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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이야기(Narrative)를 먹고 산다. 그중에서도 가장 달콤하고 중독적인 이야기는 단연 ‘극복’ 서사다. 가난을 딛고 일어선 재벌, 불치병을 이겨낸 영웅, 그리고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간 승리의 아이콘.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눈물 흘리며, 스스로의 삶을 위로한다. ‘저렇게 끔찍한 조건 속에서도 해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 감동적인 서사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숨어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장애’를 반드시 이겨내야 할 적(敵)이자, 패배시켜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 이분법의 세계에서 그저 자신의 장애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수많은 ‘적응자’들은 순식간에 패배자, 혹은 의지가 박약한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극복’은 승자의 훈장이지만, 동시에 대다수에게는 낙인이 된다.


어쩌면 진정한 용기란, 불가능한 전쟁을 선포하고 ‘극복’을 외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차라리, 자신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갈 자신만의 새로운 규칙과 방식을 창조해 내는 지루하고도 위대한 ‘적응’의 과정일지도. 이것은 그 ‘극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군에 맞서 자신만의 ‘적응’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기록이다.



1. 축제의 소음, 그리고 낯선 방문자


대구 김광석 거리의 공기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주말을 맞아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좁은 골목은 빈틈이 없었다. 김경훈은 이 소란의 한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야외 카페테라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 혼돈을 사랑했다. 그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분주함 속에서도 미동 없이 엎드린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 냄새를 묵묵히 맡고 있는 안내견 탱고가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의 모든 것을 감각하고 있었다. 통기타 줄을 튕기는 날카로운 소리와, 그에 맞춰 어설프게 화음을 쌓는 어느 버스커의 목소리. 바로 옆 테이블에서 ‘인생샷’을 건졌다며 까르르 웃는 젊은 여성들의 높은 웃음소리. 낡은 벽화 앞에서 방금 전의 그 대화를 흉내 내며 “사람이 어쩌면 그래?”라고 장난치는 연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 모든 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달콤한 달고나 냄새와 매콤한 떡볶이 냄새. 그에게 이곳은 살아있는 데이터의 보고(寶庫)이자, 인간의 감정이 날것 그대로 흘러넘치는 가장 역동적인 연구실이었다.


그는 보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근처 편집샵에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어울리는’ 귀걸이를 찾겠다며 잠시 그를 떠난 참이었다.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이 유쾌한 소음 속에서 어젯밤 읽다 만 ‘정보의 엔트로피’에 관한 논문을 머릿속으로 반추하고 있었다.


“저… 실례합니다만, 혹시… 경북대학교의 김경훈 박사님 아니십니까?”


낯선 목소리였다. 약간은 긴장한 듯 상기된 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 김경훈은 생각의 흐름이 끊긴 것을 아쉬워했지만, 특유의 ENFJ다운 미소로 고개를 돌렸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아, 넷!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박기영 부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허둥지둥 명함을 꺼내 김경훈의 손에 쥐여주려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명함을 다시 집어넣었다. (김경훈은 그가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멈칫하는 미세한 소리로 그 모든 상황을 짐작했다.) 박 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11월의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밴 듯했고, 그의 목소리 からは 낡은 서류와 좋은 의도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그는 김경훈 앞에 공손하게 서서 자신이 왜 이 주말의 소란 속에서 그를 찾아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 재단에서 이번에… '대구의 빛, 희망과 극복'이라는 이름의 작은 상(賞)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대구가 여러 가지로 어렵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역경을 딛고 일어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신 분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김경훈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아주 미세하게, 그 의미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희망’과 ‘극복’. 그가 가장 경계하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박 부장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감동에 겨워 떨리고 있었다. “저희 심사위원단에서 만장일치로… 김경훈 박사님을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박사님의 그… 그 훌륭하신….” 그는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 잠시 말을 더듬었다. “…그 불굴의 의지로 모든 고난을 ‘극복’ 하시고, 이렇게 훌륭한 연구자가 되시어 저희 모두에게 깊은 영감을 주신 점을… 높이 사게 되었습니다.”


박 부장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아마도 상장과 상금에 관한 안내문일 터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 이 도시의 가장 숭고한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는 듯한, 벅찬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2. ‘극복’이라는 이름의 감옥


김경훈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뇌는 ‘연구 모드’로 전환되어, 방금 들은 단어들을 냉철하게 해부하고 있었다. ‘극복(Overcoming)’. 왜 사람들은 항상 이 단어에 집착하는가. 그는 15살에 시력을 잃었다. 그것은 ‘극복’ 해야 할 대상인가? 그는 지난 20년간 시력을 되찾기 위해 단 하루도 노력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전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운영체제(OS)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프로토콜을 개발했을 뿐이었다.


