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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목표(Goal)라는 이름의 중력에 묶여 산다. ‘무엇이 될 것인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 그 질문이 우리를 끌어당겨, ‘인생’이라는 이름의 가파른 산을 오르게 만든다. 우리는 정상에 꽂힐 깃발을 상상하며 숨 가쁘게 오르막을 감수한다. 그 정상이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본질’의 완성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만약, 삶의 본질이 정상을 정복하는 ‘사건(Event)’이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쉼 없이 반복하는 ‘과정(Process)’ 그 자체라면 어떨까. 아흔 살의 늙은 철학자 존 듀이는 ‘위대한 생애’의 비결을 묻는 젊은이에게, 그저 ‘산에 오르라’고 답했다. 왜냐고? ‘다시 올라갈 다른 산을 보기 위해서’라고. 그는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등반을 멈추는 순간, 즉 다음 산을 향한 열망이 사라지는 순간이 존재의 진짜 죽음이라는 것을.


이것은 자신이 정한 단 하나의 완벽한 산(山)에서 그 정상의 문턱에서 강제로 ‘하산(下山)’ 명령을 받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가 텅 빈 골짜기에서 자신이 올라야 할 진짜 산의 아키텍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어느 10년 전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1. 정상의 문턱에서 (2016년 8월, 서울)


2016년 8월, 여름의 마지막 열기가 아스팔트를 달구던 서울. 김경훈은 자신의 삶이 가장 완벽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다고 믿었다. 10년 전, 미시간에서의 짧고 강렬했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학부 졸업을 단 한 학기 남겨둔 참이었다. 그의 심장은 불안이 아닌, 성스러운 확신으로 뛰고 있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면, 그는 곧장 신학교,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예수회(Jesuit)에 입회할 터였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명’이었다. 15살에 시력을 잃고, 3년이라는 시간을 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보냈던 그에게, 세상은 한때 거대한 어둠, 그 자체였다. 그 지옥 같은 고립 속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한 방의 강력한 주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손을 잡아주며, 그의 혼란스러운 사유를 끈질기게 들어주던 한 노신부의 ‘말 한마디’였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치유는 육체가 아닌 마음에서 일어나며,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의(心醫, 마음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예수회는 그가 가진 모든 학문적 배경(철학, 경영학, 경제학)과 영적 갈망을 하나로 묶어줄, 그가 오르기로 결심한 유일하고도 가장 높은 산이었다.


그날, 그는 지도신부의 호출을 받고 신학교의 작은 면담실로 향했다. 8월의 햇살이 오래된 나무 창틀을 통과해, 방 안의 먼지들을 금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낡은 책 냄새와 희미한 향 냄새가 세속의 시간과는 다른 밀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성껏 작성한 ‘라이프 스토리(Life Story, 자기 삶의 고백서)’가 드디어 입회를 허가받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입가에는 그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빛나는 특유의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도신부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그 눈빛은 한없이 맑고 깊었다. 그는 김경훈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신부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온기는 불안할 정도로 따뜻했다.

“경훈 형제.”

신부의 낮은 목소리가 고요한 방을 울렸다.

“네, 신부님.”

“주님께서… 형제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합격이다. 그는 확신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신부가 말을 이었다. “주님께서는 형제님이 이 성벽 안이 아니라, 저 바깥세상에서 당신의 사랑을 더 크게 실천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김경훈의 미소가 얼굴 위에서 얼어붙었다. 뇌가 이 문장의 의미를 처리하는 것을 거부했다.

“... 네? 그게… 무슨….”


“아직 젊으니까,” 신부가 그의 손을 더 꽉 잡으며, 더없이 인자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산(下山)하십시오.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 그곳을 조금 더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치열하게 부딪혀보십시오. 그리고… 그때도 이 뜻이 변치 않는다면, 다시 이 문을 두드리십시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청천벽력.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입회 허가’라는 정상의 깃발 대신, ‘하산 명령’이라는 이름의 절벽 아래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 왜... 왜입니까, 신부님? 제 라이프 스토리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제 서원이 부족했습니까?”


지도신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치 아주 먼 곳의 풍경을 보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훗날, 아주 훗날, 신부님은 김경훈에게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형제님의 눈에는 글에는… 한(恨)이 너무 많아 보였네. 세상을 치유하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그 열망이 형제님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어. 남을 구하기 전에, 형제님 자신의 구원이 먼저 필요해 보였네.’”


