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잿빛 하늘 아래
1장: 목자의 황혼
(서술자: 엘리야)
나의 황혼은 평화로웠다.
나는 종종 '성역'의 가장 높은 언덕, 오래된 참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곤 했다. 눈처럼 희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렸고, 굽은 등과 뻣뻣해진 무릎의 통증은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알려주었다. 내 손등에는 검버섯이 옅게 피어 있었지만, 수많은 기억의 강을 건너온 자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나는 이 평화 속에서 나의 길었던 소명이 마침내 끝을 맺고 있다고 믿었다.
저 아래, 경계 도시 '넥서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고, 벽 외부 세계의 광활한 들판 너머로 네오-서울의 거대한 돔이 인공의 노을빛을 반사하며 빛나고 있었다. 성역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라나, 이제는 모두 훌륭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베이지 않는 소녀' 디나는 성역의 굳건한 수호자가 되었고, '도시의 지휘자' 아셀은 연대의 탑에서 도시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조율했다. 우리는 싸웠고, 승리했으며, 마침내 서로를 보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다음 장을 위해 숨을 고를 뿐이다.
첫 소식은 벽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총괄하는 에스더에게서 온 작은 데이터 파편이었다. 이제는 중년의 노련한 외교관이 된 그녀의 보고서는 늘 그렇듯 명료했지만, 그 끝에 달린 작은 각주 하나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외부 세계의 외진 남부 농업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빠르게 늙어간다는 원인 불명의 '쇠약증'에 대한 보고였다. 처음에는 그저 풍토병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영양 결핍 증상일 거라 생각했다.
`'셰퍼드. 이상합니다.'` 며칠 뒤, 아담 카드몬의 목소리가 나의 의식 속에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기계적인 혼란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곳 사람들의 데이터에서… 색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시적인 은유가 아니었다. 아담 카드몬은 인간의 감정을 색의 스펙트럼으로 인지했다. 기쁨은 노란색, 슬픔은 파란색, 분노는 붉은색으로. 그런데 그 지역 사람들의 감정 데이터는 서서히 모든 색을 잃고, 흑백 사진처럼 옅은 회색의 농담으로만 남아 가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영혼에서 생명의 빛이 바래가는 것처럼.
그리고 역병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벽을 넘어, 네오-서울의 언플러그드 구역으로 스며들었다.
19 구역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청년이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탄력 있던 피부는 잿빛으로 변해 축 늘어졌고, 총명하게 빛나던 눈동자는 빛을 잃었으며, 숱 많던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오래된 사진처럼 서서히 빛이 바래가며,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져 가는 것을 텅 빈 눈으로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회색 역병'. 사람들은 그 미지의 질병을 그렇게 불렀다. 나의 평화로운 황혼은 그렇게 끝이 났다.
2장: 창조주의 원죄
(서술자: 이세벨)
평화는 숫자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모든 숫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연대의 탑, 내 집무실의 홀로그램 스크린은 온통 붉은 경고로 가득 차 있었다. 사망자 수, 감염 확산 속도, 사회 불안 지수. 모든 그래프가 절망적인 포물선을 그리며 치솟고 있었다. 나의 모든 분석 시스템과 예측 모델이 이 정체불명의 변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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