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手製)’. 우리는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기호(Sign)에 광적으로 열광한다. 그것은 단순한 제조 방식을 넘어선, 하나의 신앙 고백처럼 소비된다. ‘수제 버거’, ‘수제 돈가스’, ‘수제 핫도그’. 이 단어가 간판에 붙는 순간, 음식은 단순한 칼로리 공급원에서 장인의 영혼이 담긴 예술품으로, 혹은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격상된다. 그것은 공장제 대량생산이라는 차가운 시스템에 맞선, 인간의 따뜻한 땀과 노동력이라는 ‘진정성’의 증표다.
하지만 그 ‘진정성’이라는 훈장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유효한가? 공장에서 완벽하게 찍어낸 빵(Bun) 사이에, 공장에서 대량으로 갈아낸 패티(Patty)를 구워 올리고, 공장에서 생산된 소스를 뿌린 뒤, 마지막에 인간의 손(手)으로 그것을 ‘조립’하면, 그것은 ‘수제’인가? 아니면 교묘한 상술인가?
우리는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광하는 ‘수제’라는 것이 사실은 ‘손으로 만든 제품’이 아니라, ‘손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은 그 이야기의 아키텍처, 그 기만적인 진정성의 구조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해부하려 한 한 남자에 대한, 어느 배고픈 금요일 밤의 기록이다.
1. 레이블링의 오류
대구 동성로의 밤공기는 쌀쌀했지만, 골목 안은 주말을 맞이한 젊은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바닥 위에 어지럽게 번지고 있었다. 김경훈은 이 소란스러운 빛과 소리의 교향곡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혼돈을 완벽하게 필터링하며 그를 이끄는 안내견 탱고가 그리고 그의 팔짱을 낀 채 조잘거리는 보보가 있었다.
“아, 배고파. 자기야, 오늘은 뭐 먹을까?”
보보의 목소리에는 철학 박사의 고뇌 대신, 11월의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상쾌하고 명료한 배고픔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이럴 때면 영락없이 호기심 많은 소녀 같았다. 그녀의 뺨에서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향 핸드크림 냄새가 섞인 달콤한 향기가 골목길의 튀김 냄새와 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김경훈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긍정하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글쎄. 보보 당신이 정해. 난 뭐든 좋지. 당신이 사주면.”
그의 유쾌한 너스레에, 보보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저기 어때?” 보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새로 생긴 데 같은데. ‘맷돌 수제 버거’래. 맷돌? 맷돌로 뭘 어쨌다는 거지? 패티를 갈았나?”
김경훈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록 음악 소리가 문이 열릴 때마다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고기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수제’라.” 김경훈이 그 단어를 혀끝에서 굴려보았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상 모드’에서 ‘연구 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좋아. 한번 가보자고. 그 ‘수제’라는 라벨이 정직한 데이터인지, 아니면 그냥 마케팅 부서에서 붙인 기만적인 태그(Tag)인지, 내가 검증해 보지.”
“아, 진짜 피곤하게 사네, 김 박사.” 보보가 웃으며 그의 손을 끌었다. “그냥 맛있으면 장땡이지, 무슨 논문 쓸 일 있어? 모 작가님이었으면 ‘오예, 햄버거!’ 하고 그냥 뛰어 들어갔겠다.”
“사람이라 그래, 자기야. 의심하는 게 내 직업병이잖아.”
그는 웃으며 그녀를 따라 좁은 가게 문을 통과했다. 내부는 후끈한 열기와 시끄러운 음악, 그리고 젊은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2. ‘먹거리 엑스파일’의 기억
자리를 잡고 앉자, 보보가 메뉴판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100% 한우 맷돌 패티’, ‘천연 발효 수제 번(Bun)’. 모든 단어가 ‘진정성’을 과시하고 있었다.