하지만 그날의 스물여섯 살 김경훈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성껏 쌓아 올린 산 전체가 단지 ‘한이 많아 보인다’는 모호한 이유 하나로 부정당했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억울함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신에게조차 거부당했다고 생각했다.



2. 고산(高山)의 공기


그해 마지막 학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기록되었다. 삶의 목적지, 그 거대한 ‘본질’이 사라진 채, 그저 졸업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실존’의 시간. 그는 마치 유령처럼 캠퍼스를 떠돌았다. 강의실의 소음도, 도서관의 책 냄새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그는 텅 빈 껍데기였다.


그렇게 그의 작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두 명의 남자가 그의 삶에, 마치 예고 없는 구조대처럼 등장했다. 둘 다 그가 신학교 시절 존경하고 따랐던, 그러나 지금은 각자의 이유로 ‘하산’한 형제님들이었다.


첫 번째 남자는 예로니모(Jeronimo)였다.

그는 김경훈처럼, 신학의 길을 걷다가 학문의 길로 방향을 튼, 명민하고도 현실적인 남자였다. 그는 신학교를 떠나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경훈아.” 어느 날,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넘쳤지만, 김경훈의 방황을 꿰뚫어 보는 듯한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너, 그렇게 방구석에서 썩어갈 거냐? 네가 학부 때 경영학이니 경제학이니 이것저것 주워 먹은 게 많다고 들었다. 마침 내가 교육 컨설팅 프로젝트 하나 맡은 게 있는데, ‘장애인 교육 컨설팅’ 섹션이 비어있어. 와서 네가 배운 걸로, 진짜 세상을 좀 바꿔보지 그래?”


그것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김경훈은 서울대 연구실의 임시 연구원으로 합류했다. 그곳은 그가 알던 신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산’이었다. 모든 것이 데이터와 효율성, 그리고 성과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장애 경험을, ‘정보 접근성’과 ‘교육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냉철한 분석틀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밤을 새워 보고서를 썼고, 치열한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그 거대한 ‘지식의 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음을 느꼈다. 그는 멀리 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여전히 공허했다.


두 번째 남자는 암브로시오(Ambrosio)였다.

그는 신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신앙과는 별개로, 집안의 막대한 부(富)로 유명했던 형제였다. 그 역시 일찌감치 하산하여, 가업을 잇는 연습으로 계열사 유통을 담당하고 있었다.

“경훈이 너 힘들다며.” 어느 날, 그가 김경훈을 자신의 한남동 저택으로 불렀다. “예로니모 그놈, 사람 부려먹는 데는 도가 튼 놈이야. 너 그러다 몸 상한다. 당분간 형님 집에 와서 지내. 방 많아.”


그렇게 그는 또 다른 종류의 산, ‘자본의 산’ 정상에 발을 들였다. 암브로시의 세계는 김경훈이 상상했던 그 어떤 곳과도 달랐다. 그는 ‘부자’를 본 것이 아니라, ‘부’ 그 자체의 아키텍처를 경험했다.


그의 방 창문으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장난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집의 공기는 돈으로 완벽하게 제어되는 적정 온도와 습도, 그리고 값비싼 원두와 희미한 가죽 냄새로 채워져 있었다. 그곳에는 ‘노동’의 소음이 없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용히, 그리고 완벽하게 처리되었다. 그가 15년 전 보았던 그 어떤 화려한 풍경보다도, 이 ‘아무렇지 않은 풍요’가 더 비현실적이었다. 암브로시오는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이 완벽한 시스템 안에서 편히 쉬며, 자신을 찾으라고만 했다.



3. 하산(下山), 그리고 새로운 산의 발견


2017년 겨울, 김경훈은 두 개의 가장 높은 산 정상에 동시에 서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지식의 산’과, 상위 0.1%의 부라는 ‘자본의 산’. 그는 그곳에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거대한 시스템의 논리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이 높은 산 위에서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고산병(Altitude Sickness)’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너무 옅고 차가웠다. 이곳은 그가 원했던 ‘심의(心醫)’로서의 삶, 즉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로니모의 세계는 ‘효율’을 숭배했고, 암브로시의 세계는 ‘성공’을 숭배했다. 그 어느 곳에도, 그가 병상에서 발견했던 ‘말 한마디의 치유’는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이 오를 산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했을 뿐, 정복할 마음도, 그럴 역량도 없었다. 그는 이 높은 곳에서 다른 산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내려가야 할, 저 아래의 작고 평범한 고향 땅을 보았다.