그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읽고(음향적 맵핑), 손끝으로 지식을 습득하며(촉각적 독해), 15년의 시각적 기억을 현재의 감각 정보와 결합해 세상을 ‘재구성’(Rendering)했다. 그것은 ‘극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적응(Adaptation)’이었다. 그것은 패배를 딛고 승리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안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번성하는 법을 배운, 지극히 생물학적이고 지적인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의 20년에 걸친 치열한 ‘적응’의 역사를, ‘극복’이라는 낡고 상투적인 단어 하나로 납작하게 눌러버리고 있었다.


“박 부장님.” 김경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쾌한 톤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냉소와 재치가 섞인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다니… 그런데, 제가 좀 헷갈려서 그러는데요. 제가 정확히 무엇을 ‘극복’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 그야… 그….” 박 부장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그… 시각의… 그 불편함을… 이겨내시고….”


“아, 그거요.” 김경훈이 환하게 웃었다. “그건 극복된 게 아닌데요. 제가 지금도 확인해 봤는데, 여전히 아주 잘 안 보입니다. 탱고, 보이니?” 탱고가 그의 말에 꼬리를 한번 ‘툭’ 쳤다. “보시다시피, 제 상태는 20년 전과 동일합니다. 극복에 완전히 실패했죠.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박 부장은 땀을 닦는 듯했다. “정신적으로…! 그 좌절감을 이겨내시고… 이렇게 밝고 훌륭한 분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극복’입니다!”


“흐음.” 김경훈은 턱을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그럼 제가 만약, 제 상태를 비관해서 매일 술이나 마시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구원이었으면 이 상을 못 받았겠군요?”

“그, 그건 아무래도… 희망을 주는….”

“그렇군요.” 김경훈이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 상은 제가 훌륭한 연구를 해서 주시는 게 아니라, ‘장애인치고는 꽤 밝고 유쾌하게 잘 지내는’ 태도 때문에 주시는 거군요? 일종의… 모범 장애인상, 뭐 그런 겁니까?”


그의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 소설 속 주인공이 던지는 정곡을 찌르는 뼈아픈 질문이었다. 박 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순수한 존경의….”


“알겠습니다, 부장님.” 김경훈이 그의 말을 부드럽게 잘랐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심의(心醫)’로서의 깊은 연민과 슬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장님의 그 ‘순수한 존경’이 실은 저를 얼마나 비좁은 감옥에 가두려 하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당신들이 ‘극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저처럼 ‘적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 극복하지 못한 패배자’가 되어버립니다. 당신들의 그 숭고한 격려가 사실은 가장 잔인한 폭력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탱고, 가자.”

그는 박 부장의 당황스러운 변명과, 주변에서 그들의 대화를 힐끔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탱고와 함께 소란스러운 축제의 현장을 빠져나왔다.



3. 적응의 리듬


그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의 내면은 방금 전의 대화로 인해, 마치 거친 폭풍이 휩쓸고 간 듯 혼란스러웠다. 그는 택시를 타고 수성못으로 향했다. 그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찾는 곳이었다.


11월의 수성못은 한적했다. 호수 표면을 스쳐 오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이 오히려 그의 과열된 머리를 식혀주는 듯했다. 그는 탱고와 함께 러닝 트랙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길의 모든 것을 감각으로 기억했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우레탄 트랙의 미세한 탄성, 100미터마다 나타나는 벤치의 위치, 물비린내와 젖은 흙냄새가 강해지는 수변 구역, 그리고 오리배 선착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는 걷다가 이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극복’을 위해 뛰지 않았다. 그는 ‘적응’ 하기 위해 뛰었다. 15살, 시력을 잃고 병원에서 3년을 보낸 후,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시각’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움직임의 자유’를 잃어버렸었다. 세상은 그를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규정했고, ‘장애인’이라는 뚜껑(본질)을 씌워 그를 안전한 방 안에 가두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본질에 저항했다. 그는 사르트르의 ‘실존’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쳤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쳤다. 발바닥으로 지면의 변화를 읽는 법, 피부로 공기의 저항과 방향을 감지하는 법, 그리고 청각으로 공간의 깊이와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법.


지금 그는 그 어떤 비장애인보다도 더 능숙하게 이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탱고가 그의 호흡에 맞춰 반 발짝 앞에서 완벽한 리듬으로 함께 뛰었다. 이것은 ‘극복’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몸과 세상과 맺은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었다. 이것은 그의 ‘적응’이 만들어낸 장엄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달리면서 생각했다. ‘극복’은 하나의 정적인 ‘사건’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적응’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면 또다시 새로운 적응의 프로토콜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치열하며, 살아있는 행위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 역동적인 ‘적응’을, 정적인 ‘극복’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하는 걸까.



