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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양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표준(Standard)’이라는 이름의 신을 숭배한다. 표준어, 표준 규격, 표준화된 시스템. 그것은 혼돈스러운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표준은 우리에게 질서와 편의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 견고하고 매끄러운 표준의 아키텍처 이면에는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수많은 ‘비표준’의 목소리들이 있다. 사투리, 비주류의 감각, 예외적인 존재들. 시스템은 이들을 ‘오류’로 규정하고,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무미건조한 메시지를 반복하며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기술은 과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우리 모두를 하나의 표준화된 목소리로 길들이려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폭군인가. ‘음성인식’이라는 이름의 이 정교한 귀는 과연 소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복종을 위한 것인가. 이것은 스코틀랜드의 억센 억양(Scottish Accent)이 미국의 표준화된 알고리즘과 충돌하는 어느 유쾌하고도 슬픈 코미디에 대한 기록이다.



1. 불친절한 기계의 초대


김경훈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아이폰 화면낭독기를 통해, 얼마 전 만났던 마봉 드 포레 작가의 새로운 브런치 칼럼을 ‘듣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기묘했다. 〈BURNISTOUN: 음성인식 엘리베이터〉.


그의 입가에는 이미 유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발치에 엎드려 있던 안내견 탱고가 주인의 기분 좋은 기척을 느끼고 꼬리로 바닥을 ‘툭’ 쳤다. 김경훈은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낭독기의 정확한 표준 서울말 억양이 스코틀랜드 억양(스코티시)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음성인식 엘리베이터와, 그 안에 갇힌 두 스코틀랜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얼레븐(Eleven)!”

[다시 말씀해 주세요]

“얼레븐! 얼레븐!“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김경훈은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연구실을 울렸다. 그는 이 코미디가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있는 ‘정보 접근성’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가장 희극적인 방식으로 꿰뚫고 있음을 직감했다.


“얼레븐! 말 못 알아듣겠으면 느네 나라로 돌아가!”

“야, 느네 나라로 돌아가라니 인종차별 아니냐. “

“스발 엘리베이터한테 어떻게 인종 차별을 하냐.”


그는 이 대목에서 거의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다. 그는 15년 전의 시각적 기억을 더듬어, 좁고 답답한 엘리베이터 상자 안에 갇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보이지 않는 기계와 싸우는 두 남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것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었다. 이것은 시스템의 폭력에 맞선, 인간의 처절한 실존적 저항이었다.


칼럼의 마지막, 두 남자가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처럼 “스코틀랜드! 만세!(Freeeeeeedoooooom!)”를 외치자, 비로소 문이 열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다른 승객이 “올라가시게요?”라고 묻는 장면에서 김경훈은 완벽한 부조리의 미학을 느꼈다.



2. 표준어라는 이름의 권력


그는 웃음을 거두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얼굴에서 유쾌함이 옅어지고, 서늘한 분석가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이 코미디가 자신의 삶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했다. 그는 ‘음성인식’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사용자였다. 그는 아이폰의 화면낭독기, ‘보이스오버(VoiceOver)’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다. 그의 보이스오버는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했다. 그리고 그는 그 표준어의 세계 안에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비표준’의 존재였다.


그는 경상북도에서 나고 자랐다. 15살에 시력을 잃기 전까지, 그의 세상은 억센 대구 사투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금도 친구들이나 가족과 통화할 때는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아이폰은 그의 가장 내밀한 그 언어를 종종 ‘오류’로 인식했다. 그가 ‘뭐라카노(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음성 메모를 남기려 하면, 기계는 ‘몰아붙이네요’라고 받아 적기 일쑤였다.


그는 깨달았다. 이 음성인식 엘리베이터의 아키텍처는 ‘소통’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을.


그 엘리베이터의 시스템은 명백히 ‘미국식 표준 영어’를 ‘정(正)’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스코티시 억양은 그 기준에 미달하는 ‘반(反)’, 즉 수정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오류’로 규정되었다. 기계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너의 억양을 버리고, 나의 표준에 맞춰라.” “너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나의 시스템에 복종하라.”


이것은 ‘정보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언어 제국주의’의 문제였다.


그는 한때 사제가 되어 만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심의(心醫)’를 꿈꿨다. 그는 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수많은 ‘비표준’의 존재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와 소외감을 안겨주는지 똑똑히 보고 있었다. ‘다시 말씀해 주세요’라는 그 정중한 기계음은 사실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가장 차갑고 폭력적인 낙인이었다.



3. 로맨스의 억양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비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아직도 안 끝났어? 그놈의 논문은 당신이랑 결혼이라도 했나 보네.”


보보였다. 그녀는 가벼운 코트 차림이었고, 그녀에게서는 늦가을 밤의 차가운 공기 냄새와 함께, 그녀가 좋아하는 바이레도의 ‘블랑쉬’ 향기가 섞여 풍겨왔다. 그녀는 김경훈의 굳어 있는 표정을 단번에 알아챘다.


