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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격차

by 김경훈

디지털 디바이드 즉 정보격차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주로 접근의 문제였다.

당시 격차는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존재했다.

이제 정부와 사회의 노력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머니 속에 그 문을 열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문을 열었다고 해서 그 너머의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격차는 접근을 넘어 활용 격차라는 더 교묘하고 깊은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새로운 격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키오스크다.

누군가에게는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도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키오스크는 소통을 거부하는 커다란 유리벽과 다름없다.

음성 안내나 촉각으로 구분 가능한 버튼조차 없는 화면 앞에서 수많은 메뉴와 옵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결국 주문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문제는 한 개인의 불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주문하지 못한 메뉴 그가 방문했던 시간 그의 모든 욕구와 관련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된다.

빅데이터 시대에서 데이터 배제는 곧 존재의 배제를 의미한다.

이렇게 데이터로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의 유령이 되고 미래의 서비스와 정책은 그들을 없는 셈 치고 설계될 것이다.


기술은 결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모든 기술 속에는 개발자의 인식론적 맹점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편향이 스며들어 있다.

이는 결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사람을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때로는 최첨단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기를 마주할 때마다 개발자들을 붙잡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이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인간학 강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버튼에 이름표만 붙여줬다면 하는 아쉬움은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과 공감 능력의 부족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디지털 기기를 쓰지 못하는 것은 단지 불편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이는 명백한 불이익이자 구조적 차별이 되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지 못해 할인을 받지 못하고 모바일 앱으로 예매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일이 쌓여간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에게 디지털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용자의 책임 못지않게 기술 공급자의 책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에 있다.

정부는 보건당국의 브리핑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듯이 최소한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포용적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중학생이 노인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멘토링 활동처럼 격차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보격차 해소는 단순히 뒤처진 사람을 끌어올리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단 한 명의 구성원도 데이터의 유령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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