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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향수. 우리는 이 단어를 사치, 혹은 유혹의 기술 따위로 분류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Per Fumus’, 즉 ‘연기를 통하여’라는 지극히 종교적인 기원과 마주하게 된다. 고대의 인간들은 향기로운 연기를 피워 올려, 보이지 않는 신과 소통하려 애썼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간절한 기도를 실어 보내는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향기는 본래, 가장 순수한 형태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순수했던 기원을 타락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메시지는 곧 ‘가면’이 되었다. 중세 유럽의 의사들은 흑사병이 ‘나쁜 공기(Miasma)’를 통해 전염된다고 믿었고, 새 부리 모양의 기괴한 마스크 끝에 향초를 채워 넣어 악취라는 이름의 죽음을 필터링하려 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평생 단 세 번의 목욕으로 점철된 지독한 체취를 가리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 전체를 꽃향기로 질식시켰다. 향기는 어느새 진실을 전달하는 연기가 아니라, 부패하는 현실을 덮어버리는 가장 향기로운 거짓말이 되었다.


이것은 ‘접촉’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뿌리는 이 액체는 과연 무엇인가. 신을 향한 정직한 메시지인가 아니면 타인을 향한 교묘한 가면인가. 혹은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그 따뜻한 ‘스킨십’을 대체하려는 필사적인 모조품은 아닌가. 이것은 그 모든 냄새의 아키텍처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해부하고, 그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한 향기를 찾아낸 한 남자에 대한 기록이다.



1. 아침의 의식


김경훈은 자신의 아파트 드레스룸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간은 조용했지만, 그의 감각 속에서는 수백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속삭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그가 ‘기억의 아카이브’라고 부르는 향수 컬렉션이 정렬되어 있었다. 그는 병의 형태를 볼 수 없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끝에 저장된, 각 병의 미세한 무게 중심, 유리 표면의 질감, 그리고 뚜껑이 열릴 때 나는 고유의 마찰음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늘고 긴, 딥티크(Diptyque)의 타원형 병을 스쳐 지나갔다. ‘오 로즈(Eau Rose)’. 보보의 향기. 처음 그녀를 만났던, 지루했던 세미나실의 공기를 단숨에 장밋빛으로 물들였던 그 냄새.


그는 웃으며 그 병을 지나쳐, 묵직하고 각진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티잔 파퓨퇴르(L'Artisan Parfumeur)의 ‘팀북투(Timbuktu)’. 그는 뚜껑을 열고, 그 향기를 공중에 가볍게 분사했다. 그의 코로, 마른나무와 쌉싸름한 향신료, 그리고 아프리카 사막의 먼지 같은 지극히 건조하고 지적인 냄새가 파고들었다.


“흐음, 역시.”


그는 이 향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감상적인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직 냉철한 분석과 지적 탐구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연구 모드’의 향기였다. 오늘 서울에서 있을 ‘디지털 인문학’ 관련 학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갑옷이었다. 그가 셔츠 손목에 향수를 가볍게 뿌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기야, 아직도 그러고 있어? KTX 시간 늦겠다!”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보보의 맑고 경쾌한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날아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그의 고요한 세계에 유쾌한 태풍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김경훈보다 몇 해 연상이었고, 미국에서 학부와 로스쿨을 다니다가 결국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드레스룸 입구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디 보자. 오늘 우리 김 박사님은 또 무슨 갑옷을 입으셨나.”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에게서는 갓 구운 빵처럼 따뜻한 냄새와, 그녀가 좋아하는 르 라보(Le Labo)의 ‘떼 누아(Thé Noir)’에서 나는 쌉싸름한 홍차와 무화과의 냄새가 났다. 그녀는 김경훈의 손에 들린 병을 확인하고는 위트 넘치는 탄식을 내뱉었다.


“세상에, 팀북투? 자기, 오늘 학회 끝나고 나랑 데이트할 생각은 아예 없는 거지? 이건 뭐, ‘내 반경 1미터 이내로 감성적인 대화 접근 금지’라고 써 붙인 거나 마찬가지잖아. 완전 철벽 방어야.”


김경훈은 그녀의 정확한 비유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유쾌한 ENFJ 모드로 돌아와,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빛났다.

“들켰네. 그럼 어떡하지? 오늘 나의 ‘본질’은 보보 당신이 정하는 걸로.”

그는 장난스럽게, 빈손목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어디 보자….”