2018년, 그는 모든 것을 접었다. 그는 두 형제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서울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본질’이 서울에 있지 않음을 인정했다. 그는 다시 ‘하산’했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가 돌아온 곳은 그의 고향, 대구였다. 부모님이 계신 곳. 그가 15년의 시각적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그의 상처와 치유가 시작된 곳.


그는 한동안, 그저 걸었다. 수성못을 뛰고, 앞산 공원을 올랐다. 그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 무엇을 먹을까’라는 그 소소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는 거대한 산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동네 뒷산 같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산을 오르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 – 15년의 기억, 3년의 병원 생활, 5년의 특수학교 시절, 철학과 경제학, 그리고 두 형제가 보여준 높은 산의 경험 – 이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보 접근성’.


그것은 예로니모의 ‘시스템 효율성’과, 암브로시의 ‘최고의 경험’, 그리고 그가 꿈꿨던 ‘치유’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대구에서 자신의 모교가 아닌, 이 지역의 거점인 경북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원 연구원. 그것은 화려한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가 오르기에 가장 정직하고 확실한, 그만의 새로운 등반의 시작이었다.



4. 늦가을 오후, 또 다른 산


“... 그래서 말이야.”


차가운 금요일 오후, 김경훈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전화기 너머의 보보에게 이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정보 접근성’ 관련 국제 컨퍼런스에 자신의 논문이 채택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참이었다. 그것은 그가 지난 몇 년간 묵묵히 올라온, 작지만 의미 있는 봉우리였다.


“와….” 전화기 너머, 보보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언제나 그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단 한마디의 불필요한 위로 없이 그저 온전히 함께 감당해 주었다. “자기, 진짜… 엄청난 산맥을 넘어왔네. 완전 히말라야 8천 미터급인데.”


김경훈은 그녀의 유쾌한 과장에 환하게 웃었다. 그의 입가에는 모든 것을 통과해 온 자의 깊은 평온함과,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히말라야는 무슨. 그냥 동네 뒷산이지. 그런데 말이야.”

“응?”

“오늘 이 논문이 통과됐다는 메일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알아?”


“글쎄? ‘드디어 해냈다!’ 아니면 ‘이제 인센티브 받아서 보보 맛있는 거 사줘야지’?”


“아니.” 그가 웃음을 거두고, 존 듀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낮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산에 오르고 나니까… 저 너머에, 또 다른 산이 보이더라고. AI 윤리랑 접근성 문제. 와, 저건 진짜 험난해 보이는데… 언제 오르지?”


보보의 맑은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가득 채웠다.

“미쳤나 봐, 진짜. 당신은 정말… 존 듀이 할아버지 수제자 해도 되겠네.” 그녀가 반말로, 그러나 한없는 애정을 담아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위대한 등반가 양반. 일단 오늘은 하산 좀 하시지? 내가 저녁에, 당신이 정복한 그 ‘작은 산’을 축하해 줄, 아주 특별한 ‘보상’을 준비해 놨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에서 ‘특별한 보상’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챈 김경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전화기에 대고,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 아주 기대되는데. 당장 하산하지. 탱고, 가자!”



5. 주석: 등반의 아키텍처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이 긴 여정에 대한 마지막 주석을 음성으로 남겼다.



‘제목: 등반의 아키텍처, 혹은 하산의 미학.

존 듀이는 옳았다. 삶의 목적은 ‘정상’이 아니라, ‘다음 산을 보는 시선’이다.

10년 전, 나는 ‘사제’라는 이름의 단 하나의 에베레스트만 보았다. 그 산에서 쫓겨났을 때, 나는 내 존재의 이유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본질’에 대한 맹신이었다.

예로니모 형제는 ‘지식’의 산을, 암브로시오 형제는 ‘자본’의 산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높았지만, 공기가 희박했다. 나는 그들의 산이 아니라, 나의 산을 올라야 함을 깨달았다.

‘하산’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오를 수 없고, 오르고 싶지 않은 산을 인정하고, 내가 오를 수 있고, 올라야만 하는 나의 산을 찾아 다시 걷기 시작하는 가장 용기 있는 ‘실존’의 선택이다.

결론: 나는 오늘, ‘논문 통과’라는 이름의 작은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AI 윤리’라는 이름의 더 높고 험난한 다음 산을 보았다.

… 일단, 오늘은 하산이다. 보보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답고도 아찔한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 등반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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