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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유니버셜과의 대화

by 김경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결국 ‘아무런 사람’도 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아쿠아 유니버설’은 바로 그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서 오히려 개성이 없는 모범생과 같다.

이름처럼, 그는 어떤 상황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어울리도록 설계된, 일종의 후각적 만능키다.

과연 이 완벽한 친구에게서 어떤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깐깐한 면접관의 눈으로 그를 만나보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맑고 깨끗한 시실리안 레몬과 베르가못의 향기가, 마치 잘 다려진 흰 셔츠의 깃처럼 단정하고 깔끔한 첫인상을 선사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확히 계산된 상쾌함.

이는 모든 면접에서 만점을 받을 법한, 정석과도 같은 자기소개다.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자, 그의 진정한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난다.

그의 심장에는 그 어떤 논란의 여지도 없는 깨끗한 흰 꽃(White Flowers)들의 향기가 자리 잡고 있다.

혹자는 은방울꽃이라 하고, 혹자는 오렌지꽃이라 하지만, 사실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꽃들이 그저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보편적인 인상만을 전달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민감한 주제에 대해 물어도, 그는 그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군요”라고 답할 것만 같다.

그는 논쟁을 일으키지도, 강한 주장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만을 택한다.


대화가 끝나고 그가 떠난 자리.

남는 것은 강렬한 추억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평온함이다.

가볍고 투명한 머스크와 우디 노트의 잔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간을 깨끗하게 정화시킨다.

그는 어떤 흔적도,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뿐이다.

그의 완벽함은 결국 ‘무(無)’의 상태와도 같다.


최종 면접 결과.

아쿠아 유니버셜은 의심할 여지없이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향수 중 하나다.

그는 ‘깨끗함’이라는 개념을 향으로 구현한 천재 조향사의 걸작이다.

하지만 그의 완벽함 속에는 인간적인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매력, 즉 ‘이야기’가 들어설 틈이 없다.


그는 너무나 투명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존재와 같다.

그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 주지 않는다.

그저 당신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을 증명할 뿐이다.

그는 최고의 배경이지만, 결코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텅 빈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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