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견고한 아키텍처를 숭배한다.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성채(城砦)를 쌓아 올린다. 우리는 이성, 논리, 도덕, 그리고 ‘공로(Merit)’라는 이름의 반짝이는 벽돌로,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깨끗하고 질서 정연한 ‘본질’을 구축한다. 우리는 이 성채가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성채의 주인이자 동시에 가장 교활한 배신자라는 것을. 우리의 ‘정신’이 아무리 숭고한 아키텍처를 설계하더라도, 우리의 ‘몸’은 그 모든 설계를 비웃는 예측 불가능하고 무법적인 자연 그 자체다. 우리는 ‘이성적 존재’라는 이름의 깨끗한 드레스 셔츠를 입고 있지만, 그 셔츠 아래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채기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꼬르륵 소리와, 그리고… ‘방귀’라는 지극히 부적절하고 통제 불가능한 ‘실존’의 압력이 부글거리고 있다.
몸은 시스템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몸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고 숨기려 하는 이 ‘부적절함’의 아키텍처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부조리한 생물학적 농담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을 분류하는 가장 정직한 기준일 수 있다는 어느 늦가을 밤의 지독한 ‘가스’ 고찰이다.
1. 경계 너머의 도시, 그리고 ‘잡탕’의 만남
서울 종로의 한 뒷골목. 김경훈은 21세기의 화려한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먼, 1980년대의 시간 속에 박제된 듯한 어느 낡은 ‘파전’ 집의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섰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밖의 차가운 밤공기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후끈하고도 농밀한 ‘인간’의 냄새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그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어제 서울에서 열린 ‘디지털 포용성 포럼’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오늘은 대구로 내려가기 전, 그의 세계관에 가장 강력한 ‘노이즈(Noise)’를 선사하는 인물, 마봉 드 포레 작가를 만나기로 한 참이었다.
그의 예민한 후각이 이 공간의 아키텍처를 순식간에 해부했다. 시큼하게 발효된 막걸리 냄새, 파와 밀가루가 기름에 튀겨지는 고소하고도 자극적인 냄새,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땀과 젖은 외투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뚫고 들어오는 화장실의 낡은 방향제 냄새.
그의 귀는 마치 수백 개의 다른 라디오 채널이 동시에 켜진 듯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와, 빗소리처럼 쏟아지는 파전 부치는 소리, 그리고 가게 구석 TV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트로트 가락을 감지했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비위생적인’ 감각의 폭격에 심기가 불편한 듯, 안내견 탱고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그의 다리에 바싹 붙어 있었다.
“아, 김 작가! 여기요, 여기!”
가게 가장 구석진, 가장 어두운 테이블에서 그녀 특유의 바삭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봉 드 포레였다. 그녀는 가죽 재킷에 낡은 밴드 티셔츠 차림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이미 막걸리 주전자와 반쯤 비워진 해물 파전 접시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냉철한 빛을 뿜고 있었다.
“작가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런 누추한 곳에, 이런 고귀한 분이 계실 줄이야.”
김경훈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특유의 익살스러운,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닥쳐요, 박사님.” 그녀가 막걸리 잔을 채우며 받아쳤다. “당신 같은 ‘시스템’ 중독자한테는 이런 ‘카오스’가 약이야. 탱고, 넌 저기 엎드려 있어. 여기 네가 먹을 건 없으니까.”
탱고는 그 말에, ‘알고 있거든’ 하는 듯한 한숨을(그 한숨에는 어쩌면, 파전의 유황 성분에 반응한 약간의 가스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쉬며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김경훈이 그녀가 따라준 막걸리 잔을 들며 물었다. “오늘 이 귀한 몸을, 이 ‘언더커버’의 현장으로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또 무슨 해괴한 거라도 발견하셨어요?”
“해괴한 거.” 마봉 드 포레가 씩 웃었다. “맞아요. 해괴하고, 근본적이죠. 내가 어제, 인류를 분류하는 새로운 기준을 발견했거든. 아니, ‘발명’했지. 내 브런치 새 칼럼인데, 당신이라면 이걸 ‘철학적’으로 분석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는 끈적한 테이블 위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쓱 밀었다.
“자, ‘들어요’. 이게 나의 새로운 ‘에피스테메(Foucault, 027)’야.”
김경훈은 웃으며 자신의 아이폰을 꺼냈다. 그녀가 링크를 전송했고, 그는 이어폰을 낀 채, 화면낭독기의 목소리로 그녀의 ‘새로운 분류표’를 듣기 시작했다.
[화면낭독기 음성]: “사람별 방귀 뀌는 유형.
영특한 사람: 재채기를 하며 방귀 뀌는 사람.
소심한 사람: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 펄쩍 뛰는 사람.
겁쟁이: 방귀를 나눠서 뀌는 사람.
…(중략)…
불행한 사람: 방귀 뀌려다가 똥 싼 사람.
