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봄날 핑크빛 스웨이드 재킷을 입은 수다쟁이 신부
[향수 설명]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는 조 말론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화려하게 핀 작약꽃의 향기와 부드럽게 가공된 스웨이드 가죽의 향이 어우러진 향수이다.
영국의 연회장과 화려한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히 봄날의 결혼식에 잘 어울리는 신부의 향수로 널리 사랑받는다.
마냥 가볍고 상큼한 꽃향기가 아니라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가죽 향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트 구성]
탑 노트는 빨간 사과이다.
처음 뿌리자마자 붉게 잘 익은 사과의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한 향이 후각을 깨운다.
아주 싱그럽고 경쾌한 시작이다.
미들 노트는 작약 꽃 피오니이다.
사과의 단맛이 살짝 가라앉으면 수백 장의 꽃잎을 가진 화려한 작약꽃 향기가 만개한다.
여기에 재스민과 장미가 섞여 아주 풍성하고 짙은 꽃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베이스 노트는 블러쉬 스웨이드이다.
꽃향기가 날아갈 즈음 부드럽고 매끄러운 스웨이드 가죽 향이 올라와 피부에 안착한다.
이 가죽 향 덕분에 꽃향기가 붕 뜨지 않고 아주 포근하고 고급스러운 잔향으로 남는다.
[전체적인 리뷰]
달콤한 사과와 화려한 꽃다발 그리고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이 한데 섞인 듯한 풍성한 향기이다.
다가오는 사월의 봄날 결혼식장에 가장 잘 어울릴 법한 화사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녔다.
다만 꽃향기와 단내가 꽤 강한 편이라 더운 여름날이나 좁은 공간에서는 자칫 머리가 아플 수 있는 묵직함을 가졌다.
사월의 봄날 핑크빛 스웨이드 재킷을 입은 수다쟁이 신부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
세상에는 조용히 미소만 지어도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장부터 온갖 호들갑을 떨며 시선을 강탈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마주한 조 말론의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는 의심할 여지없이 후자이다.
이 친구는 다가오는 사월 계산성당에서 열릴 법한 성대한 결혼식의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타났다.
양손에는 작약꽃을 한가득 안고서 말이다.
과연 이 수다스럽고 화사한 신부가 건네는 청첩장이 반가울지 아니면 부담스러울지 찬찬히 향기를 뜯어보았다.
첫 만남부터 이 친구는 아주 요란하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아주 달고 즙이 뚝뚝 떨어지는 빨간 사과를 코앞에 들이민다.
보통의 우아한 신부라면 샴페인이나 가벼운 꽃잎을 띄운 차를 내올 텐데 이 녀석은 다짜고짜 과일 바구니부터 들이미는 꼴이다.
잘 익은 사과의 단내가 확 퍼지며 순식간에 주변 공기를 경쾌하고 발랄하게 물들인다.
우아함보다는 통통 튀는 말괄량이 같은 첫인상이다.
사과를 다 먹어치울 때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한 송이도 아니고 수십 송이의 작약꽃이 한꺼번에 만개하며 엄청난 꽃향기를 뿜어낸다.
보보의 웨딩드레스 가봉 날 드레스 숍 전체를 채웠던 그 풍성하고 짙은 꽃내음과 똑 닮아 있다.
꽃잎이 너무 많아 주체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뿌리는 듯한 압도적인 꽃향기이다.
[감각 사진]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색 작약꽃 다발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살구색 스웨이드 가죽이 덮이면서 달콤한 향기가 공기 중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장면
그런데 이 꽃향기가 끝이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화려한 신부가 하얀색 실크 베일 대신 약간은 투박하고 부드러운 핑크빛 스웨이드 재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작약꽃 향기로만 끝났다면 그저 흔해 빠진 방향제 냄새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스웨이드 가죽의 텁텁하고 따뜻한 냄새가 섞여 들면서 향기는 순식간에 무게감을 얻는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신부는 다소 과유불급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달콤한 사과 화려한 작약꽃 고급스러운 가죽까지 좋은 것은 다 욱여넣다 보니 곁에 오래 있으면 살짝 숨이 막힌다.
너무 열정적으로 수다를 떠는 친구 옆에 앉아 기가 빨리는 기분과 비슷하다.
봄바람이 부는 야외에서는 아름답게 흩날리겠지만 밀폐된 공간이나 좁은 차 안에서는 안내견 탱고조차 재채기를 하며 고개를 돌릴 만큼 짙고 무거운 피로감을 동반한다.
결론적으로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는 만물이 소생하는 화사한 봄날 가장 눈부시게 빛나고 싶은 사람을 위한 향기이다.
얌전하고 청초한 매력보다는 오늘 하루 이 구역의 주인공이라고 외치는 듯한 당당함이 있다.
축하와 웃음꽃이 만발하는 자리에 제격이지만 매일 곁에 두기에는 그 넘치는 에너지가 꽤나 벅찬 화려한 불꽃놀이 같은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