빠진 기억, 고작 그것이었다.

어릴 적 뽑지 못했던 말뚝은 어른이 되어서도 뽑을 수 없는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 되었다.

이 얼마나 멍청하고도 비극적인가!


이 코끼리의 비극은 안내견 탱고와의 산책길에서 종종 떠오른다.

사람은 과거의 실패나 불편함을 기억하며 신중하게 경로를 선택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길.

이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자, 스스로 발에 묶어놓은 보이지 않는 말뚝이다.

하지만 탱고에게 세상은 냄새와 소리로 가득한 탐험의 대상이다.

녀석은 하네스를 통해 말하는 듯하다.

“주인님, 그 길도 괜찮지만 이쪽도 한번 가보시죠?”


결정적인 순간은 늘 갑작스럽다.

늘 지나던 횡단보도 앞에서, 탱고가 한쪽 다리를 굳게 버티며 다른 방향을 고집할 때.

머릿속에서는 두 명의 내가 싸운다.

‘야, 내가 이 길 전문가야!’라고 외치는 꼰대 자아와, ‘그래도 쟤가 저러는 덴 이유가 있겠지’라고 속삭이는 신중한 자아.

익숙한 인지적 관성(Cognitive Inertia)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둘 사이의 협업은 시험대에 오른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하네스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조용히 말한다.

“가자.”

이 한마디는 단순한 명령어가 아니다.

이는 코끼리를 묶어둔 과거의 기억, 즉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대한 결별 선언이다.

‘나의 낡은 경험보다, 지금 너의 생생한 감각을 믿겠다’고 말하는 순간, 세상은 한 블록 넓어진다.


이 작은 전진은 단지 목적지에 다다르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말뚝을 하나씩 뽑아내는 과정이다.

한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탱고의 킁킁거림과 함께 조금씩 바뀌어간다.

이것이 바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내가 몰랐던 나의 가능성을, 나보다 먼저 알아봐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탱고는 단지 물리적인 길을 안내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낡은 좌표를 새롭게 그려주는 파트너이며, 세상을 다시 탐험하도록 도와주는 길동무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늘 가던 카페 대신, 탱고가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오호, 이 녀석이 또 숨겨진 지름길을 찾아냈나 보군!’

기대를 품고 녀석의 발걸음을 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동네 동물병원이었다.

마침 그날은 탱고의 예방접종 날이었다.

그렇다.

녀석은 ‘더 안전한 길’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주사를 피할 길’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녀석은 내 안의 말뚝 대신 자신의 엉덩이에 주사 말뚝을 박아야 했다.

때로는 익숙한 길이 제일일 때도 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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