멍청한 사람: 몇 시간 동안 방귀 참는 사람.
…(중략)…
전략가: 큰 웃음소리로 방귀소리를 감추는 사람.”
2. ‘부적절함’의 철학적 해부
“푸흡… 크, 큭… 으하하하!”
김경훈은 결국 참지 못하고, KTX 안에서 보보의 흉을 보던 그날처럼,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카페의 소음이 워낙 컸기에, 그의 웃음소리는 다행히도 다른 테이블의 소음에 묻혔다.
“작가님, 이거… 이거 정말….” 그가 눈물까지 닦아내며 말했다. “이거 ‘미쳤는데요’? 이거야말로 ‘혁신’입니다! 기존의 모든 분류표를 ‘탈구축(Derrida, 003)’해버렸잖아요!”
그의 얼굴은 ‘차박사’ 시절 소니 TV를 분해하려던 그 일곱 살 아이처럼, 순수한 지적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유머가 아니에요, 작가님. 이건… 이건 베이컨의 ‘아이돌(Idols, 015)’을 완벽하게 조롱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동안 ‘지성’, ‘계급’, ‘성격’ 같은 고상한 ‘극장의 우상’으로 사람을 분류하려 했죠. 하지만 작가님은 그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고, ‘방귀’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지각의 다발(Hume, 016)’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버렸어요!”
“오, 진정해요, 박사님.” 마봉 드 포레가 담배라도 하나 물 기세로 그를 바라봤다. “너무 오버하는데.”
“오버가 아닙니다!” 김경훈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미 ‘연구 모드’로 폭주하고 있었다. “이것 봐요! ‘영특한 사람: 재채기를 하며 방귀 뀌는 사람.’ 이건 ‘쓸모없는 것(노이즈)을 중시하라(Serres, 007)’는 철학의 실천이에요! 재채기라는 ‘노이즈’로, 방귀라는 또 다른 ‘노이즈’를 덮어버리다니! 그리고 ‘전략가: 큰 웃음소리로 방귀소리를 감추는 사람.’ 이건 ‘유능제강(柔能制剛)’ 아닙니까! 강한 소리(방귀)를, 더 강한 소리(웃음)로 제압한다! 완벽한 유도의 원리라고요!”
그는 막걸리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이 부분! ‘불행한 사람: 방귀 뀌려다가 똥 싼 사람.’ 이건… 이건 거의 키르케고르(065)의 ‘죽음이 절망보다 낫다’ 수준의 실존적 비극이에요! 그는 그저 작은 ‘부적절함’을 배출하려 했을 뿐인데, 자신의 ‘존엄’ 전체를 배설해 버린 거잖아요! 그리고 ‘멍청한 사람: 몇 시간 동안 방귀 참는 사람.’ 이건 한나 아렌트(082)가 말한 ‘악의 평범함’의 완벽한 자기 적용이죠! 사회적 시선이라는 ‘규칙’에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하다가 스스로의 내장을 파괴하는 ‘거대한 악’을 저지른 겁니다!”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파전 한 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 저속한 리스트와, 그가 평생 연마해 온 100가지 철학적 도구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아키텍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3. ‘나’는 어떤 유형인가
마봉 드 포레는 자신의 ‘아무 말’이 이 시각장애인 철학자에 의해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축’되는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 남자의 뇌 구조가 그녀가 인터뷰했던 그 어떤 괴짜 록스타보다도 더 기괴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담배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전 조각을 들어 올리며, 그의 광기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그만 떠들고, 김 작가. 당신은 뭔데요?”
“... 네?”
“이 리스트 중에, 당신은 어떤 유형이냐고. 어디 한번 말해봐요.”
김경훈의 얼굴에 걸려 있던 유쾌한 흥분이 그 순간,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버렸다.
가게 안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어떤 유형인가.
‘소심한 사람: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 펄쩍 뛰는 사람.’
아니다. 그는 소심하지 않았다. 그는 3년간의 공백 끝에,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다.
‘겁쟁이: 방귀를 나눠서 뀌는 사람.’
아니다. 그는 J형 인간으로서 ‘플랜 B’는 세울지언정, 이런 생리 현상까지 나눠서 처리할 만큼 겁쟁이는 아니었다.
‘불안한 사람: 방귀를 뀌다가 중간에 멈추는 사람.’
... 이건, 조금 찔렸다. 그는 자신의 과거, 그 지독했던 공황과 불안의 트라우마를 떠올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려 애썼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배출마저도 중간에 멈추려 드는 불안한 통제광일지도.
‘반사회적인 사람: 양해를 구한 뒤 혼자만의 장소에 가서 뀌는 사람.’
이것도 그럴듯했다. 그는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자신의 경계가 침범당하는 것(안내견을 만지는 행위 등)에 분노했다. 그는 예의 바른 ‘반사회주의자’ 일 수 있었다.
그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마봉 드 포레가 그의 생각을 꿰뚫었다.
