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턱에서 뒤돌아본 천재

오르페우스의 치명적인 시선

by 김경훈

예술의 힘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단연 오르페우스다.

그는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와 뮤즈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혈통의 소유자다.

그의 고향 트라키아는 현재의 불가리아 지역으로 당시에도 거친 자연과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땅이었다.

아폴론은 어린 오르페우스에게 일곱 개의 현이 달린 리라를 선물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자매들인 아홉 뮤즈의 숫자에 맞추기 위해 리라에 현 두 개를 더 얹어 아홉 개의 현을 가진 이른바 '구현금'을 완성했다.

이는 단순히 악기를 개량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리듬을 완벽하게 담아내려는 음악적 야망의 시작이었다.



짐승을 춤추게 하고 강물을 멈추게 한 '빛의 치유자'


오르페우스의 연주는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리라를 켜면 하늘을 날던 새들이 노래를 멈추고 땅으로 내려앉았다.

굶주린 늑대는 어린 양과 나란히 앉아 연주를 감상했고 여우는 산토끼를 쫓던 본능을 잊은 채 음악에 취했다.

자연의 질서마저 잠시 멈추게 하는 이 강력한 주파수 앞에 강물은 흐르기를 멈췄고 바다의 물고기들은 더 선명하게 소리를 듣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젊은 시절 이집트를 여행하며 오시리스 밀의에 입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페니키아어로 '아우르'는 빛을, '로파에'는 치유를 의미한다.

즉 오르페우스는 '빛으로 치유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소리의 파동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어둠 속에 갇힌 의식을 깨우는 법을 익혔다.

이후 엘레우시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오르페우스교를 창시하며 지식의 전달자이자 종교적 지도자로 거듭났다.


오르페우스의 진가는 아르고호의 모험에서 빛을 발했다.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영웅들 사이에서 그는 칼을 휘두르는 전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거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려 할 때 그의 노래는 바다를 잠재웠고 지친 영웅들이 노를 놓으려 할 때 그의 리라 소리는 그들의 심장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결정적으로 황금 양털을 지키던 콜키스의 거대한 용을 잠재운 것도 그의 음악이었다.

어떤 강력한 무기로도 뚫을 수 없던 용의 경계심을 오르페우스는 단 몇 소절의 선율로 무너뜨렸다.



에우리디케와 지옥으로 향한 세레나데


모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여 평온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쫓아오던 목동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하려다 풀숲의 독사를 밟았다.

뱀에게 물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오르페우스의 세계는 암전되었다.


비탄에 빠진 그는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산 자는 결코 발을 들일 수 없는 하데스의 왕국으로 향했다.

그는 리라 한 대를 손에 쥐고 서쪽 끝 지옥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의 슬픈 노래에 감동한 나무들이 스스로 가지를 굽혀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옥의 수문장인 머리 셋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도 그의 연주 앞에 꼬리를 내리고 길을 터주었다.

끝없는 분노를 쏟아내던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들조차 눈물을 흘렸고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던 죄인들도 잠시 고통을 잊고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명계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 앞에 선 오르페우스는 인생 최고의 연주를 선보였다.

죽음의 신조차 감동하게 한 이 공연의 대가는 파격적이었다.

에우리디케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단 하데스는 치명적인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지상의 햇빛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오르페우스는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었다.



단 한 번의 시선이 초래한 영원한 이별


오르페우스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에우리디케의 가냘픈 발자국 소리가 들려야 했지만 죽은 자의 발걸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명계의 깊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며 오르페우스의 마음속에는 의구심과 불안이 피어올랐다.

하데스가 나를 속인 것은 아닐까.

아내가 정말 따라오고 있는 것이 맞을까.


마침내 지상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찰나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0.1초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아내의 슬픈 그림자였다.

에우리디케가 햇빛을 채 밟기도 전에 오르페우스가 금기를 깨버린 것이다.

단 한 번의 시선은 그가 쌓아온 모든 공적을 무효로 만들었다.

한 줄기 미풍이 마치 마지막 키스처럼 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찢겨진 예언자의 최후와 밤하늘의 리라


지상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트라키아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은둔자가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오직 잃어버린 사랑과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만 노래했다.

그는 자신을 유혹하려던 트라키아의 여인들을 모두 거부하며 고독을 자처했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여인들은 광기에 휩싸였고 축제 도중 오르페우스를 습격하여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죽였다.


그의 머리는 헤브로스 강에 던져졌으나 죽어서도 그의 입술은 "에우리디케"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바다로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뮤즈들은 아들의 흩어진 시신을 수습하여 리베트라 산기슭에 묻어주었고 그의 리라는 하늘로 올라가 '거문고자리(Lyra)'가 되었다.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

그는 음악이라는 정보의 파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치유했던 선구자였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하고 확인하려 했던 그의 불신은 완벽한 성공을 비극으로 바꾸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것과 보이는 세계에 집착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어려운 화두 중 하나다.



깊고 어두운 지옥의 동굴 통로를 상상해 본다.

앞장서 걷는 오르페우스의 손에는 나무와 금속이 매끄럽게 어우러진 아홉 현의 리라가 들려 있다.

그의 등 뒤로는 희미하게 지상의 푸른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찬란한 빛은 순식간에 차가운 안개로 변한다.

그의 눈앞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사라지는 에우리디케의 손길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다.

동굴 벽에는 오르페우스가 방금 떨어뜨린 리라의 마지막 진동만이 쓸쓸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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