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 드라이브 스루(DT)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의 승패는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보보의 주문은 단순한 커피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정교하게 짜인 하나의 알고리즘(Algorithm)이자, 상대방의 숙련도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아이스 라떼, 얼음 많이 우유 적게, 그리고 캬라멜 드리즐은 과하게 많이 듬뿍 주세요.”
이 복잡한 요구사항 명세(Requirement Specification)가 접수되는 순간, 직원은 두 부류로 나뉜다.
‘고수’와 ‘하수’다.
‘고수’ 직원은 목소리만 듣고도 단골임을 알아챈다.
그들에게 이 주문은 매일 실행하는 익숙한 스크립트(Script)다.
“네, 얼음 가득 우유 적게, 드리즐은 컵이 넘치도록 부어드릴게요!”라며 유쾌하게 응대한다.
그들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친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디자인이다.
반면, ‘하수’ 직원은 이 주문을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로 받아들인다.
‘얼음 많이’와 ‘우유 적게’라는 상충되는(?) 정보에 혼란을 겪고, ‘과하게 많이’라는 주관적 서술어를 해석하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어김없이 ‘하수’를 만났다.
음료를 받아 든 보보의 표정이 굳었다.
캬라멜 드리즐이 ‘기본’ 수준이었던 것이다.
“저… 캬라멜 드리즐 듬뿍 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많이 드린 건데요?”
직원은 반문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확신에 찬 대답인가.
이것은 단순히 캬라멜의 양 문제가 아니다.
‘일머리’의 문제다.
‘고수’는 고객의 데이터 패턴(Data Pattern)을 기억하고, ‘많이’라는 주관적 언어를 ‘이 고객이 만족할 만큼’이라는 객관적 행동으로 변환한다.
하지만 ‘하수’는 자신의 내부 매뉴얼(Internal Manual)에 갇혀, 고객의 데이터를 ‘오류’ 또는 ‘과한 요구’로 판단해 버린다.
시각 정보 없이 세상을 파악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상황은 더욱 흥미롭게 분석된다.
우리는 직원의 표정을 볼 수 없다.
오직 ‘많이 드린 건데요?’라는 차가운 음성 데이터만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 말은 즉, ‘당신의 요구는 나의 기준을 벗어났다’는 선언이다.
고객의 경험(Experience)보다 직원의 기준(Standard)이 우선시 되는 순간, 서비스는 실패한다.
결국 ‘일머리’란,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능력이 아니라, 고객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시스템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능력이다.
‘고수’들은 보보의 하루 기분이 800원짜리 캬라멜 드리즐의 양에 달려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루의 기분을 파는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탱고에게 이 ‘일머리’ 이론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탱고, 간식, 조금, 하지만 아주 만족스럽게 줘.”
녀석은 나의 이 모호하고도 철학적인 명령을 잠시 고뇌하는 듯했다.
잠시 후, 녀석은 간식 통 대신, 며칠 전 내가 잃어버렸던 양말 한 짝을 물고 왔다.
그렇다.
나의 ‘요구사항 명세’는 녀석에게 완벽한 ‘오류’였던 것이다.
그날, 나는 녀석의 ‘일머리’를 탓하는 대신, 얌전히 간식 통을 열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