“왜 그래? 또 무슨 세상 망할 것 같은 고민에 빠지셨나, 우리 김 박사님.”

그녀는 그의 옆에 걸터앉아, 그의 뺨을 자신의 차가운 손으로 감쌌다. 그녀의 목소리는 반말이었고, 연상의 연인 특유의 다정함과 짓궂음이 묻어 있었다.


김경훈은 그녀의 따뜻한 ‘접촉’에, 비로소 긴장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방금 들었던 스코틀랜드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 그래서 말이야. 그 멍청한 기계가 ‘얼레븐’을 못 알아듣더라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내 억양을 못 알아듣던 것처럼.”


보보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내가 언제?”


“기억 안 나?” 김경훈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15년의 기억과 10년의 미국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그날의 풍경을 그렸다. “몇 년 전, 그 지루해 빠진 학회. 내가 당신한테 처음 말 걸었을 때 말이야. 내가 ‘혹시 딥티크 ‘오 로즈’ 뿌리샸는교?’라고 물었잖아.”


“아….” 보보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그랬지! ‘뿌리샸는교?’라니. 나는 당신이 나한테 ‘뿌리 뽑겠다’고 선전포고하는 줄 알았잖아. 무슨 이런 무례한 사람이 다 있나 했지.”


“거봐. 당신한테도 내 대구 억양은 ‘오류’였던 거야. ‘다시 말씀해 주세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겠지.”

“아니거든!” 보보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당신의 그 낯선 억양이 그 어떤 표준어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섹시하다고 생각했거든? ‘이 남자, 대체 뭐지?’ 싶었으니까.”


그녀는 그의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입술을 향해 속삭였다.

“시스템은 ‘표준’을 사랑하지만, 사람은 ‘예외’를 사랑하는 법이야, 자기야. 당신이 나한테 완벽한 표준어로 ‘딥티크 오 로즈를 사용하셨군요’라고 물었다면, 난 그냥 ‘네, 그런데요’ 하고 지나쳤을걸? 날 사로잡은 건 당신의 그 ‘버그’였어. 시스템이 이해 못 할, 당신만의 고유한 억양.”



4. 자유를 향한 외침


김경훈은 행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다시 평소의 유쾌하고 따뜻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보보를 끌어안은 채, 마봉 드 포레의 칼럼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스코틀랜드 만세!’


그는 깨달았다. 그들이 마지막에 외친 ‘자유(Freedom)’는 단순히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 위한 주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자신들의 억양을 ‘오류’로 규정하는 획일적인 시스템에 맞서 ‘나는 당신의 표준에 복종하지 않겠다,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겠다’고 외치는 가장 처절한 인간 존엄의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다시 생각했다. ‘정보 접근성’. 그것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비표준’의 존재들 –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억양을 가지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모든 소수자 – 이 시스템 앞에서 ‘다시 말씀해 주세요’라는 모욕적인 메시지를 듣지 않도록,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억양의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5. 주석: 우리 모두의 ‘얼레븐’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이 유쾌하고도 깊은 깨달음에 대한 주석을 음성으로 남겼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고유한 대구 억양이 살짝 묻어나는 따뜻하고 힘 있는 톤이었다.



‘제목: 억양의 아키텍처, 혹은 ‘얼레븐’을 위한 변론.

기술은 ‘표준’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한다. 음성인식 엘리베이터는 스코티시 억양을 ‘오류’로 규정하며, 사용자의 정체성을 교정하려 든다. 이는 정보 접근성의 실패이자, 언어 제국주의의 명백한 증거다.

시스템은 ‘일레븐(Eleven)’이라는 표준화된 기표(Signifiant)만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삶은 ‘얼레븐’이라는 수만 가지의 고유한 기의(Signifié)로 이루어져 있다.

보보는 나의 ‘억양(버그)’을 사랑한다고 했다. 어쩌면 진정한 소통과 사랑은 표준화된 시스템의 매끄러운 인식이 아니라, 서로의 ‘오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해석하려는 그 불편하고도 따뜻한 ‘노력’ 속에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결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얼레븐’을 외치며 살아간다. 그리고 시스템이 그 목소리를 ‘다시 말씀해 달라’고 요구할 때, 우리는 기계에 복종하며 억양을 바꾸는 대신, 함께 “스코틀랜드 만세!”를 외쳐줄 동료가 필요하다. 보보처럼. 마봉 드 포레처럼.’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보보가 그의 귓가에 대고, 일부러 과장된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속삭였다.

“그래서 여보. 이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얼레븐’시까지 있을 거야?”


그는 그녀의 장난에 큰 소리로 웃으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보이지 않는 표준화의 벽들을 허물며, 그들의 따뜻한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고문헌

https://brunch.co.kr/@mabon-de-foret/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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