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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결핍(Deficit)을 두려워하고 잉여(Surplus)를 갈망하도록 설계되었다. 우리의 장부(帳簿)는 늘 ‘적자(in the red)’의 공포에 시달린다. 통장 잔고, 인간관계의 밀도, 사회적 성취, 심지어 SNS의 ‘좋아요’ 개수까지. 우리는 이 모든 영역에서 흑자(in the black)로 돌아서기 위해 발버둥 친다.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이 단어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의 욕망과 구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호가 또 있을까. 1년 내내 적자에 허덕이던 유통업체들이 단 하루의 광란적인 소비를 통해 마침내 검은색 잉크로 장부를 마감한다는 이 얼마나 감동적인 회계학적 구원 서사인가.


그러나 모든 서사에는 이면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긍정적인 유래 뒤에는 195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이 지옥 같은 혼돈과 교통마비를 저주하며 내뱉은 ‘끔찍한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이라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지저분한 기원이 숨어있다. 우리는 질서 정연한 장부의 ‘흑자’를 믿고 싶어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그 흑자를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인 인간들의 ‘혼돈’ 속에 있다.


이것은 ‘흑자’의 서사가 아닌, ‘혼돈’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혼돈의 기억이 세월이 지나 어떻게 한 사람의 가장 따뜻한 ‘자산’으로 기록되는지에 대한, 어느 늦가을 밤의 기록이다.



1. 적자의 계절


대구의 밤공기는 겨울의 문턱을 넘었음을 알리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김경훈의 아파트 거실은 바깥의 냉기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따뜻하고 안락한 섬이었다. 낮은 조도의 오렌지색 스탠드 불빛이 그가 아끼는 낡은 가죽 소파와 책장 가득한 벽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보보가 끓인 뱅쇼의 달콤한 시나몬 향과, 그의 발치에서 평온하게 잠든 안내견 탱고의 고소한 털 냄새가 섞여 있었다.


김경훈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이 모든 감각의 조화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그렇듯, 그의 얼굴은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따뜻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완벽한 ‘흑자’의 상태에 있었다.


“아, 진짜!”


그의 평온을 깬 것은 그의 옆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보보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광고 팝업이 무슨 좀비처럼 튀어나와. 죽여도 죽여도 계속 뜨네. ‘블랙 프라이데이 얼리버드 특가!’ 젠장, 여긴 미국도 아니라고.”


‘블랙 프라이데이’. 그 단어가 김경훈의 귓가에 꽂히는 순간,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유쾌한 미소가 잠시 옅어졌다. 그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서 희미한 편지를 발견한 사람처럼,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연구 모드’가 켜졌지만, 그것은 분석이 아닌 회상에 가까웠다.


그 미세한 변화를, 보보가 놓칠 리 없었다.

“왜 그래, 자기?” 그녀가 노트북을 덮으며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반말로,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 특유의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 단어에 뭐 트라우마라도 있어? 당신 표정, 꼭 헤겔의 변증법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을 때 같네.”


김경훈은 그녀의 재치 있는 비유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에 다시 유쾌함이 돌아왔다.

“트라우마는 무슨. 그냥 내 생일이 떠올라서 그렇지.”

“생일?”

“응. 내 생일이 11월 마지막 주거든. 10년 전, 미시간에서 유학할 때… 그 빌어먹을 블랙 프라이데이랑 내 생일이 항상 같이 왔어. 잊을 수가 없지.”

“아….” 보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때. 나도, 탱고도 없던 시절.”

“그렇지.” 김경훈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의 완벽한 ‘적자’ 시즌이었지. ‘비포 보보(B.B.)’ 시대, 혹은 나의 빙하기.”


보보는 그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이야기해 줘. 당신의 그 빙하기. 눈 많고 황량했다던 그 미시간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어땠어?”



2. 빙하기의 감각 (미시간, 10년 전)


김경훈은 눈을 감았다. 15년의 시각적 기억이 현재의 감각과 뒤섞이며 10년 전 그날의 풍경을 그의 머릿S속에 렌더링 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의 미시간은 그가 기억하던 대구의 가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추수감사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캠퍼스는 마치 중성자탄이라도 떨어진 듯, 모든 인간 활동이 증발해 버렸다. 기숙사 복도를 울리던 소음, 식당의 웅성거림, 강의실의 분필 소리가 일제히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창문에 부딪혀 늑대처럼 울부짖는 바람 소리와, 끝없이 내리는 눈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무겁고도 질식할 듯한 침묵뿐이었다.


