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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슈퍼볼(Super Bowl)’을 스포츠 경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이것은 일 년에 단 하루,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그 신화(Myth)를 재연(Reenactment)하는 가장 장엄하고도 광적인 세속적 미사(Mass)다. 30초에 90억 원짜리 광고는 이 종교에 바치는 비싼 헌금이며, 15억 개의 닭 날개는 제단에 오르는 풍성한 제물이다. 우리는 이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의식(Ritual)에 ‘참여’한다.


이 종교의 아키텍처는 완벽하다. ‘볼(Bowl, 그릇)’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제단(경기장) 안에서 300파운드가 넘는 거구의 병사(선수)들은 ‘땅따먹기’라는 이름의 신성한 전쟁(미식축구)을 치른다. 그들은 4번의 공격 기회 안에 10야드(약 9미터)의 영토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불사른다. 모든 용어는 ‘어택(Attack)’과 ‘블리츠(Blitz)’ 같은 군사 용어로 코딩되어 있으며, 그 목적은 오직 하나, 적의 영토를 점령하고 나의 영토를 사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가장 화려한 스펙터클로 부활한 현장이다.


그러나 모든 장엄한 서사의 기원은 당혹스러울 만큼 사소하다. 이 거대한 종교의 이름, ‘슈퍼볼’은 창시자의 딸이 가지고 놀던 ‘슈퍼 볼(Super Ball)’이라는 이름의 값싼 고무 탱탱볼 장난감에서 우연히 유래했다. 가장 거대한 신화가 가장 사소한 장난감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완벽한 시각적 스펙터클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 모든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볼 수 없다면 어떨까. 당신의 눈이 닫혀있다면, 당신에게 이 거대한 종교는 무엇으로 남는가.


당신은 화려한 제의(祭衣)의 색깔 대신, 그 제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Rule)’과 ‘시스템’에 집중하게 된다. 당신은 경기장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영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이 모든 광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공(Ball)이 아니라, 한 아이의 장난감에서 시작된, 기묘하고도 공허한 ‘그릇(Bowl)’이라는 것을.


이것은 그 거대한 그릇의 아키텍처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과 기억으로 해부한 한 남자에 대한, 그리고 그가 마침내 쟁취한 자신만의 가장 작은 영토에 대한 기록이다.



1. 흑백의 데이터


김경훈의 연구실은 늦겨울의 차가운 햇빛만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고요한 침묵의 공간이었다. 공기 중에는 잘 마른 종이 냄새와, 방금 내린 핸드 드립 커피의 짙은 산미가 섞여 있었다. 그는 ‘연구 모드’에 깊이 잠겨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을 쫓는 지적인 집중력만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그의 곁에는 이 고요함의 일부가 된 듯, 안내견 탱고가 엎드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미식축구 경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제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슈퍼볼의 ‘경제학적 데이터’를 듣고 있었다. 그의 아이폰 화면낭독기는 마치 랩을 하듯 빠른 속도로 어제의 천문학적인 숫자들을 그의 귓속으로 쏟아붓고 있었다.


[화면낭독기 음성]: “... 2024년 기준 30초 광고 단가는 700만 달러, 한화 약 9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5.8% 상승한 수치입니다. 전미가금류협회(NCC)는 ‘슈퍼 선데이’ 하루 동안 약 14억 5천만 개의 닭 날개가 소비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한편, 월스트리트의 비공식 속설인 ‘슈퍼볼 인덱스’에 따르면, 올해는 NFC 소속팀인 그린베이 패커스가 우승함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강세장이 예상됩니다. 1978년 이후 이 속설의 적중률은 놀랍게도…”


김경훈은 이 대목에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의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부드럽게 풀리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이제 냉철한 분석가가 아니라, 인간의 사랑스러운 비합리성을 발견한 유쾌한 관찰자의 그것이었다.


“탱고, 들었어?” 그가 발치의 탱고에게 속삭였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의 양반들이 1년 농사를 고작… 덩치 큰 남자들이 가죽 공 하나 들고 서로 깔아뭉개는 걸 보고 점을 친대. 이거야말로 완벽한 코미디 아닌가? 모 작가님이 알면 ‘그럴 시간에 주식 차트 하나 더 보겠다’고 혀를 찰 노릇이지.”


탱고가 꼬리로 바닥을 ‘툭’ 치며,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는 미시간 유학 시절 온몸으로 경험했던 그 거대한 스포츠를 떠올렸다. 그는 경영학도와 경제학도의 시선으로, 이 스포츠가 얼마나 완벽하게 계산된 ‘시스템’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영국 럭비라는 거친 원본(Source)을 가져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땅따먹기(영토 확장)’라는 국가적 신화를 덧입혔다. 4번의 공격 기회 안에 10야드 전진. 그것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즉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압축한 알고리즘 그 자체였다.


