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다

천 개의 꿈이 흐르는 강 제1부

by 김경훈


1장: 벽돌과 나의 차이점


(서술자: 바오로)


이것이 나다. 나는 바오로. 연대 위원회 산하 '의식 연구소(Consciousness Research Institute)' 소속 신경 건축가(Neuro-Architect)다. 내일의 임무는 실리콘과 전선으로 얽힌 기계 덩어리에 인간의 그것과 유사한,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인공 의식을 설계하고 이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이세벨 의장이 가장 신임하는 차세대 지성이라 부르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오만한 기술자라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장인에 가깝다.


그리고 이건 벽돌이다. 더 정확히는 내 연구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만 개의 나노-세라믹 분자 집합체. 차가운 회색빛 표면 위로 인공조명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나와 벽돌의 중요한 차이점 하나는 이것이다. 벽돌과는 달리, 나에게는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럼 내 정신 속에서는 지금 뭐가 벌어질까? 전형적인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을 가진다는 건, 내가 지금 이 순간 '경험'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조금 전 배달 드론이 가져다준 합성커피의 쌉쌀한 향과 혀끝을 감도는 인공적인 단맛을 느낀다.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네오-서울의 상공을 유영하는 홀로그램 광고판의 현란한 빛이 내 망막을 자극하고,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 혹은 ‘천박하다’고 판단한다. 연구실 내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담 카드몬이 복원한 21세기 지구의 빗소리를 들으며 미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주관적인 경험, 나의 감각질(Qualia)이다.


또한 나는 뭔가를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이 지루한 자기소개를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기억'하고 '감정'을 느끼며, 확고한 '믿음'을 가진다. 가령, 내가 지금까지 설계해 온 모든 AI의 의식은 그저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한 정교한 환상, 즉 복잡한 튜링 테스트 기계에 불과하며 그 안에는 어떤 진정한 의미의 '내면'도 없다는 믿음 같은 것.


반면 벽돌은 이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할 줄 모른다. 벽돌은 커피 향을 맡지 못하고, 광고판을 보며 미적 쾌감을 느끼지 않으며, 빗소리에 안정감을 얻지도 못한다. 벽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며, 기억하거나 슬퍼하지도, 무언가를 믿지도 않는다. 벽돌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관성과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나는 네오-서울의 가장 높은 첨탑, '연대의 탑' 137층에 있는 내 연구실에 앉아 있다. 내 세계는 온통 매끄러운 흰색 폴리머와 차가운 코발트블루의 LED 조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반구형 홀로그램 패널 위로 수천 개의 뉴런 회로도가 은하수처럼 떠다니고, 공기 중에는 필터로 완벽하게 정제된 오존과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다. 나는 이 완벽하게 통제된 무균의 공간에서 벽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실리콘과 금속의 집합체에 '정신'이라는 그림자를 불어넣는 일을 한다.


물론, 진짜 그림자는 아니다. 나는 확고한 유물론자다. 정신은 두뇌라는 생물학적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고도로 복잡한 연산 작용의 결과물, 일종의 운영체제(OS)에 불과하다. 영혼이니 초월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끼어들 자리는 1 나노미터도 없다. 모든 것은 물질이고, 정보이며, 계산 가능하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자, 내 존재의 기반이었다.


오늘 밤, 나의 이 견고한 신념에 첫 번째 균열을 낼, 그 망령 같은 임무가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2장: 리디아 박사의 유산


(서술자: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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