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뇌세포를 탈탈 털어 넣는 지적 노동이 끝나면, 영혼에도 카페인이 필요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스타벅스 리저브.
안내견 탱고와 여자친구 보보,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하는 오후의 호사다.
발밑에는 늠름한 탱고가 세상 평온한 자세로 엎드려 있고, 바리스타의 세심한 배려가 리저브 바의 품격을 더한다.
오늘의 선택은 ‘클래식 민트 모카’.
톡 쏘는 민트 향이 묵직한 초콜릿 향을 비집고 솟아오른다.
성실한 초콜릿 나라 왕자님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민트 나라 공주님의 만남이랄까.
보보가 고른 ‘다크 초콜릿 모카’는 한층 더 진중하다.
카카오 본연의 쌉싸름함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도도한 학자 같다.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어른의 맛이다.
하지만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민트 공주도, 초콜릿 학자도 아니었다.
바로 ‘접근성’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주문을 위해 카운터까지 위태롭게 이동할 필요도, 뜨거운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들고 빈자리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모두가 동등하게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의 힘이다.
결국 좋은 공간이란, 그곳을 방문한 누구도 불필요한 긴장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곳이다.
일반 매장이 사용자가 직접 동선을 개척해야 하는 ‘오프로드’라면, 리저브 바의 경험은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안내하는 잘 설계된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의 ‘포장도로’와 같다.
훌륭한 커피와 초콜릿,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세심한 접근성.
이 세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덕분에, 오늘 오후의 기억은 또 하나의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리저브 바의 평온을 즐기던 중, 옆자리에 멋진 여성분이 앉았다.
그녀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강아지용 삑삑이 장난감이었다.
그 순간, 세상 평온하게 엎드려 있던 탱고의 두 귀가 레이더처럼 쫑긋 섰다.
‘안내’라는 숭고한 임무와 ‘삑삑이’라는 원초적 욕망 사이에서 격렬하게 내적 갈등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녀석은 참지 못하고 꼬리를 ‘툭, 툭’ 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무리 훈련받은 안내견이라도, 삑삑이의 유혹 앞에서는 평범한 강아지일 뿐이다.
그날, 탱고의 근엄한 이미지에 작은 흠집이 생겼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