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산책한다는 것

by 김경훈

안내견 탱고와의 산책은 겉보기에 평온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진 찍어도 돼요” 혹은 “귀여워”라는 말을 듣는다.

이쯤 되면 탱고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귀여워’라고 착각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길을 걷는 이 일상적인 행위는 한 시각장애인의 일상 안에 얼마나 많은 공적 개입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이다.


가장 자주 겪는 방해는 작은 반려견들의 신경질적인 짖음이다.

심지어 어떤 날은 목줄이 풀린 개가 탱고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함께 걷던 보보가 재빨리 막지 않았다면 탱고는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 반려견의 견주는 오히려 ‘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라며 항의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반응은 ‘견주로서의 책임’보다는 ‘관객으로서의 반응’에 머문다.

즉, 탱고를 구경거리로 대하는 인식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반응은 개보다 더 복잡하다.

아이에게는 “안내견은 눈으로만 인사해야 해”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은 “안녕 탱고야”라고 큰 소리로 말을 건다.

이중적 태도는 단지 모순이 아니라, 규칙을 인지하면서도 스스로는 그 예외라 여기는 일종의 인식론적 무지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나치는 이들도 있다.

어제의 산책은 그런 이들 덕분에 오랜만에 평온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극히 드물다.


문득 의문이 든다.

이 모든 무례함이 과연 안내견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일인가.

일반 반려견과 산책할 때에도 사람들은 함부로 사진을 찍고 손을 대는가.

동물에게 허락 없이 손을 대는 행위는, 타인의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동의 없이 안내견을 촬영하는 행위는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권리를 침해하는 명백한 폭력이다.

그것이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도, 일에 집중 중인 안내견의 곁은 함부로 침범되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안내견을 하나의 ‘기능’이나 ‘파트너’가 아닌 구경거리로 대상화한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생생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는 ‘귀여운 볼거리’로만 전환된다.

독립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안내견이, 오히려 불필요한 관심과 접촉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되어버리는 역설.

산책길에서 가장 큰 기쁨이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무사함’이 되어버린 현실은 실로 씁쓸하다.


이것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개인의 경계를 어떻게 존중하는지를 묻는 윤리의 문제다.

장애인의 보조기구나 특수견을 대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공공의식이다.

‘건드리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존중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안내견과의 산책길은 그래서 늘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되묻는 시험지와 같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시험의 정답률은 아직도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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