4. 경계에서 시작되는 진짜 대화


그날 밤, 아파트로 돌아온 그는 샤워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탱고는 그의 발치에서 피곤한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박 부장의 서류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대구 희망과 극복상’. 그 단어들이 그의 손끝에서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때,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보보가 들어왔다. 그녀는 양손에 그가 좋아하는 찜닭과 막걸리가 담긴 봉지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자기?” 그녀는 그의 굳은 표정을 단번에 알아채고, 봉지를 내려놓으며 그의 곁에 앉았다. “낮에 김광석 거리에서 ‘극복’ 바이러스라도 감염됐어? 표정이 왜 그래?”


김경훈은 그녀의 직관력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을, 자신의 불쾌감과 수성못에서의 상념을 모두 털어놓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보보? 그냥 좋은 뜻으로 주는 상인데, 감사히 받으면 되는 거 아냐? 모 작가라면 ‘오예, 꽁돈!’ 하고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보보는 그의 농담에 웃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의 이마를 그의 이마에 가볍게 맞대었다. 그녀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숨결과 체온을 통해 그녀가 지금 얼마나 진지한지 느낄 수 있었다.

“자기야.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극복상’을 주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글쎄. 희망을 줘서?”


“아니. 그건 자기들 위안이야.” 보보가 냉철하게 말했다. 그녀의 철학 박사 모드가 켜진 참이었다.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당신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싶은 거야. 당신의 고통을 멋대로 상상하고, 그 고통을 당신이 이겨냈다고 서사를 완성해 버려야, 자기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불편함이 해소되거든.”


그녀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당신이 만약 ‘극복’ 하지 않고, 여전히 힘들고, 우울하고, 때로는 화를 내는 ‘적응’ 중인 장애인으로 남아 있다면? 그들은 불편해서 당신을 쳐다보지도 못할걸? 그들은 ‘극복된 장애인’, 즉 ‘안전하고 무해한 장애인’을 원하는 거야. 당신의 그 밝은 미소는 그들에게 ‘나는 괜찮으니 당신들도 안심하세요’라고 말해주는 면죄부 같은 거지.”


김경훈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의 분석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했다. 그들은 그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프레임에 맞춰 ‘소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들의 오만한 동정을 거부하고, 이 상을 걷어차 버려야 하나?”


보보는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에 장난기가 돌아왔다.

“아니? 왜 걷어차? 당신이 진짜 ‘심의(心醫)’라면, 그 환자들을 치유해 줘야지.”

“환자?”

“그럼. ‘극복’이라는 단어 없이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 불쌍한 중증 환자들 말이야.” 그녀가 짓궂게 웃었다. “상을 받아. 그리고 수상 소감으로 그들의 병을 진단해 버리는 거야. 이영도 소설의 드래곤이 인간한테 설교하듯이 아주 고상하고 자비롭게.”


김경훈의 얼굴에 마침내 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그의 가장 무거운 고뇌를,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뒤집어버렸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고,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그의 가슴에 전해져 왔다.

“당신이라는 철학자는 정말…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칭찬으로 들을게.” 그녀가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속삭였다. “그래서 말인데, 이 ‘적응’ 중인 환자분, 찜닭 식기 전에 ‘식사’라는 이름의 생존 프로토콜에 ‘참여’할 생각은 없으신가?”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살결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 그것은 그가 ‘극복’ 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였다. 이 온기, 이 교감. 이것은 그 어떤 상장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살아있는 현실이었다.



5. 주석: ‘극복’이라는 폭군을 위한 처방전


다음 날 아침, 김경훈은 연구실에 앉아 박기영 부장에게 보낼 메일을 음성으로 입력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유쾌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박기영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김경훈입니다.

먼저, 어제 귀한 상의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희망과 극복’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부장님께서는 저의 ‘극복’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저의 상태를 ‘극복’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승자와 패배자를 나눕니다. 하지만 ‘적응’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는 삶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저는 제가 승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상을 주시겠다면, 저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다만, 상의 이름을 ‘희망과 극복상’이 아닌, ‘희망과 적응상’으로 변경해 주실 것을 정중히, 그러나 강력하게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그것이 이 상의 ‘본질’에 갇힌 수많은 사람을, 각자의 ‘실존’으로 호명해 주는 진정한 ‘희망’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P.S. 만약 상 이름 변경이 어렵다면, 저는 수상자로서는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대신, 그 상금으로 내년에 열릴 ‘대구 접근성 포럼’에 기부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른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끝낸 자의 후련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벽에 딴지를 걸었고, 스스로 문을 만들었다. 그것이 그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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