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뱃사공

제2부: 경계 위의 기적

by 김경훈


4장: 강물을 붙잡은 소년


(서술자: 한나 박사)


나의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떨어지는 체온, 느려지는 심박, 옅어지는 뇌파 신호. 나는 연대 위원회 소속의 젊은 의사로서 자원하여 19 구역에 남았다. 나의 임무는 '회색 역병'의 진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환자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나의 일은 그저 죽음의 목록에 새로운 이름을 추가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곳, 붉은 선 안의 도시는 거대한 임종실이었다. 네오-서울의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거리에는 의료 드론이 내는 낮은 허밍 소리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누군가의 억눌린 흐느낌만이 전부였다. 희망은 전염되지 않았지만, 절망은 공기처럼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실라'라는 이름의 작은 소녀를 돌보고 있었다. 녀석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절망적인 도시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역병은 아이의 작은 몸을 너무나 빨리 잠식했다. 이제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잿빛으로 변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생체 모니터의 그래프는 거의 수평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나는 아이의 오빠, '나사로'에게 힘겹게 말했다. 그는 나와 함께, 밤을 새워 동생의 곁을 지켜온 조용한 소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창백했고, 며칠간 잠을 못 이룬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떨군 채 동생의 차갑게 식어가는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사망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단말기를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안 돼…."


나사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애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는 완고하고도 필사적인 명령이었다.


"안 돼, 실라. 가지 마. 내가… 내가 허락할 수 없어."


소년의 몸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빛은 나사로의 손을 타고, 실라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생체 모니터에서 울리던 경고음이 멎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수평선을 그리던 심박 그래프가 아주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다시 파동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라의 잿빛 뺨에 희미한 혈색이 돌아왔다. 가쁜 숨이 고른 숨결로 바뀌었다.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단말기의 의료 스캐너는 불가능한 수치를 표시하고 있었다. '세포 재생률 급상승', '텔로미어 손상도 복원 중'.


나는 얼어붙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이성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나는 보았다. 동생이 생기를 되찾는 바로 그 순간, 나사로의 검은 머리카락 한 줌이 마치 시간이 수십 배로 흐른 것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것을. 그의 앳된 얼굴에, 깊은 피로의 주름이 칼로 새긴 듯 새겨졌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태워, 동생의 꺼져가던 생명의 불꽃을 다시 지펴낸 것이었다.


나사로는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멍하니, 기적처럼 잠든 소녀와, 그 기적의 대가로 순식간에 늙어버린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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