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구마 사제

성수와 와이파이의 엑소시즘

by 김경훈

대구 교구 소속의 낡은 성당 제의실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거웠다.

분지 특유의 끈적하고 무거운 열기가 시멘트 벽을 뚫고 들어와 온몸을 짓눌렀다.

미카엘 신부는 땀으로 흠뻑 젖은 로만 칼라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며 낡은 선풍기 앞으로 다가갔다.

선풍기 날개가 덜덜거리며 돌아갔지만,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미지근한 사우나 열기나 다름없었다.

제의실 구석에서는 오래된 향단에서 밴 퀴퀴한 향 냄새와 녹슨 촛대에서 나는 비릿한 쇳내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요한 학사, 우리 주임 신부님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확실해. 전기세 아낀다고 이 찜통 같은 대구 날씨에 에어컨 코드를 뽑아 가시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지금 사제관에 있는 건지 지옥 불 가마에 들어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미카엘의 투덜거림에 제의를 정리하던 요한 학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신부님, 불평하실 시간에 기도나 한 번 더 하십시오. 이번 달 헌금이 반토막 나서 주임 신부님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신부님, 구마 사제라는 분이 지옥 불 운운하시면 쓰겠습니까."


"구마 사제는 무슨. 야, 너도 알잖아. 내 초능력이 얼마나 한심하고 세속적인지."


미카엘은 책상 위에 놓인 플라스틱 성수병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능력 하향 평준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적을 행하던 교회의 권위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과거의 구마 사제들은 성수를 뿌리며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면 악령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하지만 지금의 미카엘은 달랐다.

그는 성수를 마시면, 딱 한 시간 동안 타인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는 기괴하고 쓸모없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악령의 이름을 꿰뚫어 보는 대신, 이웃집 공유기의 비밀번호를 꿰뚫어 보는 초능력.

신의 은총이라기엔 너무나 통신사 친화적인 저주였다.


그때 제의실 낡은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렸다. 따르릉. 정적을 깨는 쇳소리에 요한 학사가 황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요한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수화기를 막고 미카엘을 향해 속삭였다.


"신부님, 큰일 났습니다. 삼거리 아파트에 사시는 베드로 형제님 댁입니다. 집에 마귀가 들렸답니다. 가전제품들이 미쳐 날뛰고 밤마다 기괴한 목소리가 들린다고 당장 와서 구마 예식을 해달라며 울고 계십니다."


미카엘은 혀를 찼다.

또 신경쇠약에 걸린 신자의 착각이겠거니 싶었지만, 명색이 구마 사제인 그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미카엘은 보라색 영대를 목에 걸고, 낡은 가죽 가방에 구마 예식서와 성수병을 챙겨 넣었다.


베드로 형제님의 아파트는 입구에서부터 묘하게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한여름의 대구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한기였다.

거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오존 냄새와 전선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베드로 부부는 거실 구석에 부둥켜안고 덜덜 떨고 있었다.

부인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신부님, 오셨군요. 살려주십시오. 저 인공지능 스피커에 악령이 씌었습니다."


베드로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거실장 위에 놓인 검은색 스마트 스피커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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