보보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아카이브를 훑었다. 그녀 역시 향기를 사랑했고, 두 사람에게 향수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교환하는 은밀한 언어였다. 그녀의 손이 둥글고 붉은 라벨이 붙은 병을 집어 들었다.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의 ‘뮤스크 라바줴(Musc Ravageur)’.


“이거 어때?” 그녀가 그의 손목에 향수를 뿌리며 속삭였다.

관능적인 머스크와 바닐라, 톡 쏘는 스파이스가 뒤섞인, 대담하고 따뜻한 향기가 순식간에 공기 중에 퍼졌다.

“와, 이건….” 김경훈이 자신의 손목 냄새를 맡고는 눈썹을 찌푸리는 척했다. “이건 너무 노골적인데. 학회 발표하러 가는 사람한테 ‘짐승’ 냄새를 입혀 놓으면 어떡해.”


“뭐가 어때.” 보보가 그의 넥타이를 장난스럽게 고쳐 매주며, 그의 귓가에 대고 반말로 속삭였다. “당신의 그 잘난 ‘심의(心醫)’ 페르소나 뒤에 숨겨진 본능도 가끔은 꺼내줘야지. 가끔은 ‘Per Fumus’(신을 향한 연기)가 아니라, ‘Per Animal’(짐승을 향한)도 필요한 법이라고.”


그녀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김경훈은 그녀의 대담하고 재치 있는 선언에,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립밤의 맛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오늘 서울에서의 하루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진진해질 것임을 예감했다.



2. 가면의 냄새


서울은 언제나 그를 긴장시켰다. 대구의 익숙한 풍경과 달리, 서울의 공기는 수많은 익명의 욕망과 속도전, 그리고 더 높은 농도의 매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 저녁, 학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와 보보는 근처 갤러리에서 열리는 ‘테크놀로지 & 아트’ 전시회의 리셉션에 초대받아 와 있었다.


장소는 강남의 어느 갤러리. 천장이 높고, 벽은 온통 흰색이며, 바닥은 광택 나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다. 공간은 거대했지만, 소리는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울렸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 그리고 배경으로 희미하게 흐르는 미니멀한 전자 음악. 김경훈은 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살균된 듯한 공간이 15년 전 병원의 무균실처럼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의 발치에서 탱고조차 이 낯선 환경이 불편한 듯,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그의 다리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기계 팔이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리는 설치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김경훈 박사님 아니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김경훈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의 모든 감각이 비상 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냄새’ 때문이었다.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향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백화점 1층 향수 코너 전체가 폭발이라도 한 듯한, 혼돈의 아로마였다. 날카로운 알데하이드(Aldehyde) 계열의 향,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콤한 플로럴 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강력하고 인공적인 머스크 향이 마치 화학 무기처럼 그의 후각을 공격했다.


그는 순간 숨을 참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 냄새는 하나의 단어로 번역되었다. ‘가면’.

이것은 ‘Per Fumus’가 아니었다. 이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압도적인 소음(Noise)이었다. 이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향기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가리려는 절박한 위장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책에서 읽었던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고통이 아니라, 중세 흑사병 의사의 마스크가 떠올랐다. 악취(현실의 고통과 불안)가 병을 옮긴다고 믿고, 그 악취를 막기 위해 새 부리 끝에 온갖 향초를 쑤셔 넣은 그 기괴하고 절박한 가면의 냄새.


“반갑습니다. 저는 이 전시의 총괄 기획을 맡은 윤 이사라고 합니다.”


목소리는 냄새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과도하게 밝고, 톤은 높았으며, 모든 음절에 인공적인 친절함이 묻어 있었다. 김경훈은 자신의 ENFJ 본능을 총동원해, 입가에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아, 네. 김경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악수한 손에서조차, 그녀의 핸드크림과 향수가 뒤엉켜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녀는 김경훈의 손을 놓을 생각도 않고, 그의 연구 업적에 대해 과장된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박사님의 정보 접근성 연구, 정말 감명 깊게 보고 있습니다. 저희 갤러리도 ‘접근성’에 대해….”


김경훈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뇌가 이 과잉된 정보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루이 14세의 궁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평생 씻지 않은 왕의 지독한 체취(불안, 공허)를 가리기 위해, 궁전 전체를 수천 송이의 꽃향기(과시, 칭찬)로 질식시키고 있는 그 현장.