김경훈은 메뉴판의 화려한 수사에는 아랑곳없이 15살 이전에 보았던, 그리고 시력을 잃은 후 소리로 다시 접했던 어느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먹거리 X파일’. 그날의 주제는 ‘진짜 손칼국수’를 찾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화면낭독기가 읽어주던 그 충격적인 내용이 재생되었다. 기계로 뽑아낸 면발을 그저 손으로 몇 번 주무르거나, 심지어 기계 반죽에 손자국만 찍어내고는 ‘손칼국수’라는 간판을 내걸었던 수많은 식당들. 그것은 명백한 사기였고, 정보의 왜곡이었다. 김경훈은 당시 그 방송을 들으며, 정보 접근성 연구자로서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속여 파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손’이라는 기호가 가진 신뢰, 즉 ‘인간의 노동과 정성’이라는 약속을 배반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더 깊이 박힌 것은 유일하게 ‘진짜’로 선정되었던 그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그 할아버지는….” 그가 나지막이 보보에게 말했다. “밀을, 밀을 직접 재배했대. 그걸 맷돌로 갈아서 체로 치고, 반죽을 하고, 그걸 또 홍두깨로 밀어서 칼로 썰었지. 방송에서 그러더군. ‘진정한 장인’이라고.”
“와, 대박. 뼈를 갈아 넣었네, 그냥.” 보보가 감탄했다.
“그렇지. 뼈를 갈아 넣었지.” 김경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의 얼굴에서 유쾌함이 사라지고, ‘심의(心醫)’로서의 깊은 연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그 국수가 맛있겠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들었어. 저 할아버지의 관절은 괜찮을까? 저렇게까지 해야만 ‘진짜’로 인정받는 걸까? 저건 장인정신일까, 아니면 ‘진짜 수제’라는 본질에 갇혀버린, 일종의 강박이고 집착일까?”
그는 한때 사제가 되어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고 싶어 했다. 그는 그 노인의 굽은 등과 갈라진 손마디에서 숭고함이 아닌, 시스템이 강요한 고통스러운 자기 착취를 보았다.
“그 할아버지는… 행복했을까? 아니면, ‘진짜 손칼국수’라는 굴레에 갇힌 채, 평생을 밀밭과 반죽 속에서 감옥처럼 살았던 건 아닐까.”
그의 질문에, 철학 박사인 보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그의 손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때, 그들의 버거가 나왔다.
3. 패티의 실존, 빵의 본질
“와, 냄새는 일단 합격.” 보보가 경쾌하게 말했다.
김경훈은 버거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가장 정교한 센서인 손끝으로 ‘수제 번’이라는 녀석의 실체를 파악했다.
“흐음….”
“왜, 또?”
“이거, ‘수제’ 아닐 확률 99%.”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표면의 기공이 너무 균일해. 탄력도 그렇고. 이건 아주 잘 만든, 대량생산된 기성품의 감촉이야. 공장에서 완벽하게 제어된 습도와 온도로 구워낸 거지.”
그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맛있지만, 이건 ‘장인’의 맛이 아니라 ‘시스템’의 맛이야. 완벽하게 계산된 맛.”
“아, 까다롭긴.” 보보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버거를 베어 물었다.
다음은 패티였다. 김경훈은 패티 부분을 집중적으로 베어 물고, 혀 위에서 천천히 그 질감을 분석했다.
“…어라?”
그의 눈썹이 흥미롭게 올라갔다.
“이건… 진짜네. 맷돌로 갈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계로 완벽하게 갈아낸 패티가 아니야. 씹히는 입자가 불규칙하고, 육즙이 터져 나오는 방식도 제각각이야. 이건… ‘손’의 흔적이 확실히 남아있어.”
그는 이 버거의 정체를 파악했다. ‘수제 패티’와 ‘공장제 번’의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인간의 노동이 타협한 지점.
“그래서 자기야.” 보보가 햄버거 소스를 입가에 묻힌 채 물었다. (김경훈은 그녀가 입을 닦는 소리로 그것을 상상했다.) “이건 수제야, 아니야? 사기야, 아니야?”
김경훈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이건 ‘존재론적 햄버거’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증명하고 있어.”
“뭐래는 거야, 또. 먹는 거 가지고.”
“아니, 진지하게.” 그는 버거를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우리는 ‘수제’라는 ‘본질’(이름표)에 집착하잖아.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 입안에 들어온 이 ‘실존’(맛과 경험) 아니야? 이 버거는 ‘나는 완벽한 수제입니다’라는 본질을 배신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꽤 맛있는 버거입니다’라는 실존은 훌륭하게 증명해내고 있잖아.”
그는 다시 한번, 칼국수 장인을 떠올렸다.
“그 할아버지는 ‘본질’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실존’(관절, 삶의 질)을 파괴했지. 반면에 이 집 사장은 본질(수제 번)은 적당히 타협하고, 실존(수제 패티, 맛)에 집중했어. 어쩌면 이 사장이 훨씬 더 현명한 실존주의자인지도 몰라.”