“왜, 답이 안 나와요? 그럼 혹시… ‘부정직한 사람: 자기가 뀌고 남한테 뒤집어 씌우는 사람’? 지금 탱고한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어요?”
그녀의 악의적인 농담에, 탱고가 테이블 밑에서 ‘크르릉’ 하고, 마봉 드 포레의 목소리 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경멸의 소리를 냈다.
그 순간, 김경훈의 얼굴에, 그만이 지을 수 있는 슬픔과 유쾌함이 뒤섞인 ‘블랙 코미디’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15살에 깨달았던, ‘죽음’을 직시한 자의 자유로움으로, 이 부조리한 질문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아니요, 작가님.”
그가 말했다.
“작가님이 리스트에서 하나 빼먹었네요. 가장 중요한 유형을.”
“뭐죠?”
“‘시각장애인(The Blind Man)’.”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마봉 드 포레만이 들을 수 있도록 낮고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는 말이죠. ‘뻔뻔한 사람(The Shameless)’의 상위 호환 버전입니다. 우리는 방귀를 크게 뀌고도, 자지러지게 웃을 필요가 없어요. 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는 자신의 두 눈을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나는 당신들이 지금, 내 방귀 소리를 듣고 얼마나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코를 틀어막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죠. 내 세계는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나는 이 완벽한 ‘정보의 차단’ 속에서 에피쿠로스(091)가 말한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이 혼잡하지 않은’ 완벽한 평정심의 상태로, 당신들을 향해 그저 천사처럼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어때요, 이보다 더 완벽한 ‘전략가’가 있을까요?”
4. ‘귀여운 사람’의 부재
마봉 드 포레는 자신의 저속한 농담이 이토록 지독하고도 처절한 ‘블랙 코미디’ 철학으로 되돌아오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이토록 날카로운 ‘무기’이자 ‘방패’로 사용하는지, 그 아키텍처에 감탄했다. 그녀는 결국, 막걸리 잔을 들어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 젠장, 김 작가. 당신한테는 못 당하겠네. 당신이 이겼소. 그 ‘아타락시아’를 위해, 건배합시다.”
그들은 유쾌하게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김경훈의 머릿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 ‘부적절함의 아키텍처’가 단순히 생리 현상에 대한 농담이 아니라, 사회가 자신과 같은 ‘예외적 존재’들을 다루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가 ‘장애’라는 부적절함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
어떤 이는 ‘소심한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펄쩍 뛰고, 어떤 이는 ‘시대파악을 못하는 사람’처럼 “장애인이 왜 밖에 나와?”라고 투덜대며, 어떤 이는 ‘부정직한 사람’처럼 그 존재를 애써 못 본 척한다. 그리고 대다수는 ‘반사회적인 사람’처럼, “미안하지만, 당신은 저기 분리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로 가주세요”라며, 예의 바르게 격리시킨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 사회의 견고한 ‘규칙’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거대한 ‘방귀’와도 같았다.
그는 문득, 이 살벌한 리스트의 한 줄을 떠올렸다.
‘귀여운 사람: 남의 방귀 냄새를 맡고 뭘 먹었는지 맞히는 사람.’
그는 웃었다. 그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부적절함’을, 혐오나 회피가 아닌, ‘호기심’과 ‘사랑’으로 기꺼이 맡아주는 단 한 사람.
5. 주석: 부적절함의 아키텍처
그날 밤, 대구로 돌아오는 마지막 KTX 안. 그는 피곤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기묘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이 지독하고도 유쾌했던 사유에 대한 마지막 주석을 음성으로 남겼다. 그의 곁에는 파전과 막걸리 냄새에 지친 탱고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제목: 부적절함의 아키텍처, 혹은 ‘똥 싼 자’를 위한 변론.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성채를 짓는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그 성채를 배신한다. 마봉 드 포레의 리스트는 인간이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분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극히 정직한 ‘야생의 사고(069)’다.
사회는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판옵티콘(020)’을 세우고, ‘방귀(장애, 질병, 가난, 소수자)’와 같은 모든 ‘부적절함’을 감시하고 격리하려 한다.
우리는 모두, ‘몇 시간 동안 방귀를 참는 멍청한 사람’이 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다 결국, ‘방귀 뀌려다 똥 싸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결론: ‘극복’이나 ‘숨김’은 답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전략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부적절함’을 감출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나의 가장 강력한 ‘농담’으로 삼는 것. 나의 장애를, 나의 트라우마를, 기꺼이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것.
…그리고, 나의 이 지독한 냄새(존재)를 맡고도, ‘뭘 먹었는지 맞혀보겠다’며 웃어주는 ‘귀여운 사람’ 단 하나만 있다면.
보보. 그녀는 언제나, 나의 이 부조리한 ‘실존’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본질’로 기꺼이 껴안아준다. 그녀야말로, 내 삶의 유일한 ‘해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