그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어가는 것을, 보보가 놓칠 리 없었다. 그녀 역시,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윤 이사의 향수가 아니라, 김경훈의 표정에서 ‘위험 신호’를 읽었다. 그의 뺨이 평소의 따뜻한 혈색을 잃고, 창백하게 질려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윤 이사님.” 보보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희가 잠시… 실례를 해야겠습니다. 여보, 괜찮아?”


보보는 윤 이사의 당황한 표정을 뒤로한 채, 김경훈의 손을 잡고 그를 갤러리 밖, 테라스로 이끌었다.



3. 기억의 아카이브 (Flashback: The First Encounter)


“후….”


테라스로 나오자마자, 11월 서울의 차가운 밤공기가 칼날처럼 그의 폐를 파고들었다. 그는 난간을 붙잡고, 방금 전까지 그를 질식시켰던 인공의 향기를 거칠게 토해냈다.

“괜찮아, 자기?” 보보가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그가 겨우 대답했다. “그냥… 방독면이 필요했어. 저건 향수가 아니라, 화학 테러야.”


“와, 나도. 그 여자분, 샤넬 No. 5랑, 엔젤이랑, 쁘띠 마망을 한꺼번에 뒤집어쓴 줄 알았네.” 보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야.” 김경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제 조금 진정된 듯했다. “그건 ‘가짜’ 냄새였어. 향기가 아니라, 비명이었지. ‘제발 나를 보지 마, 내 진짜 냄새를 맡지 마!’ 하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았어. 그게… 너무 시끄러웠어.”


그는 난간에 기댄 채, 곁에 선 보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차갑고 정직한 밤공기 속에서 그는 문득, 그녀의 향기를 떠올렸다. 방금 전의 그 끔찍한 소음과 정반대에 있는 그의 기억 속 가장 완벽한 메시지. 그가 보보를 처음 만났던 날의 향기.



시점은 몇 년 전, 대구의 어느 대학, 지루한 학회 세미나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기는 먼지와, 값싼 믹스 커피의 텁텁한 냄새, 그리고 발표자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지적 권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경훈은 ‘연구 모드’로 앉아 있었지만, 사실상 시스템 절전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탱고는 그의 발치에서 아예 전원이 꺼진 듯 잠들어 있었다.


바로 그때, 그 모든 텁텁함과 권태를 단숨에 가르는 낯선 향기가 그의 감각을 깨웠다.


그것은 향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이었다.

그것은 방금 꺾은 장미 줄기에서 나는 맵싸하고 푸른 냄새였다. 덜 마른 흙의 냄새, 그리고 이슬을 머금은 꽃잎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향기. 15년의 기억 속에 저장된,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 있던 붉은 장미의 이미지가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눈을 떴다(물론, 마음의 눈을).


“질문 있습니다.”


저 뒤편에서 맑고 청아하지만, 단단한 힘이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미국식 억양이 섞인, 지적인 목소리. 그녀는 발표자의 논리적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은 그녀의 향기만큼이나 신선하고 강렬했다.


김경훈은 그날, 처음으로 학회 세미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는 쉬는 시간에, 그 ‘장미 줄기’ 냄새를 따라 로비로 나갔다.

그녀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그가 다가가자, 장미 향이 한층 더 짙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질문,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핵심을 정확히 꿰뚫으시더군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니 더 좋았다.

그는 특유의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혹시… 오시기 전에 장미 정원에서 한바탕 구르기라도 하셨습니까? 온몸에서 푸른 냄새가 나네요.”


그의 짓궂고도 감각적인 질문에, 그녀는 잠시 숨을 멈췄다. 곧이어, 김경훈이 들어본 중 가장 기분 좋은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코 진짜 좋으시네요. 완벽해요. 딥티크, ‘오 로즈(Eau Rose)’입니다. 장미 줄기랑 잎까지 다 갈아 넣은 냄새죠. 딱 걸렸네요.”

그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 이름은 보보입니다. 철학 전공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녀의 향기는 가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는 가장 정직하고 매력적인 초대장이었다.



4. 사랑의 증명


다시 현재. 서울의 호텔 방.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방 안은 조용했다. 김경훈은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그날의 기억이 담긴 딥티크 ‘오 로즈’ 향수병이 들려 있었다.


욕실 문이 열리고, 보보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왔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실크 잠옷 차림이었다.

“아직도 그 여자 향수 때문에 그래? 잊어버려, 그런 건.”


김경훈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당신 냄새 때문에 그래. 이 냄새가 아까 그 지옥 같던 냄새를 씻어냈어. 일종의 해독제처럼.”