그는 또한, 이 스포츠가 원래 아이비리그 엘리트들의 지적 유희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거치며, 이 시스템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되었다. 장교들이 하던 경기를, 참호 속의 병사들이 배웠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들은 ‘어택(Attack)’과 ‘블리츠(Blitz)’ 같은 군사 용어로 뒤덮인 이 축소된 전쟁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들의 생존을, 그리고 통제력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제대 후, 그 격렬한 ‘접촉(Contact)’의 기억을, 전리품처럼 가지고 미국 전역의 평범한 고향으로 퍼뜨렸다.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정보 접근성’의 관점에서 이 현상을 바라보았다. 미식축구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보의 전파 및 대중화’ 사례일지도 몰랐다. 가장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의 정보(아이비리그)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매개체를 통해, 가장 광범위한 대중에게 확산되고,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아키텍처’로 자리 잡은 것.


“똑똑.”


그의 사유를 깨뜨린 것은 가벼운 노크 소리였다. 그가 초빙한, 스탠퍼드 출신의 젊은 방문교수 스티브였다. 그는 아직 잠이 덜 깬 핼쑥한 얼굴로, 전날 밤의 광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헤이 훈. 살아있었군.” 스티브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어제 ‘게임’은 제대로 봤어? 완전 미쳤었지.”

“봤다마다요, 스티브.” 김경훈이 평소의 유쾌한 ENFJ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광고비가 30초에 90억이라니. 1초에 3억짜리 드라마였죠. 그나저나 NFC가 이겼으니, 올해 스티브 당신 주식 계좌는 따뜻하겠네요. ‘슈퍼볼 인덱스’를 믿는다면 말이죠.”


스티브는 김경훈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커피 잔만 들어 올렸다.

“뭐? 아… 그 인덱스 말인가. 훈, 자네는 가끔 보면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단 말이야.


스티브가 떠나고, 연구실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김경훈의 마음은 더 이상 90억짜리 광고 데이터나 ‘글로 소득’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스티브의 마지막 말, ‘미국인 같다’는 그 한마디에, 자신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봉인해 두었던 가장 차갑고도 강렬했던 서랍을 열고 말았다.


그의 유학 시절. 보보도, 탱고도 없던 시절.

그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적자(赤字)’의 계절.



2. 그릇(The Bowl)의 한가운데


그는 10년 전, 11월의 미시간을 떠올렸다. 추수감사절 연휴와 블랙 프라이데이 그리고 그의 생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던 그 주. 캠퍼스는 마치 중성자탄이라도 떨어진 듯, 모든 인간 활동이 증발해 버렸다.


하지만 그가 떠올린 것은 그 ‘적자’의 계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보다 조금 이른,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미시간 대학교 앤 아버 캠퍼스. 그날은 라이벌 오하이오 주립대학과의 빅게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였던, 언제나 긍정적이고 소란스러운 마이클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거의 끌고 가다시피 했다.


“훈! 넌 이걸 봐야 해! 아니, ‘경험’해야 해! 이게 진짜 미국이야!”


김경훈은 이끌려가면서도 투덜거렸다. “이봐, 마이클. 나는 어차피 안 보여. 그 시끄러운 데 가서 뭐 하라고. 난 그냥 기숙사에서 팟캐스트나 들을래.”

“시끄럽게! 넌 눈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 넌 ‘느끼는’ 거잖아! 가자!”


그가 도착한 곳은 ‘더 빅 하우스(The Big House)’라는 이름부터 오만한 미시간 스타디움이었다. 그가 15살까지 보았던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거대했다. 하지만 그를 압도한 것은 건물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릇(Bowl)’이었다.

경기장의 움푹 파인 구조. 그는 마이클의 팔에 이끌려 관중석에 앉는 순간, 자신이 거대한 ‘그릇’의 일부가 되었음을 감각했다. 그리고 그 그릇 안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소리의 파도’가 담겨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경기 시작을 알리는 함성이 터져 나왔을 때, 김경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10만 개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그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었다. 소리가 콘크리트 스탠드를 타고 올라와 그의 발바닥을 때렸고, 그의 엉덩이를 진동시켰으며, 그의 가슴을 쿵쿵 울렸다. 그는 지금, 거대한 괴물의 심장부, 혹은 그 위장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15년의 시각적 기억을 더듬어, TV에서 보았던 푸른 잔디와 흰색 라인,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시각적 기억은 이 압도적인 청각적 현실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는 그곳에서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의 곁에서 마이클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봤어? 훈! 방금 봤어? 미친 태클이야! 맙소사! 저 녀석을 죽여버려야 해!”

