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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웃음의 미학

당신을 비웃는 자에게 날리는 가장 우아한 어퍼컷

by 김경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웃음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배꼽이 빠지도록 웃다가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일도 예사였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복압성 요실금'이라 부르며 웃음으로 인해 복부의 압력이 올라가 방광을 누르는 현상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민망한 단어조차 잊게 만들 만큼 순수한 즐거움이 우리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무표정한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 지식은 살 안 쪄요 매거진은 웃음을 잃어버린 성인들의 비극과 그 이면에 숨겨진 '비웃음 공포증' 그리고 나를 조롱하는 세상을 향해 억지로라도 웃음을 날려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를 파헤쳐본다.



전 세계 7퍼센트를 괴롭히는 투명한 감옥, 비웃음 공포증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플랫 교수 연구팀은 현대인의 심리를 파고들던 중 흥미롭고도 씁쓸한 장애 하나를 규명했다.

바로 '비웃음 공포증(Catapedaphobia)'이다.

이는 타인의 비웃음이나 조롱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시방석 위에서 보내는 것과 같은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2012년에 실시된 전 세계 규모의 조사에 따르면 인류의 약 7퍼센트가 이 증상을 앓고 있다.


이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명확하다.

이들은 스스로 잘 웃지 않는다.

혹여 웃을 일이 생기더라도 반응이 현저히 느리고 웃음을 유지하는 시간도 매우 짧다.

즉 즐거움의 임계치가 남들보다 훨씬 낮게 설정되어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타인의 호의적인 미소조차 '저 웃음 뒤에 나를 비웃는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며 제멋대로 넘겨짚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타인의 웃음은 공감이 아니라 공격의 신호로 인식된다.



연구자의 냉소와 교육자의 가식, 그 사이의 직업병


학문을 탐구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연구자나 교육자들에게도 이러한 증상은 예외가 아니다.

연구자로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순간은 분명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다.

곧이어 냉정한 이성의 눈을 가진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현실적인 고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 발견으로 어떤 논문을 써야 할지, 학회 발표 일정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심지어 동료들이 이 성과를 두고 샘을 내거나 뒤에서 수군거리지는 않을지 걱정하느라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웃음의 근육은 퇴화한다.


교육 현장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칭찬'을 건네지만, 사실 그 안에는 어느 정도 가식과 위선이 섞여 있다.

속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아 혀를 차면서도 겉으로는 "잘했어"라고 말하며 입에 발린 칭찬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밴다.

이런 반쯤 위선적인 일상이 반복되면 타인의 진심 어린 칭찬조차 "나를 비행기 태우려는 수작 아니야?"라고 자조하게 된다.

결국 직업적 완벽주의와 사회적 처세가 우리를 비웃음 공포증의 잠재적 환자로 밀어 넣는 셈이다.



비웃는 자를 무력화하는 최후의 수단, 억지웃음


인생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비웃음 공포증을 극복하고 나를 비웃는 세상을 향해 한 방 먹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억지로라도 웃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즐거워야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웃는 표정을 짓는 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뇌는 즐거운 상태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특히 나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사람 앞에서 내가 오히려 더 크게, 더 당당하게 웃어버리면 상대방은 당황하게 된다.

조롱의 목적은 상대의 당혹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인데, 그 화살이 웃음이라는 방패에 막혀 튕겨 나가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웃는 훈련은 단순한 자기기만이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의 최대치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재활 훈련이자, 나를 공격하는 외부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무력화하는 고도의 심리적 방어 기제다.

만족한 웃음이 집안의 햇빛이라면, 억지웃음은 폭풍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다.



인생의 질을 개선하는 가장 짭짤한 투자


어린 시절처럼 오줌을 지릴 정도로 웃기는 어렵겠지만, 성인이 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의식적으로 웃을 일을 늘리는 것이다.

"웃어야 복이 온다"는 말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웃음을 통해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고 비웃음 공포증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라는 조상들의 과학적 조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지로 웃음을 선택하는 삶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비웃음을 살까 봐 전전긍긍하는 가시방석에서 내려와, 차라리 내가 먼저 크게 웃어버리는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짭짤하고 효과적인 투자다.


지식은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 지어 보인 억지웃음 한 조각은 당신의 영혼을 그 어떤 보약보다 튼튼하게 살찌워 줄 것이다.

당신을 비웃는 자가 있다면, 오늘 더 크게 웃어주어라.

승자는 웃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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