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되면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갑자기 장애인이 많아진다.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은 앞다투어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안내견과 걷는 사람의 삶을 비춘다.
감동적인 음악이 깔리고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서사가 펼쳐진다.
사월 이십일.
이른바 장애인의 날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집중된 조명은 언뜻 따뜻한 관심처럼 보이지만 사실 장애를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몹시 특별한 이야기로 가두어버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일 년 내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특정한 날에만 호출되어 무대에 오른다.
결혼식을 정확히 일주일 앞둔 어느 맑은 봄날,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며 찾아온 방송국 피디를 만나 더 많은 기념이 아니라 덜 특별한 일상을 요구한 김경훈의 서늘하고도 담담한 기록이다.
사월의 호출
이천이십육년 사월 십팔일 토요일 오후.
대구 수성못 근처의 한 조용한 카페.
김경훈과 보보는 마주 앉은 젊은 피디의 열정적인 기획안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최유진.
지역 방송국에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삼 년 차 피디였다.
최 피디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김경훈 박사님 이번 장애인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기획은 정말 완벽합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자 연구원인 박사님이 며칠 뒤 비장애인 신부님과 결혼식을 올리신다니요.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인식 개선에 딱 맞는 서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두 분이 사랑으로 장애라는 벽을 뛰어넘고 굳건히 맺어지는 과정을 오롯이 담고 싶습니다.
특별함이라는 함정
발치에서 낮잠을 자던 탱고가 카페의 커피 머신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보보는 탁자 아래로 탱고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용히 김경훈의 반응을 살폈다.
김경훈은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차가운 유리잔 표면을 손끝으로 훑었다.
최 피디님 제안은 감사합니다. 장애인의 삶이 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서 더 이상 특별하게 소비되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죠.
그는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매년 사월, 특정한 시기에만 집중되어 반복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장애인의 삶은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특별히 호출되는 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권리와 평등의 방향
최 피디가 당황한 듯 반문했다.
하지만 박사님 이런 장애인의 날 같은 계기가 있어야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상에서는 장애인의 삶이 너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취지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김경훈이 인정했다.
일상 속에서 충분히 보이지 않으니 일정한 계기로 환기하는 시도는 필요하죠.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 기회가 특정한 날에만 머무를 때 과연 그것이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김경훈의 날카로운 질문에 최 피디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엔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한 기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나누는 꼬리표로 굳어졌죠. 우리 사회는 아동, 노인, 장애인을 취약계층으로 묶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독 권리를 강하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반복해서 배제되고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권리를 말한다는 것은 특별대우를 해달라거나 무언가를 더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사회의 기준 자체를 바꾸자는 이야기입니다. 권리 의식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결국 평등입니다.
덜 특별한 일상을 향하여
보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 피디님 피디님이 찍고 싶어 하시는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서사에는 구분이 여전히 존재해요. 시각장애인 신랑이 얼마나 힘들게 결혼을 준비하는지 비장애인 신부가 얼마나 천사 같은 마음으로 그걸 감싸 안는지를 보여주려 하시겠죠. 하지만 평등은 구분을 유지한 채로 완성되지 않아요. 구분이 필요 없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김경훈이 빙긋 웃으며 정리했다.
장애인의 날을 없애자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날의 존재가 아니라 그날에만 머무는 방식이죠. 특정한 날에 집중된 조명은 언뜻 관심처럼 보이지만 결국 장애를 일상 밖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최 피디가 수첩을 덮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기념이 아니라 전환이 필요합니다. 김경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장애를 계속 불러내야 하는 사회는 아직 기준이 바뀌지 않은 사회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회가 진짜 기준이 이동한 사회죠. 정 저희를 찍고 싶으시다면 시각장애의 아픔을 이겨낸 부부가 아니라 오늘 저녁 메뉴로 김치찌개를 먹을지 된장찌개를 먹을지 치열하게 싸우는 평범하고 찌질한 신혼부부의 일상을 찍어주십시오. 더 많은 기념이 아니라 덜 특별한 일상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니까요.
주석 일상의 아키텍처
제목, 일상의 아키텍처 혹은 사월의 역설.
특정한 날에만 드러나는 삶은 쉽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지만, 매일 반복되는 삶은 비로소 단단한 기준이 된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은 관심의 크기가 아니라 그 관심이 머무는 자리다. 장애가 더 자주 보이는 것을 넘어 더 자연스럽게 존재해야 한다.
장애를 굳이 따로 부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우리의 최종 목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월 이십일 단 하루가 아니라 나머지 삼백육십사 일의 덜 특별한 일상이다.
그나저나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거절했지만 내 결혼식 당일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떨리는 하루가 될 것 같다.
당장 내일은 식장 리허설이다.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겪어야 할 가장 행복한 비일상의 시간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