그는 텅 빈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탱고도, 보보도 없던 시절. 시력을 잃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그에게, 이 낯선 땅의 침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읽고, 탱고의 움직임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법을 배우기 전이었다. 눈은 이미 닫혔는데, 익숙한 소리마저 사라진 세상. 그것은 ‘암흑’이 아니라, 아무런 좌표도 없는 ‘백색의 공백(White Void)’이었다. 눈이 모든 소리를 흡수해 버려서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건지, 허공에 떠 있는 건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의 유일한 생존 식량은 서브웨이 샌드위치였다. 그는 연휴 직전, 문을 닫기 직전의 서브웨이에서 터키 샌드위치 다섯 개를 샀다. 그는 지금도 그 냄새를 기억했다. 차갑게 식은 빵 냄새, 규격화된 소스 냄새, 그리고 종잇장처럼 얇게 슬라이스 된, ‘칠면조’라는 기호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가공육의 희미한 냄새. 그것은 그가 상상했던 풍성한 추수감사절의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적자’의 맛,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칼로리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같은 과의 미국인 친구, 조쉬였다.

“헤이 훈! 너 지금 뭐해? 설마 그 굴(기숙사)에 처박혀 있는 건 아니지?”

“어… 뭐, 논문 읽고 있었지.” (물론, 화면낭독기로 듣는 척하며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세상에. 당장 나와. 우리 집에서 파티해. 너 같은 유학생이 이 날 혼자 있으면 그건 범죄야.”


그가 조쉬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감각은 폭발했다. 문을 여는 순간, 기숙사의 차가운 침묵과는 정반대 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시끄러운 소음이 그를 덮쳤다. 아이들의 비명, 어른들의 높은 웃음소리, 거실 TV에서 울려 퍼지는 미식축구 중계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후각을 마비시킬 듯한, 압도적인 ‘냄새’.


“와, 냄새 좋다….”

“메인 요리 나왔어! 훈, 이리 와 봐!”


조쉬의 어머니가 그를 주방으로 이끌었다.

“자, 이게 우리 집 터키(Turkey)야.”


김경훈은 기억을 더듬어 ‘칠면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명절 제사상에 오르던, 닭보다 조금 더 큰, 갈색의 가금류. 그는 예의상 손을 뻗어, 그 ‘칠면조’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손에 닿은 것은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공룡에 가까웠다. 그의 손바닥 전체로 느껴지는 거대한 크기, 섭씨 200도에서 구워져 나온 껍질의 바삭하고 뜨거운 질감, 그의 손가락이 미끄러질 정도의 엄청난 기름기. 그리고 그의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세이지와 버터, 로즈마리, 그리고 농축된 고기 향이 뒤섞인 그 압도적인 향기.


“이 이게… 이게 칠면조라고요?”

그의 당황한 목소리에 주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게 칠면조지! 크지?”

“크다 정도가 아니라… 이건 거의… 생물학적 오류 같은데요.”


그는 서브웨이의 그 얇고 차가운 터키 슬라이스를 떠올렸다. 그것은 이 거대한 실존(Existence)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기만적인 ‘본질(Essence)’이었던가. 그는 그날, 그 거대하고 뜨거운 ‘진짜’ 칠면조를 손으로 뜯어먹으며, 비로소 자신이 이 낯선 땅의 일부가 되었음을, ‘적자’의 세계에서 아주 잠시 벗어났음을 느꼈다.



3. ‘참여’의 열기


파티가 무르익고, 칠면조가 뼈대만 남았을 때쯤, 조쉬와 사촌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자, 이제 소화시키러 가야지.”

“어딜?”

“블랙 프라이데이. 10시부터 줄 서야 돼.”


김경훈은 기겁했다. “지금? 이 눈보라 속에? 그냥 내일 아침에 가면 안 돼?”

조쉬가 그를 곰 인형처럼 끌어안으며 웃었다.

“훈,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블랙 프라이데이는 ‘쇼핑’이 아니야. 그건 ‘전쟁’이지! 그리고 네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을 쟁취하러 가야지!”


그들이 도착한 ‘서머셋 컬렉션’ 몰 앞은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11월 말 미시간의 밤공기는 칼날 같았다. 김경훈은 태어나서 그런 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은 춥지만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기묘한 흥분과 동지애, ‘우리는 지금 가장 멍청하지만 가장 재밌는 짓을 하고 있다’는 공범의식 같은 것이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긍정적인 ‘흑자’의 서사가 아니라, 필라델피아 경찰들이 저주했던 바로 그 ‘혼돈’의 현장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소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거대한 축제, 혹은 폭동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군중이었다.


자정, 마침내 문이 열렸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그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탱고도 없고, 하얀 지팡이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그저 조쉬의 팔을 붙잡고, 인파에 떠밀려 다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옷걸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계산대의 포스기 소리. 그리고 갓 구운 시나몬 롤의 달콤한 냄새와 수백 명의 땀 냄새가 뒤섞인, 광란의 아로마.


