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지갑에 깃든 운명애(愛)에 대하여

by 김경훈


낡은 지갑을 바꾸기 위해 백화점에 간 적이 있다.

점원의 도움을 받아 수십 개의 지갑을 만져보았다.

어떤 것은 너무 매끄러웠고, 어떤 것은 지퍼가 거슬렸으며, 어떤 것은 가죽 냄새가 너무 강했다.

그러다 손끝에 '착' 감기는 하나의 지갑을 만났다.

적당한 두께, 견고한 바느질, 손톱으로 살짝 긁어보았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질감. 그렇게 녀석은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 사소한 선택의 순간은 일본의 철학자 쿠키 슈죠(九鬼周造)가 말한 ‘우연성(Contingency)’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주변의 것들을 ‘내가 샀으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쿠키는 묻는다.

수많은 가방 중에서 왜 하필 ‘그’ 가방이 당신의 품으로 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우연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만날 이유가 없던 두 존재(나와 이 지갑)가 그날 그 시간 그 매장에서 조우한 것.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적 우연(Metaphysical Contingency)’이다.


오직 손끝의 촉각적 경험(Haptic Experience)에 의존해 세상을 선택해야 하는 이에게, 이 우연성의 개입은 더욱 강력하다.

눈으로 수백 개의 지갑을 스캔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우연히’ 먼저 닿은 몇 개의 지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선택은 사실 거대한 우연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하나의 조약돌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쿠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우연을 운명으로 사랑하라는 ‘운명애(Amor Fati)’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10년간 손때가 묻은 이 낡은 지갑.

녀석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우연히’ 나에게 와주었고, 그 우연을 기꺼이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였기에, 녀석은 이제 세상 그 어떤 명품 지갑보다 사랑스럽다.


이것이 바로 쿠키가 말한 ‘존재 긍정’의 논리다.

우리는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그 낡은 물건, 혹은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 그 모든 것이 우연히 당신에게 와주었기에, 더욱 사랑할 가치가 있는 운명이 아닐까.



비하인드 스토리


보보에게 이 숭고한 ‘우연과 운명애’의 철학을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자기야, 이 낡은 지갑은 단순한 지갑이 아니야. 이것은 우연성이 운명애로 승화된, 나의 실존적 상징이라고!”

그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새로 산 자신의 옷을 보며 말했다.

“음… 나는 그냥 어제 세일 마지막 날이라 우연히 산 건데. 그럼 얜 ‘세일애(Sale-愛)’인가?”

그렇다. 나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우연은 그녀의 지극히 현실적인 자본주의적 우연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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