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책(散策)이라는 행위를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것이라 착각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도시의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자신만의 리듬으로 사유하고 호흡하는 고독하고도 자유로운 행위여야 한다. 그러나 나의 파트너, 안내견 탱고의 하네스(harness)를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익명의 시민 1이 아니다. 나의 이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는 순식간에 공공의 퍼포먼스가 되고, 교육의 현장이 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긴장의 연속이 된다.
‘접근성’을 위한 나의 가장 완벽한 파트너인 탱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치 않는 수많은 ‘접근’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된다. 사람들은 이 살아있는 보조기구를 ‘기능’으로 인식하기보다, ‘귀여운 볼거리’로 먼저 대상화한다. 그들은 ‘만지지 마세요’라는 규칙은 알지만, ‘말 걸지 마세요’라는 예절은 모르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를 그 규칙의 예외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경계’에 대한 윤리의 문제다. 한 개인의 독립적인 이동권이라는 ‘실존’이 타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아키텍처에 의해 어떻게 감시당하고, 방해받고, 때로는 위협받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사한 산책’을 꿈꾸는 어느 늦가을 하루의 소묘(素描)다.
1. ‘귀여워’라는 이름의 소음
대구 수성못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계절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피어난 국화의 짙은 향기가 마른 흙냄새와 물비린내에 섞여 김경훈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인 경북대학교 캠퍼스를 벗어나, 이 거대한 도시의 허파 속을 걷는 것을 즐겼다. 그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또 다른 눈이자 발인, 골든 레트리버 안내견 탱고가 일정한 속도로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는 15살까지 보았던 세상의 모든 색채를 기억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기억 속 데이터를 불러와 현재의 감각 정보 위에 겹치고 있었다. 보보가 아침에 말해준 “오늘 하늘은 미친 듯이 파랗다”는 정보, 햇살이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감촉(그가 ‘딸의 볕’이라 부르는), 그리고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우레탄 트랙의 미세한 탄성.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그의 머릿속에는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가장 완벽하고 생생한 11월의 풍경이 렌더링 되고 있었다. 그는 이 순간, 완벽하게 평화로웠다.
“어머! 쟤 좀 봐! 끄응, 귀여워!”
그의 평화는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김경훈의 미소가 옅어지지는 않았지만,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군. 1라운드.
“사진 찍어도 돼요?”
김경훈은 질문의 주체가 자신인지, 아니면 탱고인지 헷갈렸지만, 일단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탱고는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아~ 일하는 중이구나. 어머, 기특해라. 일도 하고.”
그는 이 대화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생각했다. ‘일하는 중’이라는 말은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데, 상대는 그것을 ‘칭찬할 만한 퍼포먼스’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미 대화에 개입함으로써 탱고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는 사실을, 그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름이 탱고예요? 어머, 이름도 귀여워. 탱고야!”
김경훈은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그는 가끔, 탱고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귀여워’나 ‘예쁘다’로 착각하고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그는 모 작가의 유쾌한 문체를 빌려, 언젠가 이 주제로 칼럼을 써볼까 생각했다. <내 개의 이름은 ‘귀여워’가 아니다> 혹은 <‘만지지 마세요’의 사회학>. 꽤 잘 팔릴 것 같았다.
그의 손에 쥔 하네스를 통해, 탱고의 미세한 동요가 전해져 왔다. 녀석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다, 이내 ‘일하는 중’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떠올리고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녀석의 이 짧은 갈등과 프로페셔널한 복귀. 김경훈은 이 훌륭한 파트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2. ‘교육적’ 무례함
그들이 분수대 광장을 지날 때쯤, 두 번째 관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였다.
“엄마! 강아지! 엄청 크다!” 아이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쉿! 아들, 저 강아지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야. 저분, 아저씨 눈이 불편하셔서 도와드리는 ‘안내견’이야. 저 하네스 입고 있을 땐, 우리를 위해 일하는 중이니까, 눈으로만 예뻐해 줘야 해. 알았지? 만지거나 부르면 절대 안 돼.”
김경훈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바로 저거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이만큼 성숙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 곁을 지나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고, 착하다. 이름이 탱고구나.”
