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을 향한 위대한 발차기

by 김경훈


수영은 언제나 로망이었다.

하지만 그 로망을 가로막는 것은 물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진짜 장벽은 물속이 아니라, 물 밖에 있었다.

바로 ‘탈의실’과 ‘샤워실’.


탱고는 수영장 입구까지만 동행할 수 있다.

그 너머의 습하고 미끄러운 미궁은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보보(여자친구)와 함께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이 완벽한 접근성 데드엔드(Accessibility Dead End) 앞에서 수영의 꿈은 매번 좌절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몸맘 레벨업’이라는 빛과 같은 프로그램을 만났다.

이것은 단순한 수영 강습이 아니었다.

접수부터, 미로 같은 탈의실 통과, 끈적이는 샤워실을 거쳐 풀 입수까지, 모든 동선을 1:1로 지원하는 정교한 ‘인적 에스코트 시스템(Human Escort System)’이었다.

그리고 올해, 작년의 그 훌륭했던 수희 선생님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주셨다.


목요일, 한 시간의 행복이 시작된다.

발차기에 이어 팔 돌리기, 그리고 호흡.

하지만 뇌가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팔을 움직이면 다리가 멈춘다.

다리에 집중하면 팔 회전을 까먹는다.

이 몹쓸 운동 협응(Motor Coordination) 장애. 뇌의 CPU가 두 가지 명령(팔 돌리기, 다리 젓기)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버퍼링에 걸린 셈이다.


이대로라면 패럴림픽은커녕 동네 목욕탕 냉탕 완주도 어렵다.

하지만 훌륭한 수희 선생님이 계시니 희망은 있다.

심지어 이 위대한 여정엔, 수영 프로 ‘보보’도 합류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네 번은 물고기처럼 살던 그녀.

그녀의 우아한 돌핀킥 옆에서 이쪽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물을 첨벙거린다.

이 또한 굴욕이라면 굴욕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물의 저항을 온몸으로 느끼는 이 시간.

‘몸맘 레벨업’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훈련이 끝나고, 보보에게 그간 배운 숭고한 자유형 발차기를 자랑스럽게 시전 했다.

“어때, 나 좀 늘었지? 이제 좀 나가지?”

그녀가 잠시 물끄러미 지켜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야… 혹시 지금… 후진하고 있어?”

그렇다.

나의 발차기는 추진력이 아니라, 요란한 물보라와 후진의 힘만 만들어내고 있었다.

훌륭한 수희 선생님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순간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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