마이클은 ‘스펙터클’을 보고 있었다. 그는 0.1초 만에 일어나는 폭력과 기술의 향연에 열광했다. 그는 ‘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경훈에게는 그 ‘쇼’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혼돈의 소음 속에 앉아, 마이클이 건네준, 딱딱하고 소금기 가득한 프레첼을 의미 없이 씹고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그릇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립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그가 이 혼돈을 견디기 위해,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꽂았다. 그가 듣던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경기장 라디오 중계였다.

“[... 오하이오, 3번째 다운에 5야드 남았습니다. 샷건 포메이션. 쿼터백, 스냅! 3단계 드롭백. 블리츠! 미시간의 라인배커, 7번이 뚫었습니다! 쌕(Sack)! 쌕! 8야드 손해! 4번째 다운입니다!]”


순간, 김경훈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는 깨달았다. 그는 마이클과 같은 것을 볼 필요가 없었다. 마이클이 ‘스펙터클(쇼)’을 보고 있다면, 그는 ‘아키텍처(시스템)’를 읽으면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15년의 시각적 기억과 경영학, 경제학, 철학의 지식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100야드의 영토. 10야드 단위의 전진. 4번의 기회. 이것은 혼돈이 아니었다. 이것은 가장 엄격한 ‘규칙’과 ‘논리’의 세계였다.


그는 더 이상 소음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중계라는 데이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그들의 전략과 시스템을 머릿S속에 그렸다.

“마이클.”

“왜, 훈! 방금 봤어? 우리 수비가…”

“아니.” 그가 마이클의 말을 잘랐다. 그의 입가에, 이 시스템을 해독해 낸 자의 유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쌕(Sack)으로 8야드 밀려났잖아. 저쪽은 이제 4번째 다운에 13야드 남았어. 펀트(Punt)할 수밖에 없겠네.”


마이클의 입이 벌어졌다. “... 뭐? 너, 너 어떻게 알았어?”

김경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가방에서 체리맛 트위즐러 한 봉지를 꺼냈다. 그는 그 인공적인 체리 향이 나는 질긴 고무 같은 과자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나는 ‘시스템’을 본다고. 당신들이 보는 건 그냥 싸움 구경이고. 자, 먹어. 이 붉고 질긴 플라스틱 맛, 이게 바로 미국 대학생의 맛이지.”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 거대한 그릇의 아키텍처를, 그 안에 담긴 영토 전쟁의 문법을, 그들보다 더 깊이 이해한 유일한 관찰자였다. 그는 10만 명의 함성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체리맛 트위즐러를 씹으며, 이 거대한 미국의 신화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3. 버팔로 윙의 변증법


그날 저녁, 대구의 아파트.

김경훈은 보보에게 그날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가 어떻게 ‘소음’ 속에서 ‘질서’를 찾아냈는지, 어떻게 ‘스펙터클’ 대신 ‘아키텍처’를 읽어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깨달음의 순간에, 자신의 입안에는 지독하게 맛없던 프레첼과 인공 체리 향의 트위즐러가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보보는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서 자기야.” 그녀가 반말로, 그러나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은 10년 전에, 그 10만 명의 함성 소리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트위즐러를 씹으면서… 그렇게 혼자 어른이 되었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가 겪었을 고독에 대한 깊은 연민이 담겨 있었다. 김경훈은 그녀의 공감에, 그 어떤 논리적 분석보다도 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은 미시간의 그 어떤 겨울보다도 따뜻했다.


“그런데,” 보보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 다시 장난기가 돌아왔다. “당신이 놓친 게 하나 있어, 김 박사. 당신이 분석한 그 거대한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부품을 빼먹었잖아.”

“뭔데?”


“제물! 버팔로 윙 말이야. 그게 빠지면 슈퍼볼은 그냥 공놀이지, 종교가 아니라고.”

그녀는 주방으로 달려가더니, 에어프라이어에서 방금 막 조리가 끝난, 붉고 매콤한 닭 날개 한 접시를 가져왔다.

“미안하지만 15억 개는 준비 못 했고, 딱 15조각이야.”


김경훈은 닭 날개의 매콤하고 시큼한 냄새에 환하게 웃었다.

“와, 이것까지 준비했어? 대단한데. 그런데 자기도 이거 알았어? 이 버팔로 윙, 원래 버려지던 닭 날개를, 실수로 잘못 배송받아서 탄생한 음식이래. 앵커 바에서 공짜 안주로 내놓은 게 대박 난 거라고.”