방금 전까지 아들에게 엄숙하게 ‘규칙’을 설파하던 바로 그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몸을 낮춰, 탱고와 눈을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김경훈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것은 단순한 이중성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늘 마주하는 가장 기묘하고도 완벽한 ‘인식론적 무지’였다. 그녀의 머릿속 아키텍처에서 ‘규칙’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Law)이 아니라, 타인(자신의 아들)에게만 적용되는 권고(Recommendation)에 불과했다. 그녀 자신은 그 규칙을 인지하고 가르칠 수 있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는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내가 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저 여성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지금, ‘나는 너(아들)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시 규칙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저기, 어머님.” 김경훈이 결국, 최대한 유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아드님께 하신 말씀,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칙이 어머님께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혹시… 잊으셨나요?”
여자의 말소리가 뚝 끊겼다. 그녀가 당황한 듯 급격히 고개를 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 그게… 아니, 저는 그냥, 기특해서….”
“고맙습니다.” 김경훈이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탱고는 지금, 칭찬을 들으면 월급이 오르는 직장인이 아니라서요.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저와 탱고 모두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아드님께 보여주신 그 멋진 모습을, 계속 유지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멋쩍게 웃는 남편의 사과를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 작은 승리가 씁쓸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산책하고 싶었을 뿐,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면박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3. 기억 속의 테러
그의 팔짱을 끼고 있던 보보가 그날 저녁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혀를 찼다.
“와, 그 아줌마 진짜 대단하다. ‘내로남불’을 그렇게 실시간으로 시전 한다고? 철학이 없네, 철학이.”
그들은 김경훈의 아파트 거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탱고는 하네스를 벗어던진 채, 거실 바닥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낡은 공룡 인형을 물어뜯으며, ‘본연의 개’로 돌아가 있었다.
“그 정도는 약과야, 자기야.”
김경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아카이브에서 가장 불쾌했던 기억 중 하나를 꺼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서늘한 시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작년 봄, 당신이랑 수성못에서 산책할 때 기억나? 그 목줄 풀린 시바견.”
보보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생각만 해도 열받네.”
그날, 그들은 평화롭게 호수 주변을 걷고 있었다. 그때, 저편에서 목줄이 풀린 개 한 마리가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짖으며 달려왔다. 김경훈은 그 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그의 세계에서 그 소리는 ‘경고’가 아니라 ‘공격’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었다.
“탱고, 엎드려. 기다려.”
그의 손에 쥔 하네스를 통해, 탱고의 온몸이 전투태세로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훈련된 안내견은 반격하지 않았다. 그저 주인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그때, 그 개가 탱고의 목덜미를 물기 위해 달려들었다. 모든 것이 1초 만에 일어났다. 김경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곁에 있던 보보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을 방패처럼 휘두르며, 개와 탱고 사이를 막아섰다.
“안 돼! 저리 가!”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 으르렁거리는 개소리, 그리고 탱고가 고통스럽게 ‘깽’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 김경훈의 세계는 순식간에 공포와 혼돈으로 변했다. 그는 보이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력감이 그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소동이 끝난 것은 저 멀리서 견주로 보이는 여자가 천천히 걸어온 뒤였다.
“어머, 콩이야! 너 왜 그랬어!”
보보가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개 목줄을 이렇게 풀어놓으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안내견이 다칠 뻔했어요!”
그러자 그 견주가 내뱉은 말은 김경훈의 뇌리에 화상처럼 새겨졌다.
“아니, 뭘 그렇게 화를 내세요? 개들끼리 좀 그럴 수도 있지. 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김경훈은 그때를 회상하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가 그 문장을 읊조렸다. “나는 그 말이 그날 내가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도 폭력적이었어.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견주로서의 책임’이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는 게 아니었어. 그녀는 그저, 자기 개가 다른 개와 장난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 서 있었지.”
그는 보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때 사제가 되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던 자의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에, 탱고는 내 눈과 다리를 대신하는 나의 ‘신체 일부’이자 ‘생명’이 아니었던 거야. 그저 ‘또 다른 개’였을 뿐이지. 그녀는 ‘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며 당신에게 칼을 휘둘렀다면, 그게 변명이 될까? 그녀는 탱고를, 그리고 탱고와 연결된 나를, 동등한 ‘인간’의 영역으로 보지 않은 거야.”
