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물 속에 감춰진 은밀한 사치

코피 루왁

by 김경훈

영화 <버킷리스트>의 심술쟁이 부자 할아버지 에드워드는 늘 세계 최고의 맛이라며 코피 루왁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같은 병실의 카터가 그 생산 과정의 진실을 폭로하자 그는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고양이 똥이라니! 하하하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알려진 코피 루왁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얻은 원두로 만든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개 놀라움과 함께 인상을 찌푸리기 마련이다.

나 또한 커피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 과정을 설명해주면 비싼 값을 주고 왜 굳이 그런 것을 마시느냐는 의구심 섞인 반응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커피는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구하기 어렵고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한 장면을 빌려온 상상]

에드워드: (거만하게 잔을 흔들며) "카터, 자네도 이 위대한 액체를 한 모금 마셔보겠나? 수마트라의 야생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지."

카터: (안경을 고쳐 쓰며) "에드워드, 자네가 마시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고 있나? 수마트라 야생 고양이가 열매를 먹고 소화 시켜서... 그러니까, '뒤로' 내보낸 걸 마을 사람들이 주워온 거라네."

에드워드: (잠시 멈칫하다가) "뭐라고? 고양이... 똥이라고?"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코피 루왁은 일반 커피보다 오염도나 박테리아 수치가 오히려 낮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가공 과정에서 철저한 검사를 거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코피 루왁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원두 패키지에 사향고양이 그림이 상징처럼 그려져 있다.


이 커피가 특별한 이유는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며 일어나는 '자연적 숙성'에 있다.

뱃속의 적당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과육은 사라지고 콩만 남는 과정은 일반적인 농장의 건조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만든다.


짙은 농무처럼 가라앉은 중후한 바디감의 촉감.

코피 루왁 생두를 만져보면 일반 원두보다 색이 훨씬 짙고 단단하다.

그라인더에 넣고 갈 때 나는 소리는 둔탁하고 묵직하다.

뜨거운 물을 내리면 잔 주위로 캐러멜과 초콜릿의 달콤한 향이 번지다가, 그 이면에서 젖은 풀내음과 흙내음이 묘하게 섞인 독특한 아로마가 피어오른다.

한 모금 머금었을 때 혀를 누르는 느낌은 매우 중후하다.

쓴맛은 억제되어 있고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목을 타고 넘어가는 질감은 마치 잘 숙성된 와인이나 진한 시럽처럼 매끄럽고 끈적하다.

입안에 남는 여운은 길고 묵직하며, 혀끝에는 미세한 오일의 매끄러움이 감각적으로 남는다.


최근에는 코피 루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향고양이를 울타리에 가두어 사육하는 방식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뜨겁다.

동물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과 개체 수 보호 및 품질 관리를 위해 농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야생 수거를 지지하는 쪽은 고양이의 본능이 고른 최고의 열매가 최고의 맛을 만든다고 믿는다.


1년에 고작 500킬로그램 남짓 생산되는 이 귀한 액체는 한 잔에 무려 5만 원을 호가한다.

연구자로서 나에게도 이 커피는 매일 마시기엔 분명 부담스러운 사치다.

하지만 가끔은 사향고양이의 뱃속에서 숙성된 그 기묘한 시간의 맛이 궁금해진다.

<버킷리스트>의 에드워드처럼 돈이 많지는 않아도, 언젠가 내 연구가 끝나는 날 스스로에게 줄 특별한 보상으로 이 '은밀한 선물'을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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