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뇌세포를 탈탈 털어 넣는 지적 노동이 끝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맥주! 맥주를 달라!’ 연구실의 빽빽한 공기에서 벗어나 보보의 경쾌한 걸음과 탱고의 든든한 하네스를 잡고 향하는 곳은 학교 앞 작은 펍.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람빅(Lambic)’이다.
이 녀석을 마시기 위해 매주 이곳을 찾는다.
어쩌면 피로한 일상에 필요한 ‘기묘한 이물감’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람빅은 맥주계의 모범생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의 반항아다.
대부분의 맥주가 철저히 통제된 발효실에서 일정한 품질을 지키려 애쓰는 것과 달리, 람빅은 그 모든 통제를 거부한다.
벨기에 특정 지역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
람빅은 그 불확실하고 야성적인 미생물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자연 발효된다.
이는 완벽한 통제 대신 우연성(Aleatoricism)을 창작의 중심에 두는 행위이다.
람빅은 맥주라기보다, 자연과 시간, 그리고 우연이 공모하여 만들어낸 액체 예술에 더 가깝다.
그중에서도 ‘크릭(Kriek)’, 즉 체리 람빅은 후각과 미각의 모든 층위를 자극하는 한 편의 서사시다.
잔을 코에 대는 순간, 시작은 달콤한 체리잼이다.
하지만 그 뒤를 갓 수확한 체리의 싱그러움이 잇고, 마지막에는 체리 씨앗의 쌉쌀함과 오크통의 묵직한 나무 내음이 남는다.
이 모든 향을 현상학적(Phenomenological)으로 분석하는 일은 시각이라는 정보 채널이 닫힐 때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람빅을 마시는 시간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다.
눈으로 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붉은 체리의 빛깔을 상상하고, 혀끝에서 튀는 미세한 산미를 따라가며, 오랜 시간 나무 안에 머물렀던 기운을 감지하는 일.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지적인 놀이이자 감각의 축제다.
람빅은 감각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삶의 피로를 그 깊고 붉은 향기 속으로 천천히 녹여 보낸다.
결국 매주 이 펍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술 한 잔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곳은 일상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감각의 균형을 되찾고 나 자신을 재조율하는 은밀한 공간이다.
람빅 한 잔은 그러한 내면의 자기조절(Self-regulation)을 시작하게 하는 방아쇠이자, 나와 세상의 거리감을 정돈하는 도구다.
붉은 람빅이 잔에 닿는 순간, 지난 일주일의 고단함은 잠시 뒤로 밀려나고, 감각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오른다.
비하인드 스토리
어느 날, 이토록 심오한 람빅의 세계에 지인을 초대했다.
잔을 건네며 그 안에 담긴 자연과 시간의 서사에 대해 설명했다.
한 모금 마신 그의 첫마디.
“어우, 셔! 이거 식초 아니야?”
옆에 있던 탱고는 바닥에 떨어진 감자튀김을 줍느라 바빴다.
그렇다.
때로 한 사람의 ‘액체 예술’은 다른 이에게는 ‘신 식초’이고, 또 다른 존재에게는 ‘감자튀김’보다 못한 것일 수 있다.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