보보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때 당신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알아.” 그녀가 반말로, 그러나 누구보다 깊은 공감으로 말했다. “나도 무서웠어. 그 개가 당신이나 탱고를 무는 줄 알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개 주인을 물어버리고 싶더라니까.”
그녀의 엉뚱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에, 김경훈은 비로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연구 모드’가 해제되고, 다시 ‘인간’ 김경훈으로 돌아왔다.
“고마웠어, 그때. 당신이 없었다면… 탱고는 정말 크게 다쳤을 거야.”
“됐어.” 보보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게 우리 ‘파트너’의 존재 이유잖아. 당신이 탱고를 지키고, 내가 당신을 지키고, 그리고 탱고가 우리 둘 다를 지키고. 완벽한 아키텍처네, 뭐.”
4. 침묵이라는 이름의 존중
“그래서 말이야,” 김경훈이 말했다. “요즘 내가 산책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 줄 알아?”
“글쎄. 탱고가 똥 잘 쌀 때?” 짓궂은 그녀의 대답이었다.
“아니.” 그가 환하게 웃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귀엽다’는 소리도, ‘만져봐도 되냐’는 질문도, ‘안녕 탱고야’라는 그 다정한 방해도, 심지어 ‘만지지 마세요’라고 가르치는 그 훌륭한 부모도 없이 그냥… 모두가 우리를 평범한 행인 1로 취급해 줄 때. 탱고와 내가 오직 우리 둘의 리듬에만 집중하며, 이 도시의 소리와 냄새 속을 조용히 걸어갈 수 있을 때. 그 ‘무사함’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고 사치야.”
그는 어제저녁의 산책을 떠올렸다. 해가 진 후, 조금은 쌀쌀했지만, 신기할 정도로 아무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의 길을 갔고, 그와 탱고도 그저 자신들의 길을 갔다. 그는 그 평범한 30분의 산책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진정한 ‘배리어 프리’란, 거창한 기술이나 ‘공감 시뮬레이션’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저, 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 귀엽다는 이유로 타인의 ‘신체(안내견)’에 동의 없이 손대지 않고,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일하는 존재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건드리지 않음(Do Not Touch)’.”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혼란스러운 공공장소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존중의 출발점 아닐까. 우리는 그걸 아직도 배우는 중인 것 같아. 이 사회의 ‘존중’에 대한 정답률은 안타깝게도 아직 너무 낮아.”
5. 주석: 시선의 아키텍처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이 길고 복잡했던 사유를 음성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목: 시선(視線)의 아키텍처.
안내견과의 산책은 역설이다. ‘독립’을 위한 도구가 오히려 타인의 ‘개입’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다.
이 시스템의 근본적인 버그는 ‘대상화’다. 사람들은 탱고를 나의 ‘파트너(Partner)’나 ‘신체의 일부(Extension)’로 보지 않고, ‘구경거리(Spectacle)’ 혹은 ‘공공재(Public Good)’로 소비한다.
‘귀엽다’는 감탄은 감성이지만, 그것을 허락 없이 표현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 동의 없는 촬영은 명백한 권리 침해다. 그들은 나의 ‘눈’을 찍고 있는 것과 같다.
견주의 무책임(목줄 풀린 개)은 ‘관객으로서의 반응’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자신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일어난 일’로만 본다.
결론: 진정한 정보 접근성이란, 단순히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경계를 인정하고, 그 안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존중의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일이다. 우리가 아직 배우지 못한 가장 어려운 공공의식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나쳐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무사함’이 되어버린 이 현실은 실로 씁쓸하다.’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보보가 그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그는 잔을 들었다.
“자, 그럼.” 그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이 평화롭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완벽한 사적(私的) 영토를 위하여. 그리고 내일은 제발, 탱고의 진짜 이름이 ‘귀여워’가 아님을 모두가 깨닫게 되기를.”
두 사람의 잔이 대구의 깊은 밤 속에서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