“진짜?” 보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슈퍼볼의 이름(슈퍼 볼 장난감)도 우연이고, 제물(버팔로 윙)도 실수라고? 맙소사. 미국이라는 나라의 아키텍처는 온통 그런 식이야?”


“바로 그거야!” 김경훈의 목소리에 다시 지적인 흥분이 실렸다. “이건 완벽한 헤겔의 변증법이야! ‘닭 날개’는 원래 버려지는 무가치한 존재, ‘정(These)’. 그런데 ‘잘못된 배송’이라는 모순, 즉 ‘반(Anti-These)’이 발생했지. 보통 사람은 그걸 그냥 버렸을 거야. 모순을 제거했겠지. 하지만 ‘앵커 바’의 주인은 그 모순을 ‘지양(Aufheben)’했어. 닭 날개를 버리지 않고(보존), 새로운 가치(튀김과 소스)를 부여해서 ‘버팔로 윙’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합(Synthese)’을 만들어낸 거야!”


그는 신이 나서 닭 날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합’이 ‘버팔로 빌스’라는 팀의 성공(또 다른 우연)과 만나, 전국적인 신화가 되었어. 와… 이거, 내 연구보다 더 극적인데?”


보보는 그의 현란한 이론 전개에, 그저 웃으며 맥주 캔을 따서 건넸다.

“알았어, 알았어, 헤겔 박사님. 그럼 이것도 먹어봐.”

그녀가 또 다른 봉지를 풀었다. 고소한 마늘과 간장 냄새. 대구의 명물, ‘깐풍기’였다.

“이건 내 방식의 ‘합’이야. 미국의 ‘정’(버팔로 윙)과, 대구의 ‘반’(깐풍기)이 만나, ‘보보의 야식’이라는 완벽한 진테제가 탄생했지. 어때, 이것도 철학적이지 않아?”


김경훈은 그녀의 재치에, 그리고 깐풍기의 완벽한 냄새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보보가 건넨 깐풍기 조각을 받아먹었다. 바삭한 튀김옷과, 짭짤하고 달콤한 소스, 알싸한 마늘 향.


그 순간, 그의 10년 묵은 미시간의 기억이 그 차갑고 황량했던 ‘적자’의 데이터가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하고 맛있는 ‘흑자’의 경험으로 덮어씌워지는 것을 느꼈다. 프레첼과 트위즐러의 인공적인 맛은 사라지고, 깐풍기와 버팔로 윙의 생생한 맛이 그 자리를 채웠다.



5. 주석: 내가 선 영토


그는 보보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은 그가 겪었던 그 어떤 겨울보다도 따뜻했다. 그는 더 이상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해 좌절하던 그 텅 빈 기숙사의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영토를 찾았다. 그것은 100야드의 경기장이 아니라, 그의 곁, 이 작은 거실이었다.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이 복잡하고도 맛있는 사유를 음성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목: 영토의 아키텍처, 혹은 버팔로 윙의 변증법.

슈퍼볼은 미국이라는 신화의 시스템이다. 그것은 ‘영토(Territory)’를 쟁취하는 전쟁의 은유이며, ‘흑자(Capital)’를 향한 자본주의의 욕망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연’과 ‘실수’가 존재한다. ‘슈퍼 볼’ 장난감에서 따온 이름, 실수로 배달된 ‘닭 날개’. 이 거대한 아키텍처는 합리가 아닌 우연의 토대 위에 서 있다.

나는 10년 전, 그 시스템의 화려함 속에서 나만의 ‘영토’에 접근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나는 그날,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깨달았다. 버팔로 윙이 ‘버려진 닭 날개’라는 ‘반(反)’을 끌어안아 새로운 ‘합(合)’이 되었듯이 나의 ‘고립’이라는 고통스러운 ‘반(反)’ 역시, 오늘 보보와의 ‘관계’라는 이름의 새로운 ‘합(合)’으로 승화되었다.

결론: 우리가 쟁취해야 할 영토는 100야드의 경기장 위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식탁 위 깐풍기 한 접시와, 내 곁의 따뜻한 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찾은 유일하고도 완벽한, 나의 영토다.’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보보가 그의 입술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며 속삭였다. “그래서 철학자 양반. 주식은 살 거야, 말 거야? NFC가 이겼다며.”

김경훈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아니. 나는 내 ‘보보 인덱스’에만 투자할래. 그게 훨씬 더 확실하거든.”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늦겨울 대구의 따뜻한 아파트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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