4. 조립식 영혼
보보는 그의 분석에 감탄한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반박했다.
“그래도 그건 거짓말이잖아. ‘수제 번’이라고 써 붙여 놨으면, 수제 번을 줘야지. 그건 그냥 상술이고 기만 아니야?”
“물론 기만이지.” 김경훈이 웃으며 동의했다.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보면 명백한 ‘허위 정보’ 기재야. 나라면 당장 시정 권고 날렸을걸. 하지만….”
그는 손을 뻗어, 테이블 너머로 보보의 손을 찾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그의 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낮고 부드러워졌다.
“어쩌면 우리 인간 존재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 생각했어.”
“뭐가?”
“우리도 100% 오리지널 ‘수제’가 아니잖아.”
그의 말에 보보의 숨결이 잠시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 봐. 우리는 유전자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부품(눈, 코, 입, 성격적 기질)과, 부모와 사회라는 시스템이 제공한 매뉴얼(도덕, 관습, 언어)을 가지고 태어나지.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 부품과 매뉴얼들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를 서투르게 ‘조립’해나가잖아.”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에는 한때 사제가 되어 영혼을 탐구하고 싶었던 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내가 ‘김경훈’이라는 완벽한 ‘수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 15년간의 시각적 기억이라는 낡은 부품과, 20년간의 비시각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부품, 그리고 당신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품을… 매일매일 필사적으로 조립해서 겨우 ‘나’라는 시스템을 구동시키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애쓰고 버티며 만들어가는 ‘조립식 영혼’들이지.”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 감촉이 그의 모든 복잡한 사유를 잠재우는 유일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건, 이 햄버거의 빵을 공장에서 가져왔느냐, 아니면 밀을 직접 재배했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이 모든 부품들이 조립된 최종 결과물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맛있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거지.”
그의 입술이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닿았다.
“당신처럼 말이야, 보보. 당신이 어떤 부품들로 조립되었든,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수제 명품’이야. 비록 당신이라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내 평생이 걸릴지라도.”
보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에 뺨을 댄 채, 조용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깊은 감동으로 살짝 잠겨 있었다.
“와… 자기야. 방금 그거… 내가 들어본 햄버거 평론 중에 제일 섹시하고, 제일 철학적이었어. 당신이랑 밥 먹으면 이래서 피곤한데… 이래서 내가 당신을 못 끊지.”
그녀는 웃으며, 냅킨으로 그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김경훈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5. 가장 맛있는 거짓말에 대한 주석
그들은 가게를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들의 달아오른 뺨을 식혀주었다. 탱고가 앞장서고, 그들은 조용한 골목길을 나란히 걸었다.
김경훈은 아이폰을 꺼내, 오늘의 이 복잡하고도 맛있는 경험에 대한 주석을 음성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제목: 진정성의 아키텍처, 혹은 가장 맛있는 거짓말.
‘수제’라는 기호(Signifier)는 ‘장인의 영혼’이라는 기의(Signified)를 약속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수제’는 그저 ‘선별된 재료의 최종 조립(Final Assembly)’일 뿐이다. 이것은 기만인가? 그렇다.
먹거리 X파일의 국수 장인은 ‘본질’(완벽한 수제)에 집착하다 ‘실존’(자신의 관절과 삶)을 파괴했다. 이 햄버거 가게는 ‘본질’(수제 번)은 마케팅 용어로 차용하고, ‘실존’(맛있는 조립품)을 판매한다.
어느 쪽이 더 정직한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맛있는 거짓말에 한 표를 던진다.
결론: 어쩌면 우리 인간 존재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우리는 유전자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부품과, 사회라는 시스템이 제공한 매뉴얼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를 평생에 걸쳐 서투르게 ‘조립’해나간다. 우리는 100% 오리지널 ‘수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애쓰고 버티며 만들어가는 ‘조립식 영혼’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부품을 직접 재배했느냐가 아니라, 그 최종 조립품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것. 이 햄버거처럼. 그리고… 내 옆의 보보처럼.’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보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서 말이야, 보보.”
“응?”
“다음엔 진짜 손칼국수 먹으러 갈까? 그 할아버지, 아직 관절 괜찮으시려나.”
보보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었다. “바보. 그 방송 나간 뒤로 사람 몰려서 진작에 기계 들여놓으셨을걸?”
김경훈은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군! 완벽한 배신이야!”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쌀쌀하지만 정겨운 대구의 밤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