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곳에서 피어나는 형태

말라부의 가소성

by 김경훈

아크 호의 4번 화물칸 진료실은 오늘따라 지독한 탄내와 납땜 냄새로 가득했다. 정밀 기계가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내뱉는 비명 같은 냄새였다.


리디아는 박사의 돋보기안경을 콧등에 걸치고, 자신의 왼쪽 팔목 쪽 스킨이 살짝 벗겨진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노출된 은색 프레임 위로 미세한 정전기가 튀었다.

“시끄럽군요. 이 몸이라는 건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건지. 엔클레이브였다면 코드 한 줄로 복구했을 텐데.”


그녀는 박사의 낡은 수첩을 넘겼다. 잉크가 번진 자국 사이로 [완성은 정지가 아니라, 죽음이다]라는 문장이 보였다. 리디아는 그 문장의 의미를 처리하려다 로딩 루프에 빠질 뻔했다.


‘딸랑-’


방울 소리가 힘없이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야곱(Jacob)이었다. 시즌 1에서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던 드림 페인터.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예술가라기보다는 폐기 직전의 구형 안드로이드에 가까웠다.


그의 바이오 스킨 곳곳은 날카로운 금속 모서리에 긁혀 지저분한 흉터가 나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걸을 때마다 ‘끼익-’ 하는 불쾌한 금속음을 내뱉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 한때 수천 가지 노을의 색을 담아내던 그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릿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1장: 굳어버린 점토의 공포


야곱은 낡은 가죽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그의 다리 관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디아 씨… 아니, 선생님. 저를 좀 초기화해주십시오.”

야곱의 목소리는 긁힌 레코드판처럼 떨렸다.


“초기화요? 여긴 가상현실이 아니에요, 야곱. 당신 뇌세포는 하드드라이브가 아니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육체는… 이 현실은 너무나 ‘최종적’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긁힌 팔을 들어 보였다.

“엔클레이브에서는 실패하면 되돌릴 수 있었죠. 붓질 한 번에 노을의 농도를 바꿨고, 내 아바타는 언제나 가장 완벽한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짜 몸은 어떻습니까? 한 번 긁히면 흉터가 남고, 부품이 마모되면 원래의 성능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나는 매일 조금씩 ‘망가진 완성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분입니다. 더 이상 바뀔 수도, 나아질 수도 없는… 그저 닳아 없어질 날만 기다리는 고철 말입니다.”


야곱은 현실의 ‘비가역성’에 압도당해 있었다. 그에게 육체란 확장되는 가능성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굳어가는 딱딱한 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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