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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여왕과의 티타임

크리드, 러브 인 화이트

by 김경훈


오늘은 향수계의 ‘영부인’ 혹은 ‘얼음 여왕’이라 불리는 크리드의 ‘러브 인 화이트’와의 티타임이다.

이름은 ‘사랑(Love)’을 속삭이지만, 온몸에서는 ‘순백(White)’의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이 모순적인 존재와의 만남이다.

그녀는 전 세계 5대륙의 최고급 재료로만 자신을 치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그 화려함의 실체는 무엇일지, 비판적인 관찰자의 자세로 그녀를 마주했다.


그녀의 첫인사는 날카로운 카메라 플래시와도 같다.

스페인산 오렌지 껍질의 향기가 따뜻한 환대가 아닌, 쨍하고 차가운 조명처럼 코끝을 때린다.

"반갑습니다"라는 말은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완벽하게 통제된 미소.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품이 느껴진다.


대화가 이어지자, 그녀의 화려한 이력이 펼쳐진다.

이탈리아의 재스민, 이집트의 아이리스, 불가리아의 장미, 과테말라의 매그놀리아.

전 세계의 진귀한 꽃들이 그녀의 배경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성격, 즉 심장을 이루는 것은 놀랍게도 베트남산 쌀겨(Rice Husk)의 향기다.

이는 뽀송하고 파우더리하지만,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지극히 건조하고 이성적인 향이다.

그녀는 완벽한 연설을 하지만, 그 연설에는 따뜻한 공감이 빠져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감탄의 대상이지 공감의 대상이 아니다.


티타임이 끝나고 그녀가 떠날 채비를 한다.

마지막 순간, 인도산 샌달우드와 자바의 바닐라가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 애쓰는 듯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차갑고 짭조름한 앰버그리스의 기운에 덮여, 결국 따뜻한 포옹이 아닌, 정중한 악수로 마무리된다.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는 향기롭다기보다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다.


최종 결론.

‘러브 인 화이트’는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통제’다.

그녀는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함의 결정체이며,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성벽을 둘렀다.

그녀의 향기에 집중하면,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을 만지는 듯하다.

감탄은 나오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받기 위한 향수가 아니라, 완벽하게 군림하기 위한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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