그는 무서웠지만, 동시에 기묘하게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기숙사의 그 ‘백색 공백’ 속에서 그는 유령이었지만, 이 ‘검은 혼돈’ 속에서 그는 비로소 실존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참여)’을 떠올렸다. 그래, 이것이 참여다.


“훈! 이 스웨터 어때? 70% 할인이야!”

조쉬가 무언가를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재질을 만져보았다. 두껍고, 조금은 거칠지만 따뜻한 울(Wool)이었다.

“좋은데?”

“청바지는? 리바이스 501, 30달러!”

“사!”


그는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도 몰랐다. 그는 ‘필요’를 산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억’을, ‘경험’을, 그리고 ‘소속감’을 샀다. 그는 더 이상 텅 빈 기숙사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던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미시간의 혹한 속에서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이 가장 미국적인 광기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그의 장부에 ‘흑자’를 기록했다.



4. 흑자의 아카이브 (현재 - 대구)


“... 그렇게 해서 사 온 옷들이야.”


김경훈은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어느새 일어나, 침실 드레스룸 구석에 처박혀 있던 오래된 상자를 꺼내 온 참이었다. 그가 상자를 열자, 10년 묵은 나프탈렌 냄새와 함께, 낯설지만 정겨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는 옷들을 하나씩 꺼내 보보에게 건넸다.

“이게 그 울 스웨터. 그리고 이게 그 리바이스 501.”


보보는 옷들을 받아 들고,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자기야. 이거… 와. 이 핏 좀 봐. 완전 2010년대 초반 아저씨 핏이잖아. 게다가 이 스웨터… 색깔은 또 왜 이래? 칙칙한 겨자색?”


그녀는 옷들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웃었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낡은 스웨터의 보풀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왜 아직도 이걸 가지고 있어?”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유행도 다 지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신 몸에 맞지도 않을 것 같은데. 버리지.”


김경훈은 보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모 작가의 위트가 섞인, 따뜻하고도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버리다니? 이걸 왜 버려. 이게 내 ‘흑자’의 증거인데.”

“흑자?”

“그럼. 내 인생의 가장 혹독했던 ‘적자’의 계절에, 내 힘으로 쟁취한 최초의 ‘잉여’라고. 당신이 보기엔 그냥 낡아빠진 옷가지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그는 보보의 손에서 그 낡은 스웨터를 건네받았다. 그는 그것을 얼굴에 가져가 깊이 냄새를 맡았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그날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조쉬의 집에서 나던 칠면조 냄새, 몰의 시나몬 롤 냄새,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밤을 새웠던 그 차가운 공기의 냄새.


그의 목소리가 낮고 진지해졌다.

“사람들은 기억이 뇌에 저장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적어도 나의 기억은 달라. 내 15년의 시각적 기억은 뇌에 있겠지. 하지만 그 이후의 삶, 내가 잃어버린 세상을 다시 구축하며 살아온 이 시간들은… 이런 ‘사물’ 속에 아카이빙(Archiving)되어 있어.”


그는 거친 울 스웨터의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며 말했다.

“이 스웨터는 그냥 섬유가 아니야. 이건 ‘데이터’야. 10년 전, 미시간의 그 춥고 황량했던 캠퍼스. 텅 빈 기숙사. 서브웨이 샌드위치의 맛. 그리고 거대했던 칠면조의 감촉. 마지막으로,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혼돈 속에서 내가 느꼈던 공포와, 그보다 더 컸던 소속감. 그 모든 정보가 이 안에 압축되어 있어. 이건 내 청춘의 일부가 담긴, 가장 소중한 외장 하드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걸 버려? 이건 내 존재의 일부인데.”


보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등 뒤로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뺨이 그의 등에 닿았다.

“알았어, 알았어, 이 멋진 철학자 양반.” 그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와인 향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안 버릴게. 대신, 이건 절대 이 옷장에 두지 마. 당신의 그 ‘철학적 아카이브’ 상자에 고이 모셔둬야겠어. 이 칙칙한 겨자색이 당신의 다른 예쁜 옷들을 오염시키는 건 참을 수 없으니까.”


김경훈은 그녀의 말에, 온 마음을 다해 웃었다. 그는 그녀의 품 안에서 뒤로 돌아, 그녀의 얼굴을 찾았다.

“그럼, 보보.”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생일이 코앞인데. ‘흑자’ 좀 내주셔야 하지 않겠어?”

“어머, 이젠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시네?”

“뇌물이 아니지.” 그가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건 ‘감사’의 표현이야. 당신이라는 ‘잉여’가 내 삶에 들어와 줘서 내 모든 ‘적자’를 메워준 것에 대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것은 10년 전, 혼돈 속에서 쟁취했던 스웨터의 거친 감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완벽하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그의 가장 확실한 흑자였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적자에 얽매이지 않았고, 미래의 흑자를 광적으로 갈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 속에 온전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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