그는 침대 가장자리를 툭툭 쳤다. 보보가 그의 곁에 와 앉자, 갓 씻은 비누 냄새와 그녀 본연의 따뜻한 체향이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는 잠시 그녀의 존재를, 그 온기를 가만히 느끼다가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그 윤 이사라는 사람… 그녀는 루이 14세였어. 자신의 지독한 체취(불안, 야망, 공허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들이부은 거지. 아니, 흑사병 의사였나. 악취(현실)가 병을 옮긴다고 믿고, 향초(과시)로 가득 찬 부리 가면을 쓴 거야. 그 냄새를 맡는데, 나까지 질식하는 기분이었어. 모든 게 가짜였으니까.”


“그래서 당신이 3년 동안 병원에서 맡았던, 그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차라리 더 정직했다?” 보보가 그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며 물었다.


“정확해.”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독약은 ‘나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정직한 신호를 보내지. 그건 거짓말을 안 해. 하지만 오늘 그 냄새는 ‘나는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데, 그 이면엔 ‘나는 썩어가고 있고, 두려움에 질려 있다’는 비명이 들렸어. 그 끔찍한 부조화가 견딜 수 없었던 거야.”


그는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오직 그녀 앞에서만 드러내는 부드럽고도 깊은 애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당신은 달랐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의 냄새는 ‘나를 보세요’라고 강요하는 소음이 아니라, ‘이게 나예요’라고 알려주는 분명한 메시지였지. 그건 가면이 아니라, 얼굴이었어.”


그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오 로즈’의 잔향과 그녀의 따뜻한 살 냄새가 뒤섞여, 그에게는 이 세상 유일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이게 내 유일한 진실이야. 다른 건 다 소음이고, 다 가짜 같아.”


보보는 그의 머리를 가만히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의 등에 뺨을 대고, 그의 단단한 근육과 심장 박동을 느꼈다.

“바보.” 그녀가 속삭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한테 나는 이 냄새….” 그녀가 그의 맨살 어깨에 코를 묻었다. “… 당신이 뿌린 그 머스크니 뭐니 하는 거 말고, 그냥 당신 살 냄새.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집’ 냄새야.”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것은 10년 전, 미시간의 혹한 속에서 쟁취했던 스웨터의 거친 감촉이나, 아침에 그가 뿌렸던 인공적인 머스크 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완벽하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그의 가장 확실한 온기였다. 그는 더 이상 가면과 본질을 구분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접촉’ 속에 온전히 존재했다.



5. 주석: 스킨십이라는 이름의 원본


다음 날 아침, 서울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김경훈은 자신의 아이폰에, 어젯밤의 복잡했던 사유와 그 끝에서 찾은 결론을 음성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유쾌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제목: 접촉의 아키텍처, 혹은 진정성의 향기.

향수의 어원은 ‘Per Fumus’, 신을 향한 연기, 즉 메시지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그것을 ‘Eau de Toilette’, 즉 악취(현실의 부패와 불안)를 가리는 가면으로 오용한다. 루이 14세의 궁전, 흑사병 의사의 마스크,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과시적인 욕망들. 그것들은 모두 진실을 가리는 ‘가짜 향기’다.


해리 할로의 원숭이 실험은 증명했다. 우리는 젖(효용/데이터)이 아니라, 부드러운 천(접촉/관계)을 갈망한다. 나는 어젯밤, 그 ‘천’에서 나는 냄새를 다시 확인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배의 돛에 향을 뿌려, 바람을 통해 자신의 도착을 ‘먼저’ 알렸다. 그것은 유혹 이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었다. 보보가 처음 내게 다가왔을 때도 그랬다. 그녀의 향기(오 로즈)가 그녀의 목소리보다 먼저 내게 도착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지난 10년간 내가 잃어버렸던 ‘색깔’과 ‘형태’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것은 붉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가시를 지닌, 완벽한 ‘실존’의 향기였다.


결론: 마릴린 먼로는 샤넬 No.5를 입고 잔다고 했다. 그것은 매혹적인 비유다. 하지만 나는 보보의 향기를 입고,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향수는 결국 스킨십의 모조품일 뿐이다. 가장 완벽한 향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살 냄새라는 원본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옆자리에 앉은 보보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어젯밤의 장미 향이 희미하게 풍겨왔다. 그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 따뜻한 접촉. 그 어떤 향기보다도 확실한, 그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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